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로마 제국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궁금한 게 있더라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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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2024.10.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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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어쩌다가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지금은 없어진 국가에 관한 글을 보게 되면, 항상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나라'라는 언명이 언급되더군영. 

저는 항상 그런 글이나 댓글을 볼 때마다, 왜 그렇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영. 제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지 제 단견에는 신성 로마 제국은 신성하고 로마이고 제국이 맞거든영. 신성하다는 뜻은 롱고바르드 왕국으로부터 교황령을 지킴으로서 서방 교회 전체의 수호자가 되었다는 뜻을 테고, 로마라는 뜻은 로마 제국이 둘로 갈라진 후 멸망한 로마를 수도로 하는 로마 제국을 대신해서 유럽의 수호자가 되었다는 뜻이고, 제국은 교황에게 직접 관을 받아 교회와 유럽의 수호자임은 일정 받는다는 뜻으로 생각했거든여.

제가 제대로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술한 언명 자체는 볼테르가 한 말로 알고 있습니당.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19세기엔 완전 종이 호랑이가 되서 중앙 집중적 국민 국가로 정체를 변신하는 데 실패한 신성 로마 제국을 비판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여. 그리고 계몽주의자인 볼테르 본인에게는 국권이 국민에게 있는 게 아니라 신 -> 교황 -> 황제의 순으로 주어지는 군주국을 인정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졍.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신성 로마 제국을 국민 국가와 계몽주의의 시각에서 보지 않을 때, 정말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라구영. 신성 로마 제국의 등장은 사를마뉴를 기점으로 보면 8세기부터 오토 1세를 기점으로 보면 10세기부터니까, 국민 국가와 계몽주의 등장하기 이전 수백 년 동안 존속해 온 신성 로마 제국이 정말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이 아닌걸깡? 볼테르의 언명을 빌리지 않을 때도 정말 신성 로마 제국의 정체에 대한 비판이 타당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영.

여하튼 휴일이 되니 뻘글이나 쓰게 되네영. 여러분 즐거운 시월되세영.

댓글 22 / 1 페이지

별똥별똥별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별똥별똥별 (211.♡.22.9)
작성일 10.01 15:53
로마는 하루만에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왕과 교황의 싸바싸바로 하루만에 돼버렸죠.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6:51
@별똥별똥별님에게 답글 로마 제국의 형성 과정에 비해, 신성 로마 제국의 형성이 단촐해 보이는 거 같긴 하네영. 사를마뉴도 그렇고 오토 1세도 그렇고 교황령을 지킨 다음에 교황한테 인정을 받는 식이었으니까영.

별똥별똥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별똥별똥별 (220.♡.73.129)
작성일 10.01 18:07
@포도포도왕포도님에게 답글 Rome was not built in a day.
Do as Romans do.
중학생 때 영어 교과서에 배운거죠.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외웠는데. 이게 다 로마 후예를 자청하는 애들 (러시아 오스만 신성로마) 꼽주는 표현이있죠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8:22
@별똥별똥별님에게 답글 말씀 듣고 보니, 두 표현이 그런 용도로 쓰이게 된 맥락이 궁금하네영.

weakness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weakness (172.♡.95.41)
작성일 10.01 16:17
신성로마제국이 진짜 제국이라 부를만한 시절엔 그냥  제국이라고 불렀죠.
제국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도 제국 자체엔 상징이 없었습니다. 황제의 문장이 쌍두독수리였을 뿐이죠.
신성이란 호칭은 교황과 싸움에서 교황이 제국의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고 붙인 거고,
로마의 후예를 자처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 하게도
아직 동로마가 남아 있을 때, 십자군 원정을 독려하기 위해서였죠.

제국이라 불렸던 나라가 신성 로마 제국이란 이름으로 대외적으로 불러주길 원했을 때는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지배권도 잃고, 제후들이 사실상 딴살림을 차리기 시작하는
무너지는 제국의 마지막 허상같은 몸부림이 신성 로마제국 이란  호칭이었죠.
즉, 대공위 시대가 되며 제국으로써 망해가던 시절 마지막 몸부림이 신성 로마제국이란 호칭이었죠.
실제로 그런 이유로 역사속에서 학자들은 구제국, 중세제국, 서방 제국등으로 불렸죠.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6:56
@weakness님에게 답글 저는 13세기 대공위 이래로도 룩셈부르크 조나 합스부르크 조가 이어지니까, 신성 로마 제국이 대공위 이래로 몰락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못 해봤네영... 댓글 감사합니다. 시간 나면 신성 로마 제국의 형성에 관한 책 좀 찾아 봐야겠네영.

