번아웃 후 정신과 상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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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질랜드에 사는 새우튀김입니다.
얼마전까지 소진 증후군 (번아웃)으로 인해 고생하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인생 처음으로 “상담”이라는 걸 제대로 받아본 후기와 소회를 적어볼까 합니다. 저처럼 정신과 상담에 대해 편견과 걱정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번아웃에 대한 선입견과 실제 증상
저는 제가 번아웃을 겪기 전까지는 그 단어에 대해 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일 하기 싫은걸 번아웃이라고 단어를 가지고 와서 쓰는 거 아니야? 라고.. 둘러댈 구실로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직접 겪어보니 “아.. 이건 존재하는 질병이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에 반성합니다 ㅠㅠ
암튼 번아웃이 오게 된 계기는 회사의 구조조정이 컸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일하는 부서는 1차적으로 직접적인 타격이 없었지만 다른 부서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들이 구조조정을 당하다보니.. 저희 팀이 하는 프로젝트가 진척이 없고, 협력을 구해야 하는 저로서도 난감했던게 당장 구조조정 당하는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동기가 있을리도 만무하고, 그런 분위기에서 보안관리자가 릴리즈를 한번 빠꾸먹이니 ㅋㅋㅋ
어떻게든 프로젝트 멱살 잡고 팀원들 으쌰으쌰해서 릴리즈하려고 했는데ㅋㅋ 아 이게 다 뭔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또 회사 스트레스는 집에 가져오지 말자는 주의라 어지간하면 집에서 이야기 안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재택근무를 하니까 ㅋㅋ 남편이 모를 수가 없더라구요. 하긴.. 일하다가 쌍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모를리가 없죠;;;
나 혼자 고통 받으면 모르겠는데 내 주변 사람들한테 너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서 결국 치료라는걸 받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제가 겪은 증상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 분노 조절이 잘 안됩니다. 평소 같으면 하하..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일들에 “미친거 아니야? 상식이라는게 없나? (심한 욕..)” 하고 격하게 반응합니다. 일 뿐만 아니라 그냥 평소 생활이 그래요. 운전하다가도 화가 빡!! 나고.. 슈퍼에서 물건 사다가고 괜히 화가 나고 그래요.
-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해야할 일이 많다는 건 이미 인지 하고 있고, 의욕도 어마어마한데 막상 책상에 앉아서 하려하면 머리가 안 따라 줍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해야하는 것들의 우선순위가 안 정해지고 멍- 해집니다. 이걸 안했을 때 나오는 결과들에 대한 걱정만 계속 생기고 일을 할 수는 없어서 무력감에 빠져요.
- 계속 그 상태가 되면 갑자기 무위에 빠지는 현자?모드가 되는데.. 이거 해서 뭐하나..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프로젝트 해서 뭐하나.. 옆팀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열심히 해서 뭐하나.. 구조조정당할 수도 있는데.. 인생 살아서 뭐하나.. 어차피 다 죽는데..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이건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 그치만 걱정은 계속 되고 “이게 다 내가 무능하고 멍청한 탓이라 머리가 안돌아 가서 그렇다!” 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럼 이제 링크드인 러닝, 자격증 코스 이것저것에 대한 급작스러운 관심이 생기고 공부 플랜을 세우게 되는데.. 막상 책상머리에 앉으면 또 “이거 해서 뭐하나.. 생각 생각… 어차피 다 죽는데” 하는 딴 생각과 의미 없는 내적갈등;; 그리고 당장 직장에서 겪는 고통들과 프로젝트 난항에 의한 고민들로 집중이 안됩니다.
그래서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정신과 상담에 대한 편견
누구나 다 그렇듯 저도 인생에서 너무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아.. 상담이라도 받아봐야하나 생각은 했지만 동시에 “그래봐야 그냥 듣는 척하고 우쭈쭈 해주는 거 아니야? 보나마나 다 그냥 어린시절 트라우마랑 연관지어서 이래서 그렇다 저래서 그렇다 라고 할게 뻔한데..” 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시도조차 안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제게 “상담”이라는 두 글자는 제가 한국에서 초중고 학생일 때 담임선생님과 함께 하는 그리 좋지 못한 시간으로 기억된 약간 트라우마라 불신의 감정이 컸습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이상했던 거지만.. 가정 사정이나 개인적인 고민을 교무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잡담소재로 사용하거나 상담 내용을 부모님한테 그대로 전달해서 집에서 노발대발하는 상황이 펼쳐진다거나… 그러다보니, 제게 있어서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이란 중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행복한 가족과의 삶과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치만 이대로는 남편한테 너무 미안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상담을 예약했습니다.
