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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운전면허 취득기(한국 면허 전환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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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poilove 223.♡.7.229
작성일 2024.07.02 19:19
20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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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거의 대다수 분들은 한국에서 이미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일본에서 전환하여 면허를 취득하신 분들이실 겁니다. 저 같은 케이스는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므로, 별로 관심없거나 뭐 이런 거 갖고 구구절절히 쓰냐 하시는 분들은 조용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시거나 창을 닫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왜 면허 취득 비용도 비싸고 따기도 힘든 일본에서 직접 운전면허 시험을 쳐서 취득했는가부터 설명드리면,

1. 애초 일본 넘어오기 전에 한국에서 면허 딸 시간이 없었고, 주로 서울 수도권 대도시에서 살아 뚜벅이 인생으로 사는 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차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때문에 운전면허 필요성이 극히 낮았습니다.
2. 그러나, 결혼 이후 달라진 생활 환경과 더불어 비교적 한적한 도쿄 변두리에서 살다 보니 차가 있어야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뒤늦게 면허 취득을 하려고 하니까 이미 저는 일본에서 거의 완전 정착을 했기에 더 이상 한국에 장시간 머물며 면허 취득을 할 시간 여유가 없었고, 설령 한국에서 취득을 했다 해도 90일 이상 한국에 체류하며 지내야 일본에서 면허 전환이 가능하기에 그 정도 시간을 들일 여력이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단 한 달을 쉬어도 타격이 큰, 생계가 걸린 형태로 일 해 온 터라 잠시 휴직하고 나눠서 한국에 체류한다는 건 애초 고려대상이 아니었죠.

그리하여, 일본에서 직접 운전교습소에 등록하여 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저에게 있어 너무나 험난했습니다.

1. 일본은 운전의 능숙함보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안전이 먼저입니다. 운전 초보로 장내 기능 및 도로 주행을 할 때 가장 실수하는 게 시야가 좁아져 정면과 운전자 머리 위에 있는 백미러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각지대에 갑자기 들어올 수 있는 자전거 포함 이륜차와 함께 인도 차도 구분없는 좁은 도로에서의 보행자를 신경써야한다는 걸 교육이수시간 내내 듣고 주입시킵니다. 정말 지겨울 정도로 강사가 안전을 강조하다 못해 그 부분에서 실수 한 번이라도 나올 경우 바로 제 운전 제어권을 빼앗아서 다시 시범을 보여주고 그대로 하길 반강요합니다. 제가 다녔던 학원 특성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사고 안 나게 해야 한다는 그 마음가짐 하나는 제대로 배웠습니다.
2. 총 이수시간은 1단계(장내 기능) 15시간, 2단계(도로 주행) 19시간해서 도합 34시간 하였으며(저는 MT로 했습니다), 학과의 경우 1단계 2단계 다 합쳐서 26시간 이수해야 합니다. 물론 중간에 진도가 안 나갈시에는 재수업이 들어가므로 실질 이수 시간은 좀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줄 잡아 60시간 정도는 들여야 운전학원에서 교육 이수가 끝납니다.
3. 앞서 언급한 까다로움과 긴 이수시간으로 인해 애초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합숙 면허는 아예 고려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과정을 모두 패스하는데 생업을 병행하며 거의 반 년 이상 걸렸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학원 교습 등록 후 9개월 이내에 이수를 못 할 뻔했죠. 만일 이렇게 될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므로 그간 들인 시간과 돈은 모두 리셋됩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장 일본에서 애먹은 건 확실히 면허 전환해 오신 분들도 느끼시는 일본의 각종 도로표지판일 겁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게 많고, 직관적이지 않은 것도 많아 사실상 교육을 받고 외워야 하는 게 수두룩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1. 일본의 주정차 금지 구역은 비교적 적지만 주차금지 구역은 거의 대부분입니다. 즉, 정차와 주차의 개념을 확실히 해야 하며, 정차로 보이는 행위라도 운전자가 5분 이상 차에서 떠나 운전석을 비우면 주차로 간주됩니다. 단, 짐을 내리고 올리는 행위를 하거나 구급을 위한 환자 또는 약자 수송을 위해 운전석을 비우는 건 예외로 간주합니다.
2. 우리가 아는 추월금지 표지판이 추월금지가 아닙니다. 추월금지를 명시한 표지판에는 반드시 보조 표지판으로 追い越し禁止라고 쓰여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게 없는 우리가 아는 그 표지판이라면 우측으로 추월하는 행위하는 걸 금지한다는 것이지, 추월 자체를 금지한다는 게 아닙니다. 왼쪽으로 추월은 가능하다는 거죠.
3. 단순히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표지판(흰 바탕에 파란 화살표)과 일방통행 표지판(파란 바탕에 흰 화살표)은 전혀 다른 지시니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충 간단한 거 이 정도만 해도 이미 중년에 접어든 제 머리는 터질 지경이고 외울 것도 많고 신경쓸 것도 많았습니다. 암튼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교육 이수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관문, 바로 학과시험입니다.

