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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 장-클로드 카리에르, 다니엘 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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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셰도우
작성일 2025.03.18 10:32
분류 독후감
74 조회
2 추천

본문

이 책은 16세기 중반인 1556년 프랑스 남부의 안도라와의 국경 근처의 농촌인 아르티가 라는 곳에서 게르 집안의 마르탱 게르, 그리고 그 가족들과 관련된 사건과 재판을 다룬 프랑스 소설입니다. 

이 책은 장 드 크라스 라는 툴루즈 고등법원의 판사가 1561년에 쓴 '툴루즈 고등법원의 잊을 수 없는 판결' 이라는 책에서 사건의 전말과 주석을 상세하게 기록하면서 알려진 실제 사건의 판결을 바탕으로 구성했고, 이후에 수백년 동안 끊임없이 몽테뉴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해석과 재해석을 낳으며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실제 사건이기에 더 유명한 소설입니다.


일단 책의 시작은 주인공인 게르 집안의 마르탱 게르와 롤스 집안의 딸 베르트랑드 드 롤스가 1540년 8월 어느 일요일에 아르티가라는 농촌에서 결혼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이들은 14~15세의 어린 나이였고, 이들을 바라보는 당시 35세의 하녀 카트린 보에르가 1인칭 '나'로서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메인 화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하녀 카트린은 1540년 35세이던 당시에 게르 집안에서 일한지 20년째라 하는 걸로 봐서 15살 때부터 일한 것으로 보이고, 또한 주인공 마르탱이 태어날 때 옆을 지키고 기저귀도 갈아주며 키운, 보모 역할도 했다고 나옵니다.


대충 등장인물만 적어보자면

아버지 마튀르 게르, 어머니 브리지트 게르

작은삼촌 피에르 게르, 아내 베르트랑드의 어머니, 즉 장모님 레몽드(이후에 피에르와 결혼)

여동생 넷(중 바로 아래 동생 잔, 잔의 남편 오귀스탱, 그리고 기유메트만 이름이 나옴)

아들 상시, 딸 둘(중 첫 딸은 몇 시간만에 사망, 다른 딸은 베르나르드, 그리고 이 딸들은 상시와 아버지가 다름)



책의 이후의 등장인물이나 전반적인 사건 전개는 이 영상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텍스트로 줄거리를 쳐봤는데, 등장인물도 너무 많고 사건도 길고 복잡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해도 50줄이 넘게 나와서 걍 포기했습니다 ㅠ


여튼, 집나갔던 주인공 마르탱이 8~9년만에 마을로 돌아왔는데, 뭔가 석연찮은 구석 한두군데를 빼면 과거의 일들을 굉장히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다들 마르탱이 맞다고 인정했지만 그게 틀어지는 계기가 있었고, 결국 재판을 통해 베르트랑드와 딸까지 낳았던 그는 마르탱이 아니라 아르노라는, 마르탱과 전쟁터에서 만나서 마르탱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는 마르탱 행세를 한 다른 사람이었다는 게 밝혀져서 사형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여러 모로 돌아보고 재해석할 여지가 꽤 많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너무 소설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얽혀 있지만 엄연히 사실이고, 특히나 2번째 재판에서 판사 크라스가 아르노가 마르탱이 맞다고 판결을 내리려는 순간에 진짜 마르탱이 나타나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 결국 아르노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은, 이렇게도 진부하고 뻔한 클리셰를 쓰는 소설이 있냐고 할 정도인데, 문제는 그게 판결문에 있는 실제 사건이라는 게 문제죠.

또한 아내 베르트랑드는 비록 10대 시절의 몇 년이었지만 분명히 아들까지 낳고 살을 맞대고 산 사이라서 몰랐을 리가 없는데도 침묵하고, 심지어는 아르노가 처음 왔을 때 마르탱이 맞다고 하며 그를 받아들입니다. 사실 크라스 판사가 첫 재판에서 아르노가 마르탱이 맞다고 판결을 내리고, 두번째 재판에서도 막 똑같은 판결을 내리려는 직전까지 갔던 것도 베르트랑드가 마르탱이 맞다고 했던 것이 가장 컸습니다. 그럼에도 두번째 재판이 열리는 데는 삼촌 피에르가 쓴 고소장에 베르트랑드도 동의한다는 사인이 들어가 있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고, 또한 진짜 마르탱이 돌아온 이후에 열린 심리 과정에서 베르트랑드도 나중에 들어온 마르탱이 진짜 마르탱이라고 인정하면서 판사는 아르노를 가짜라고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베르트랑드가 왔다갔다 했던 이유에는, 사실 10대 시절 마르탱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던 데다가 자신과 가족들을 두고 말도 없이 떠나 버린 마르탱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고, 그러던 차에 자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남자와 다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처음부터 아르노가 마르탱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해석이 후대에 나왔는데, 저는 여기에 동의합니다.

아마도 베르트랑드는 마르탱이 죽었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성격상 영영 안 돌아오고 그만의 새로운 삶을 꾸려서 잘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진짜 마르탱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없고 돌아올 기약도 없으니 다들 죽은 셈 치고 있는데, 마침 자기가 마르탱이라고 하는 사람이 내가 마르탱이라고 하면서 돌아왔다고 하고, 그때까지 이루고 있던 가족들과 마을들,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이 베르트랑드가 아르노를 받아들인 이유가 아닐까요? 물론, 진짜 마르탱이 뒤에 나타나면서 그녀의 모든 계획은 다 깨졌지만요.


오랫만에 깊게 생각해 볼 만한, 추리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입니다. 그저 가상의 사건이었다면 너무 뻔한 전개에 너무 뻔한 클리셰라 여기며 그냥 넘어갔을 일인데, 의외로 이게 실제 사건의 판결문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 하니 계속 읽게 되더군요. 그리고 지금도 사실 여러 방법으로 작정하고 신원을 속이면 증명이 쉽지 않은데, 아르노처럼 판사와 가족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을 정도로 완벽한 기억력과 연기력이라면, 요즘으로 치면 국가 차원에서 신분증 데이터베이스도 조작해 주고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준 정도가 아닌가, 그럼에도 결국 가짜라는 게 드러난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뱀발로, 이후에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찾아서 그가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부분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전 보지 않았는데, 드라마 옥씨부인전이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땄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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