뉴질랜드 상담시스템과 느낀점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뉴질랜드에선 우울증이 아주 아주 흔한 병이라 5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율도 세계 1등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일반의원에 가면 우울증약을 그냥 처방해 줍니다. 1시간 정도의 상담 없이도요.
그래서 정신과상담을 받으려면 별도로 신청을 해야하는데 개인 보험이 있으면 (보험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3번 무료 세션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복지 차원으로 무료 세션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이런것도 저런것도 없으면 0800 번호로 전화하는 형식의 무료 상담도 가능하긴 하지만.. 다음 세션이 없으니 지속적으로 같은 문제에 대해 상담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암튼 저는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무료 세션이 10회를 사용해서 집근처 상담사에게 예약했습니다.
느낀점은..
- 상담은 단순히 우쭈쭈해주는 세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잘잘못을 따져주는 행위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듣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어 이해시키는 행위라고 느꼈습니다.
-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만 25세까지 사람 몸의 신경계와 뇌가 성장하는데 부모님이나 양육자로부터 적절한 케어를 받지 못하면 그 신경계와 뇌의 발달이 늦어지거나 불완전하게 발달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에 전반적으로 지속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에 노출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서 몸이 생존을 위해 보이는 반응 중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 라는 반응이 커보인다고 하네요. 그래서 상담 중에도 그런 식의 말을 하거나 무의식 중에 화가 났을 때 보이는 몸의 반응들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 상담은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문제 해결을 하는데에 있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신 상태를 갖추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대한 이해와 내가 갖고 있지 못한 식견에 대해 생각해봄으로써 좀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 당장 내 마음가짐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에 대해 배웁니다. 심호흡법의 원리와 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언제 해야하는지 배웠는데.. 저한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거 말고도 너무 화가 나거나 너무 우울한 상황에 생각과 마음가짐으로만은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오감을 자극해서 그런 생각으로 부터 관심을 떨쳐내는 방법도 배웠는데 나중에 그런 상황이 오면 써보려고 합니다.
암튼 저한테 이 상담 세션이 큰 도움이 된 건 확실합니다. 남편이 당장 다른 점을 느꼈다고 하네요.. ㅎㅎ 제가 좀 충격을 받은 부분은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제 언행을 약 30분간 관찰하면서 “이 사람은 지금 아주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제가 스트레스에 잠식되어 있었다는 거였는데.. 그정도로 제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영향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2주 뒤에 알려준 방법들을 일상 생활에서 시도해 보고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번아웃과 우울증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질 건데 벌써 기대가 되네요.
아.. 그리고 전에 번아웃왔다고 푸념글을 썼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저를 위해 따뜻한 한마디와 공감해주신 다모앙이용자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와 힘을 얻어 상담도 받아봤어요. 아직 세상은 살만하네요 정말로요..
저도 제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지금 힘들지만 이것도 다 지나가고 마음과 인생의 밑거름이 될거라 믿습니다. 혼자가 힘들면 손을 내밀 수도 있어요. 용기가 필요하지만, 손을 내미는 한걸음만 내밀면 철옹성 같이 느껴졌던 고민거리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져나갈 수 있어요. 모두 응원합니다.
해외 거주중인 30대 초반 아줌마. 새우튀김은 제가 남편 만들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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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6.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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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6.08 07:53
해외 거주중인 30대 초반 아줌마. 새우튀김은 제가 남편 만들어 줍니다! ?
SoGentle님의 댓글
PWL⠀님의 댓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뻘글젖문가님의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사진을 보니 비가 올 성 싶네요.
한국도 지금 날씨가 무척 흐리답니다.
뭐 진부한 얘기겠지만 먹구름이 걷힌뒤
맞이하는 햇살은 조금 더 따뜻하지 않겠습니까?