눈가리고아앙님의 댓글

작성자 눈가리고아앙 (61.♡.210.14)
작성일 10.01 16:43
전반적으로 모두까기에 진심인 사람인데다 구체제에 환멸이상의 혐오를 가진 사람이라서
종교전쟁/왕위계승권전쟁/프로이센과의 전쟁등을 겪으며 침몰하는 배인 주제에
구닥다리 카톨릭과 구체제적 전통에 집착하는 합스부르크가와 기회주의적인 제후국들을 좋게 볼리가 없죠
통시대적인 평가라기보다 당대인으로서의 조소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6:58
@눈가리고아앙님에게 답글 통시대적이지 않다는 말씀에 무릎을 치게 되네영. 맞는 말씀 같아영. 신성 로마 제국이 형성 이래로 실제와 명목 사이에 괴리는 항상 존재했지만, 황제 스스로 해체를 선언하기 직전인 볼테르 시대에는 더욱 그 괴리가 커진 점도 있을 테고 말이졍. 그런 괴리에 볼테르의 성정에 참을 수 없는 바로 있겠네영.

moxx님의 댓글

작성자 moxx (1.♡.175.171)
작성일 10.01 16:58
일단 랑고바르드 왕국과 신성로마제국은 큰 관계가 없죠. 신성로마제국은 프랑크 왕국의 후계 국가 중 하나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로마황제”는 교황이 임명하는 지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죠.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7:05
@moxx님에게 답글 엉... 아니었군영. 저는 서방 교회와 동방 제국의 갈등 그리고 롱고바르드 왕국의 교황령 침범을 계기로 교황이 사를마뉴를 황제위에 올리게 된 거라고 알고 있었어영. 샤를 마뉴를 신성 로마 제국의 시작으로 보지 않더라도, 오토 1세도 이탈리아 제후의 교황령 침략을 막아서 제위에 오르게 된 거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거든영... 흠. 공부가 부족했네영.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 로마 제국의 황제들도 기독교를 믿게 되어서, 제위와 기독교가 연관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제 공부가 부족했네영.

Bursar님의 댓글

작성자 Bursar (223.♡.86.159)
작성일 10.01 17:44
저는 동로마를 로마의 적통으로 생각해서요.
(동로마=로마)

국가의 이름(국호)은 언제나 가장 잘나갔던 나라를 따라하기 마련이죠.
(고려, 조선 등)

신성로마제국은 그러한 따라하기 작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8:00
@Bursar님에게 답글 말씀대로 콘스탄티누스가 터를 닦은 비잔티움에 위치한 제국,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 제국의 적통이졍.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에서는 로마 없는 로마 제국이 앙금 없는 진빵 같은 느낌이지만영. 말씀하신 점도 신성 로마 제국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영. 샤를 마뉴가 황제의 칭호를 받은 건 교황의 창작물이니까영...

moxx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moxx (122.♡.211.36)
작성일 10.01 18:01
@Bursar님에게 답글 적통 논란이 우수울 정도로 로마제국의 국체는 동서로 최종적으로 나뉘기 전에 이미 콘스탄티노플에 정통성과 수위성이 옮겨간 상태였죠. 그래서 서로마 유무와 상관없이 콘스탄티노플 정부가 로마제국의 최종 권위를 갖고 있었고 서로마가 무너진 이후에는 단일한 로마제국 정부였죠. 1453년 5월 29일까지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둔 국가의 명칭은 라틴어로 임페리움 로마눔, 그리스어로 바실레이온 톤 로마이온, 즉 로마제국이었습니다.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8:36
@moxx님에게 답글 명목과 실제의 문제에 들어가면, 두 제국 모두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아영. 물론 정체에 비잔티움 제국이 계승했다지만, 로마 제국의 강토 중 헬라스 일대와 소아시아만 가지고 있고, 로마 원로원과 시민 중 원로원은 차치하더라고 로마 시민은 없으니까영. 서로마 제국의 몰락한 뒤, 서방 제국의 영토는 로마인들이 아닌 '야만인'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동로마 제국은 로마 남부의  주권을 유지하려고 했다지만, 아랍과 '야만인'들에 의해 상실했고 말이졍. 서방 교회와 유럽의 수호자로서 마자르를 비롯한 각종 이교도와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낸 건 로마 제국의 정체를 잇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독교, 엄밀히 말하자면 서방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을 통해 황제의 지위를 받게 된 사를 마뉴와 오토 1세의 그 후예니까 신성 로마 제국은 나름 실제적 정당성이 있겠지영. 뭐 제가 유럽사에 대한 공부도 부족한 처지라 의미 있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게 정말 아쉽네영.

