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다 못 읽었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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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2024.09.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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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독서회의 선정 도서인 모비딕을 다 못 읽었습니당... 허먼 멜빌이 19세기 중엽 펴낸 이 소설은 포경을 소재로 합니당. 선배 제현께서는 모비딕의 일본식 제목인 백경으로 책이나 영화를 접하셨을 수도 있겠네영. 저도 어렸을 때 백경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읽었습니당. 모비딕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읽게 되니, 하나는 분명히 알겠더군요. 제 머리에 백경이 남긴 흔적은 기시감뿐이라는 점을영... 저는 천성이 뭍사람인 모양인지 주인공이 항구에 있을 땐 기시감 덕을 보며 재미있게 읽었지만, 출항하는 장면 이후로 제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 순간을 연거푸 경험했슴당. 포경선 피쿼드 호가 항구를 떠나 남양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흥미는 사라지고 졸음은 쏟아지고 제 눈꺼풀도 무거워지더군영. 이불 위에서 읽다가 자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자고 만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당... 지금까지 한 32% 정도 읽었는데, 영 진도가 안 나가서. 이번 달 완독하긴 글렀슴당. 독서회 일동에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당. 완독 후 서로의 소회를 나눌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네영.

  제가 읽다가 졸았다고 해서 모비딕이 나쁜 소설일 수도 없고, 나쁜 소설도 아닙니당. 모비딕이 좋은 소설이라는 점은 공부가 부족한 저라도 바로 알 수 있겠더군요.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라든가, "그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자들에게는 민주주의자지만, 자기보다 밑에 있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위세를 부리며 떵떵거리는가"라든가 생각할 만한 꺼리를 주는 지혜가 담긴 문장도 있고, "시골뜨기 같은 그 패거리들은, 백인은 회칠을 한 흑인보다 존귀한 존재라도 되는 양, 피부색이 다른 우리 두 사람이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었다"라는 문장이나 주인공이 뜻밖에 벗으로 삼게 된 남태평양 출신의 작살잡이 퀴퀘크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를 감안하면 인종차별 반대와 사해동포적 태도도 분명히 담겨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졍. 게다가 번역가의 열정의 담긴 무수한 각주는 21세기를 사는 저에게 19세기 중엽 이전의 서구 문화에 관한 토막 지식을 쌓을 기회까지 제공해 줍니당. 그렇지만 저 같은 돼지의 눈에 부처의 뜻이 보일리 없으니, 미국 문학의 정수라는 모비딕을 목도하고도 이불 위에서는 잠이 너무 잘 오더군영... 쿨쿨... 꿀꿀...🐽

  이번 달에 완독을 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 같슴당. 취향과 활협전이졍... 흠흠. 제가 모비딕 전에 읽은 소설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습니당. 산업재해로 장애를 갖게 된 주인공을 가족들이 뒷방에 가둬 두고 벌레 취급하자 이러한 현실에 미쳐버린 주인공이 자신을 벌레로 생각하며 현실을 왜곡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 덕분에 변신은 금방 읽었습니당. 모비딕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망상으로 흥미가 동하니 평소보다 더 빨리 읽게 되더군요. 흥미를 모비딕에서 캐낼 만한 취향을 미리 개발하지 못한 제 게으름이 완독 실패의 한 원인 같습니당. 어렸을 때 고래를 좋아했으면 좀 나았을 것 같은데 말이졍. 요즘 아해들은 아기 상어 노래 덕분에 모비딕을 잘 읽을 것 같네영.

  그리고 활협전은 게임입니당. 대만 사람인 개발자들이 만든 무협 배경의 비주얼 노벨 게임이졍. 모비딕 읽으며 흥미가 사라지면 스팀덱으로 활협전을 했는뎅 인물 설정과 묘사에 음습한 점이 있긴 해도 왕년에 읽던 무협 소설처럼 몇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고 있슴당. 아직도 엔딩은 못 보긴 했지만 사소한 선택에 따라 휙휙 전개되는 이야기가 정말 인상 깊더군영.

  뭐,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두 구실이 진짜 이유이겠습니깡... 완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게으름뱅이인 저 자신이졍. 흑흑... 그래도 모비딕은 틈틈히 읽고 완독해 보겠습니당. 