응원합니다.
그리고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https://damoang.net/plugin/nariya/skin/emo/damoang-emo-006.gif)
휴먼계정님의 댓글
JohnP님의 댓글
chicane님의 댓글
정신적으로 지칠때 , 제대로된 상담 받는건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짱구아빠님의 댓글
몰랐는데 제 지금 상태가 번아웃인가봐요.. ㅠ
언급하신 증상을 거의 6개월째 겪고 있는거 같은데…😭
지낭님의 댓글
세션 계속 이어갈 수록 새우튀김님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더욱 커지며 소진된 것이 차고 넘쳐서 새우튀김님과 가족 및 주변에도 나눠주실 수 있을 만큼 충만해지시기를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쟈가님의 댓글
막연히 그럴것이라 생각만 했네요.
가끔 저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은 그 시기에 덜 성장한 잔상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도치않게 상처주고 제대로 사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하고 어떻게 고쳐야할지 알수 없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고싶지만
한국에 상담이 가능한곳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stillcalm님의 댓글
저도 용기내어 상담을 받아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디 정신적 건강 잘 회복하시길 빌겠습니다.
소르베님의 댓글
몆년간 심한 우울증을 앓았었는데
정말 죽고싶지도 않고 내가 왜이러는지 인정하기도 싫은데
밥도 잘 안넘어가고 퇴근하면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이 몇년을 가더라고요.
살은 계속 빠지고 티를 안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도 다 느껴진건지 걱정하며 병원에 가보자고 가족들이 권유하고 그랬는데 전 그게 싫었어요.
내가 원한 상황도 아니고 내 문제로 이렇게 된것도 아니니 억울했고 난 이겨낼 수 있다, 난 죽지 않아, 이런 생각만 하며 버텼죠.
몇년이 지나 서서히 나아져서 다시 보통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치료와 상담이 없던터라 후유증이 남을줄 몰랐어요.
그 이후 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때처럼 과호흡이 왔고 불면증에 분노조절도 좀 안됐구요.
그런일을 몇번 겪고나서야 내가 미련했구나. 치료를 제대로 받았어야 했구나. 깨달았습니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정신과 상담이 터부시 되던 부작용이 참 큰거 같아요.
그때 이후로 주변에 마음의 문제가 있는 지인이 보이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님도 상담치료 잘 받으시고 좋은 결과 얻으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국수나냉면님의 댓글
잘 하셨네요. 휴식이 힘들면 누군가의 케어가 정말 도움이 됩니다.
Mactive님의 댓글
제 정신상태도 앙님과 비슷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가득찬 화를 아이들에게 가족들에게 푸는 모습이 많이 속상한데, 쉬는 시간을 거치며 나아졌으면 합니다.
앙님도 치유 잘 받으시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많이 쌓길바랍니다.
wanxi님의 댓글
다묘앙님의 댓글
1. 분노 조절이 잘 안됩니다......
2.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이걸 안했을 때 나오는 결과들에 대한 걱정만 계속 생기고 일을 할 수는 없어서 무력감에 빠져요.
3. 계속 그 상태가 되면 갑자기 무..................... 인생 살아서 뭐하나.. 어차피 다 죽는데.........
다만, 저는 그냥 갱년기가 와서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ㅡㅡ
Chess님의 댓글
그리고, 글을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돈쥬앙님의 댓글
clien11님의 댓글
sunandmoon님의 댓글
diynbetterlife님의 댓글
달2님의 댓글
규칙적인 운동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1년 살짝 넘게 수영을 하고 있는데 화가 안나는 건 아닌데 그 감정이 금방 극복(?)이 되요.
화이팅~~~
살맛난다님의 댓글
파란등짝님의 댓글
일단 운동으로 어느정도 버티고 있긴한데
아그래도 운동을 하니
몸은 확실히 건강해지긴 했는데
근본적인 해결은 아닌거 같아서 고민중이에요.
슈프리님의 댓글
저도 평소 화가 많은 편이라 스스로 납득이 안된 적도 많은데 올려주신 글을 보니 제가 왜 그런지 알 거 같네요
이후에 증상이 나아진다면 후기 기대해도 괜찮을까요..
부디 호전되시길 바라며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얀후니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