moxx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moxx (122.♡.211.131)
작성일 10.01 18:43
@포도포도왕포도님에게 답글 “로마시민”은 지리적인 혹은 민족적인 권리가 아니라 법적인 권리였습니다. 로마제국 자체가 법적인 토대로 운영된 국가이듯이요. 로마시민권은 이미 3세기 카라칼라 황제 시기에 제국내 모든 자유민에게 부여된 권리입니다. 동서로 나뉘었다고 로마시가 위치했던 서방에만 로마시민이 있었다고 생각하시는건 오해입니다. 사실 동서로 나뉘던 시기엔 로마시는 이미 서쪽에서도 수도 기능은 상실하고 상징적인 위치에 불과했습니다.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8:50
@moxx님에게 답글 말씀 감사합니당. 공부가 되네영. 로마시와 동맹시의 차등이 있다는 것만 알고, 로마 제국 전 자유민에게 시민의 권리가 부여된지는 모르고 있었네영. 동서 분할 이후에, 행정 중심지로서 로마의 기능을 상실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네영.

moxx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moxx (122.♡.211.36)
작성일 10.01 21:02
@포도포도왕포도님에게 답글 더 적으면 사족이 되는 것 같은 감이 있기는 합니다만^^;
대부분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했던 동맹시에 대한 차별대우는 동맹시 전쟁이나 한니발이 침공했던 2차 포에니 전쟁 즈음에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고 사태가 수습되면서 동맹시 시민들에게는 “라틴시민권”이라는 로마시에 대한 참정권만 빠진 로마시민권을 주는 것(현대의 영주권과 비슷하죠)으로 일단 갈등을 봉합했었고요. 제국 초기 즈음에 이탈리아 반도 대부분을 커버하는 “본국 이탈리아”가 설정된 이후에는 본국 이탈리아의 모든 시민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했다가 최종적으로 자유 속주민에게도 로마시민권을 부여한 것이 3세기였습니다.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2 00:18
@moxx님에게 답글 주신 댓글을 보고 나니, 갑자기 '고대 로마의 시민권 변천에 관한 연구: 공화국 시기와 제국 시기를 중심으로'이라는 논문 제목이 떠오르네영. 흥미 본위로 역사를 공부하는 처지에 논문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중에 로마 시민권이나 로마 제국민의 국가 정체성에 관한 논문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당. 말씀 감사합니당. 즐거운 시월 되세영.

concept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concept (1.♡.160.83)
작성일 10.01 18:42
볼톄르나 몽테스키외  같은 계몽사상가들은 기본적으로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설정했죠. 그리고 그  암흑시대의 시작을 게르만의 침공으로 인한 로마제국의 몰락으로  보았죠. 그러니 게르만의 후예인 신성 로마 제국이  곱게  보일 리 없죠. 이를 문화단절설이라고 하는데 볼테르나 몽테스키외의  저서에 나와있죠. 기본의 로마제국쇠망사도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20세기 들어와 돕쉬같은 독일계 역사가들이  이를 반박하며 로마제국에서 게르만 국가로  이행은 침공이나 단절이 아니라  500년에 걸친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이행의 과정이라고  논증했죠. 이를 문화연속설이라고 합니다.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1 18:52
@concept님에게 답글 아항. 계몽사상가들의 로마 제국에 대한 인식과 중세에 대한 태도로 주목할 점이네영. 댓글 감사합니당. 문화 단절설과 문화 연속설에 관해서도 공부를 해 봐야겠네영.

크로롱크로롱님의 댓글

작성자 크로롱크로롱 (117.♡.13.241)
작성일 10.01 22:09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중

로마 제국은 어디인가에 콘스탄티노플이 실질적인 로마제국의 수도로 봄이 마땀합니다. 지금의 중동지역이 훨씬 번성한 로마 제국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문명의 충돌이었는가는 사실 아니라는 점이 더 크죠. 전쟁은 상당히 지엽적이었고 큰 전쟁(학살)은 실질적으로 발칸에서 이루어졌죠. 십자군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기사들로 부터 재산을 신탁받은 교회와 수도원.

포도포도왕포도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도포도왕포도 (208.♡.104.184)
작성일 10.02 00:30
@크로롱크로롱님에게 답글 제가 공부해서 그런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네영.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한 로마 제국이 이슬람 발흥 이전에 이집트 북부와 레반트 지역에 주권을 행사한 적이 있긴 하졍... 그리고 십자군 본대는 아니었지만, 피에르가 이끄는 민중 십자군이 헝가리 왕국의 베오그라드에서 학살을 벌인 적이 있졍... 그리고 십자군에 투신한 귀족들의 재산 관리를 교회나 수도원에서 한 것도 사실이구영... 성당 기사단이 고리대금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재산 때문이라는 걸 읽은 기억이 나기도 하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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