일본의 학과시험은 무조건 공안(일본 교통관할 경찰입니다)이 관할하는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시험을 봐야 합니다. 총 95문제가 나오며, 90문제는 OX 퀴즈로 배점 1점, 나머지 5문제는 상황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각 문항당 관련된 3문제를 OX로 푸는 문제로, 배점 2점입니다. 이 5문제는 그 문항에 속한 3문제중 하나만 틀려도 다 틀리므로, 2점을 그냥 날리는 겁니다. 암튼 그렇게 해서 총 점수 100점 만점에서 합격 커트라인 90점입니다.
문제는 정말 수험생들 엿먹으라는 건지, 문제에 함정이 너무 많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렇게 필기시험을 봤다면 거의 대다수는 한 번 이상은 무조건 떨어질 거라 봅니다. 커트라인도 90점으로 높은데다, 이 95문항을 푸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50분입니다. 사실상 30초 안에 한 문제 꼴로 풀어야 한다는 거죠. 거의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나오는 문제는 외우다 시피해야 하고, 따로 과외를 받는 수준으로 빡세게 공부해야 붙습니다.
교육 이수 후 학과시험 합격까지 유효기간을 1년 주는 건 다 이유가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설렁설렁했다가는 계속 떨어지고, 유효기간 마감은 다가옵니다. 저는 이 기간 또한 반 년이 걸렸습니다.
네번이나 학과시험 떨어지고, 다섯번째에서 합격 발표를 보면서 한숨과 눈물까지 나더군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틀리기 쉬운 학과 문제 유형을 보면 보통 이런 문제입니다.
1. 철도 건널목에 진입하였는데 전방에서 긴급차량이 사이렌을 켜고 접근했기에 바로 차량을 세우고 먼저 통과시켰다. (X)
왜 X냐면, 철도 건널목은 긴급차량이 오든 말든 일단 무조건 진입했으면 건너야 합니다. 세워주고 양보가 우선이 아닙니다. 이걸 긴급차량 접근만 보면 틀린다는 거죠.
2.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을 경우, 무조건 일시정지해야 하나 보행자가 없으면 일시정지할 필요없이 그냥 통과해도 된다. (O)
보행자 유무에 따라 정지 규정이 달라집니다. 이건 공부 안 하면 틀리기 쉽습니다.
3. 항상 빨간 불에서 멈춰야 한다. (X)
아니 이게 말이 돼? 하시겠지만 X 맞습니다. 응급 차량의 경우 빨간 불에서 멈추지 않아도 되니까 부연 설명이 없는 무조건 빨간 불에서 멈춰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전형적인 함정 문제죠.

이렇게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 모두 통과하면, 비로소 면허증이 발급됩니다. 받고 나서 정말 이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 때문에 눈물까지 흘리며 고생했다는 생각이 팍팍듭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면허증 하나 발급받은 비용은 처음 운전교습소 등록부터 해서 학과시험 접수비 및 시험장 오가는 교통비 포함 줄잡아 38만엔 들었습니다. 38만원이 아닙니다. 정말 더럽게 비쌉니다. 이러니 아예 대놓고 이걸 위한 대출을 교습소에서 대행해 줍니다. 전 아직도 이거 갚고 있습니다.

암튼, 저는 이제 초보운전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만, 혹시나 이 글을 보신 분들은 저 같이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에만 일본에서 직접 운전면허 취득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건이 되신다면 무조건 한국에서 따서 일본에서 전환하는 게 확실히 남는 장사입니다. 물론 취득후 한국에서 90일 체류라는 조건으로 인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점이 있겠습니다만...

