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인어 사냥 - 차인표
drzekil

Lv.1 drzekil (106.♡.120.37)

2026년 7월 6일 PM 03:18

조회 378 공감 0

인어 사냥 - 차인표

차인표의 "인어 사냥"은 영화배우라는 선입관을 가뿐히 뛰어넘는 작품이었다. 1902년 강원도 통천 인근 외딴섬에서, 아내를 잃고 딸 영실마저 폐병에 걸려 망연자실한 어부 덕무가 딸을 살리려 인어를 찾아 흑암도로 향한다. 먹으면 천 년을 산다는 인어 기름이 이 여정의 미끼인데, 작가는 이 환상적인 소재를 빌려 결국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 얼굴의 이름은 영원을 향한 욕망이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이 욕망을 처음부터 추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살리려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덕무도 그랬다.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영실이한테 먹일 거라고. 그런데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말한다는 공 영감의 대꾸가 서늘하다. 소망이 선을 넘는 순간 욕망이 되고, 소망은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가리지만 욕망은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까. 인어를 잡아 목숨을 건 도박에 성공한 덕무가 정작 먹지 말아야 할 열매를 딴 것처럼 마음이 황막해지는 장면에서, 나는 창세기의 선악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생이란 손에 쥐어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혹은 하늘이 허락하는 영역이라는 것. 그 경계를 힘으로 넘어선 자가 무엇을 잃는지를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준다.

더 무서운 건 이 욕망이 몇몇 악인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등장하는 이들 저마다 오래 살아야 할 절실한 사정이 있고 그 개개의 목숨은 다 소중한데, 결국 그 소중한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같은 것을 원하며 추해져 간다.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추하다고 느끼다가, 상대가 품은 그 추함이 곧 나의 욕망임을 깨닫는 대목이다. 그 거울 같은 자각이 인간은 모두 죄인임을 이야기하는 성경의 이야기와 정확히 겹쳐졌다. 누구를 손가락질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 서면 나도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비추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박힌 건, 천 년을 날려 버렸다며 그렇게까지 해서 뭘 얻느냐고 다그치는 물음에 "삶이요"라고 답하는 짧은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그 뜻은 정반대다. 한쪽에게 삶은 목숨을 한없이 길게 늘이는 일이고, 다른 한쪽에게 삶은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옳다고 믿는 걸 목숨 걸고 해 보는 일이다. 천 년의 길이로도 끝내 살 수 없는 삶이 있다는 것을, 이 세 글자가 길이의 논리를 통째로 무너뜨리며 보여준다. 오래전에 죽고 욕심만 남았다는 말을 듣는 자와, 천 년을 버리고 단 한 순간의 옳음을 택하는 자. 그 사이에서 진짜 살아 있다는 건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에 진짜 괴물이 바다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작가의 말이 그저 수사로 들리지 않는다. 때가 되어 사람은 죽어도 욕망은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리려 했던 인간 덕분에 도리어 욕망만이 영생을 얻는다니. 천 년의 삶 앞에서 나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영원이란 정말 빼앗아 차지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배우 차인표가 아니라 작가 차인표를 다시 보게 만든, 그런 작품이었다.

댓글 (2)

  • 맛김치

    맛김치 Lv.1

    07.06 · 125.♡.186.94

    마침 동네전자도서관에 있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 광나라

    광나라 Lv.1

    01:52 · 210.♡.240.229

    저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번 신작 <우리 동네 도서관>도 좋더라고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