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굴데굴굴러가유 (73.♡.229.21)
2026년 7월 13일 AM 10:09
한국을 떠난 지 어느덧 9년 차가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 초반만 해도 한국에 너무 가고 싶어, 언젠가 돌아갈 수 있을까 꿈에서나 그리워하던 곳이었습니다. 요즘은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미국과 한국, 그 태평양 사이 중간 어디쯤에 제 자신이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연차를 더할수록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문득문득 찾아옵니다. 그런데, 막상 돌아가서 어중간하게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겪느니 차라리 이곳 미국에 남는 것이 정신적으로 나을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에 무게가 실립니다. 특히 결혼을 하고 삶의 기반이 이곳에 완전히 자리 잡은 이후로는, 한국으로 역이민을 간다는 개념 자체가 이제는 불가능해지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마침 얼마 전 한국인 직장 동료와 정체성에 대해 철학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제 안에 지워지지 않는 순수한 본질의 정체성이 존재하고 그 위에 변화하는 정체성이 더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료는 본질적인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환경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하는 유동적인 정체성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더군요.
이민 생활을 이어가면서, 주변부에 속한 사람이 주류 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매일같이 배웁니다. 생존하고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이 과정 속에서 나됨의 정체성도 계속해서 그 형태를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관련 뉴스를 챙겨볼 때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풍경과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봅니다. 제가 떠나올 때의 한국이 아련하게 생각나면서도, 동시에 그 삭막한 경쟁 사회 속에서 다시 살아남아야 하는 제 모습은 이제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곳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듯한 이 감각. 어쩌면 이것이 두 문화의 경계에 선 이방인으로서 짊어지고 가야 할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2)
- 졸
졸음
13:56 · 119.♡.156.250
-
다다소산만
14:19 · 49.♡.170.4
개인차가 큰것 같습니다. 전 이민초기부터 제 집인냥 편하고 좋았습니다. 지금도 문화나 언어의 문제를 제쳐 두고서라도 이방인이란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향수병도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 생기는데 한국 생활은 은퇴하고 노는건 OK, 일하는건 Never 입니다.
반면에 아내는 지난 16년 내내 언어 문제로 스트레스 받고 한국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ㅠ한국으로 돌아갈 여건은 안되니 반퇴만 기다리고 ㅜ있습니다. 모기지 다 갚으면 은퇴 시켜준다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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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 이민 초기에는 자주 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국이 많이 그리웠는데 대략 십년이 넘어가면서 부터 그리움이 덜해 지더군요. 그 즈음 부터는 한국에 휴가로 일년에 한번은 최소 삼주 씩 다녀오곤 했구요. 지금은 미국생활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만, 여기서 직장생활 다시 할래 그러면 "물론이요"라고 쉽게 대답 못하겠습니다. 출퇴근 시간 똑같은 검은 옷 입고 지하철에 끼여 가는 사람들 보면요. 야근에. 술에. 그렇게 좋아하던 회식도 이제 금주를 한지 오래되서 싫어요. 한국에서 모임하면 다들 알딸딸한 가운데 저만 말똥말똥하게 앉아있습니다. 힘들어요. 아마 @데굴데굴굴러가유 님 마음 속엔 한국의 나쁜 점은 희미해지고 좋은 점은 더 그리워하게 각색 되었는지도요. 기회되는대로 한국에 자주 **놀러** 방문하면 괜찮아 지더라구요. 가을 무렵 한 번 다녀오면, 땡스기빙에 크리스마스에 한해가 훅. 그렇게 또 몇 년 보내는 거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