끝으로, 일본 운전면허 직접 취득이 이렇게 까다롭기에, 요즘 일본 젊은 세대들은 운전면허 취득을 꺼려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비싼 교습비와 까다로운 합격조건을 생각하면 안 하고 만다는 생각도 동의할 정도입니다. 반면, 이렇게 어렵게 취득하기에 일본에서 교통법규 잘 지키고 되도록 안전운전에 신경쓴다는 게 역력히 보일 정도라는 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허구헌날 어처구니 없는 교통사고로 숨지는 분들이 많은 한국 사정을 보면, 일본만큼은 아니라도 운전면허 남발에 가까운 한국식 방법은 이제 고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더군요.

댓글 4

살맛난다님의 댓글

작성자 살맛난다 (122.♡.237.254)
작성일 07.02 23:14
운전면허 취득 축하합니다! 특별한 경험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ㅎㅎ

커피칼디님의 댓글

작성자 커피칼디 (133.♡.135.197)
작성일 07.02 23:30
2. 追い越し와 追い抜き의 차이입니다. 둘의 차이는 말씀하신 추월 후 본래의 차선으로 돌아오느냐 아니냐라고 합니다. 편도 2 차선에서 앞차가 느릴 때 追い抜き로 옆 차선으로 빠져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3. 네모 왼편 화살표 흰바탕은 상시 좌회전 가능 표지, 네모 청색 바탕 화살표는 일방통행입니다.
https://youtu.be/uJrjgZhh-30?si=fH4N3a0sP0o86czL
하지만 아는 사람은 매우 적어보이고 설치 위치도 없다시피 하네요.

제가 생각한 또다른 차이는…
- 지시표지판 (원형표지판 청색바탕 흰색화살표)이 사실상 한국의 금지 표지판이다.

- 한국은 딜레마존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걸로 최근 대법원 판결로 난리났죠) 그러나 일본은 다른 신호등 점등에 3초 모자르게 여유도 있고 정지선 미준수가 심각한 위험으로 보기에 노란불, 심지어 멈출 수 없는 적신호가 들어왔다면 최선을 다해 신속히 통과한다.
버스 회전 반경 보면 정지선 준수의 중요성이 이해가 가더군요.

- 신호 체계 전부… 청신호와 적신호 화살표의 차이가 개념부터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청신호는 정지선 넘어도 된다, 어딜 가든 비보호이며 맞은편이나 심지어 예기치 않은 작은 골목길에 동시에 청신호가 들어와 있을 수 있으며 운전자가 알아서 부딪히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화살표는 보행 신호를 제외하고 차량 진행 방향에 배타적인 우선권이 있고 동시에 다른 방향 차량 신호가 청신호나 방향 신호가 간섭 방향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황신호를 화살표 신호의 시작(청신호 후 화살표 신호)이나 끝에 넣는지 안 넣는지는 지자체 경찰서 재량이며 다 다르다.

어쩌다보나 신호 체계 토로가 되었는데, 아무튼 이 변태적인 신호 덕에 신호 사이클이 빠르고 신호 대기가 적은 건 좋더라고요.

선진국 운전 면허는 다 비싸더라고요. 일본은 그 중에서도 심한 것 같긴 합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후쿠사야님의 댓글

작성자 후쿠사야 (103.♡.140.160)
작성일 07.03 10:41
생생한 체험기(?) 잘 읽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많은분들이 그렇듯이 한국 면허에서 일본 면허로 바꾼 경우인데
가끔 도로표지판 보고 헷갈리는 경우가 있어서 일본 면허 학과시험 책자를 몇 번 봤는데 그래도 완전히 다 숙지하지는 못한 거 같아요...
처음에 고생하셨어도 앞으로 일본에서 운전하실 때 헤맬일은 없으실 거 같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규링님의 댓글

작성자 규링 (153.♡.181.136)
작성일 07.03 15:43
정차랑 주차 개념이 도쿄에서 운전하면서 여러모로 신기하고 머리아프더군요.
그 덕분에 차선 하나 그냥 거의 점거하듯 진짜 줄줄이
정차(이미 5분 넘어있는 것들)해 있는 거 보면 어쩔땐 그러려니 하는데 어쩔땐 답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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