  참, 이제 시월이군영. 독서의 달 구월은 이렇게 지나지만, 여러분의 즐거운 독서 생활은 계속 이어지면 좋겠네영. 즐거운 시월되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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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someshin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someshine (61.♡.87.225)
작성일 09.30 23:40
제 머리에 백경이 남긴 흔적은 기시감뿐이라는 점을영...
이 문구에 잠시 웃고 지나가도 될까요 ㅋㅋㅋㅋㅋ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경험이 많아서 빵터졌습니다 ㅎㅎ
저도 보통은 한 권 잡으면 안읽고는 다른 것으로 잘 못넘어갔었는데.. 요즘 자꾸 다른것으로 넘어갑니다. 유튭 넷플 환혼 등 ㅋㅋ 시월에 우리 힘내보아요 ㅎ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5:12
@someshine님에게 답글 말씀대로, 흥미가 안 생기면 다른 매체로 넘어가게 되더라구영. 독서에 대한 제 신앙심을 시험하는 물건이 너무 많다니까영. 비문학류는 정보를 습득하는 재미로 밀고 나가는데, 소설은 흥미가 동하지 않으면 진척이 지리해 지더라구영. 시월에는 모비딕도 다 읽고, 미루어둔 히파티아를 읽어 보려구영. 아무튼 섬샤인님도 시월에 홧팅임당!

어디가니님의 댓글

작성자 어디가니 (210.♡.254.193)
작성일 10.02 09:11
모든 독서는 완독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텍스트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면 그 독서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도 아직 이런 쿨함을 내면에 단단히 굳혀놓지는 못했습지만요. 완독하지 못한 책에는 늘 일종의 부채감이 남더라고요. 하지만 여전히 독서는 즐거운 일입니다.
저도 카프카의 '변신'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 봐야겠네요. 그래서 최근 '글쓴당' 숙제에서 '사과'라는 제시어가 나왔을 때 '변신'의 무대를 빌어 짧은 글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변신'을 다시 읽어야지 했는데 "삼체"를 읽는 중이라 아직 시작하진 못했습니다. 책읽는당를 들락거리다보니 "삼체" 이후 읽을 책들이 늘어나네요.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2 18:58
@어디가니님에게 답글 지난달 책읽는당 앙님들이랑 같이 읽기도 공언을 했던 책이라서 부채감이 더하더라구영. 그냥 저 혼자 읽는 거라면 글 올릴 생각도 안 하고 읽다 말다 하다가 뒤 안 돌아보고 방치했을 텐데 말이졍... 그래도 미완 나름의 가치를 알려 주시니 어깨가 좀 가볍네영. 감사합니당. 글쓴당을 말씀하시니, 갑자기 우리 책읽는당과 글쓴당의 관계는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인간 같다는 생각이 드네영. 쓰기와 읽기는 필수불가결의 관계이니 인간이 본래의 안드로귀노스 형태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반쪽을 끊임 없이 찾는 거처럼, 글쓴당과 책읽는당도 서로를 갈구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존재인 거졍... 떠오른 대로 적으니 좀 속물 같네영... 삼체는 넷플릭스 시리즈 평이 너무 좋아서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어영. 보통은 책을 읽은 다음에 영상 매체를 보는데, 저의 옹졸한 취소 문화 성향 때문에 독서를 주저하던 참이었지영. 책읽는당에서도 평이 좋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 봐야겠네영. 댓글 감사합니다. 시월에 즐거운 독서 생활 보내시길 바라요.

어디가니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어디가니 (210.♡.254.193)
작성일 10.04 10:42
@포도포도왕포도님에게 답글 말씀 중 생소한 단어가 나와 찾아보았습니다. 안드로귀노스/안드로규노스(Androgynous)는 플라톤의 "향연(饗宴: Symposion)"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에서 나옵니다. 현재의 두 명의 인간이 등을 맞붙이고 붙어 있는 형태로 현재 인간의 원형이라고 언급됩니다. 남녀가 붙어 있는 방식에 따라 남남, 여여, 남여인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다고 합니다.

덕분에 많은 걸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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