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이 만난 사람들 - 몬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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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기에서 가져와서 -하다체입니다. 언제든 부적절하거나 거슬리시면 말씀해주세요 어미를 바꾸겠습니다)
지금 <국선변호인이 만난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내게 한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던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Just Mercy 브라이언 스티븐슨)> 의 라이트한 버전이 아닐까 생각했다.(영어 섞어 쓰는 거 참 거부감이 많았는데 나도 이제 '라이트한' 같은 표현을 쓰는구나)
말이 나온 김에 월터는, 기득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교하게 짜놓은 사법제도, 그 제도를 통해 끝없이 양산되는 피해자들과 이에 맞서는 인권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갑자기 왠 뜬금없는 수학식이냐 하겠냐만은 그 책을 읽을 땐 마치 권력자들이 절묘하게 만든 f(x) 함수에 힘없는 자들이 끝없이 대입되고 뱉어져 무한히 늘어진 y값의 결과들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그 y값들은 형무소이다. 이미 미국의 한 중요한 거대산업으로 성장해버린 교정시설들에 힘없는 자들이 하나씩 줄을 지어 갇혀버리는 것 같은, 어떤 대항할 수 없는 수학식을 보는 것 같은 무력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수학적 진리마냥 빈틈없이 우뚝 서 버린 사법계를 에이헙처럼 거대한 흰고래 앞에 홀로 맞서는 한 개인의 영웅적이면서도 초라한 모습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국선변호인에는 그런 웅장함이 없지만, 그리고 문학적으로 뛰어난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계속 읽다 보니 이 책을 만난 게 반가웠다. 월터와 다르게 한국 사회에서 가깝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손에 잡힐 듯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초반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들 – 특히나 가정폭력, 음주운전 등의 경우들을 보면 분노도 치밀어 오르고, 왜 이런 사람들을 변호해야 하는지 사법제도 자체에 화도 나고, 이 변호사들은 왜 이런 인간들을 변호한 건지 그들의 인간성까지 의심되기도 하고(사연을 읽다보면 피고인의 권리니 변호사의 의무니 하는 말들이 더 듣기 싫어진다),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길길이 날뛰는 걸 보면 왜 저런 인간들이 법정에서 제어가 안 되는 걸까, 외국 영화처럼 소리 한번 지를 때마다 법정모독죄를 적용해서 형량을 늘리지 않는 걸까, 또는 사실은 그것도 영화일 뿐이지 외국도 저런 인간들을 법정에서 제어 못 하는 걸까 생각도 든다.
나쁜 피고인들이 나와서 내게 고구마를 천개는 밀어넣는 느낌이구나! 할 때쯤 불쌍한 피고인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차라리 욕할 수 있는 피고인들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낮은 지능으로 아무 상황도 파악 못한 채 보이스 피싱 공범이 되어버린 피고는 무슨 죄인가, 그들을 벌하는 게 우리 사법제도라면 이 제도가 과연 제대로 기능하는가, 예산이 남아돌아서 이런 것까지 나눠주나 싶은 기관들이 있는가 하면 달리 살 길이 없이 사회에 내쳐진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가.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는 이렇게 기운차게 부조리를 언급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많은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 올라오기도 하고 무력하기도 했다.
그래도 저자가 곳곳에 뿌려놓은 유머 요소들 덕분에 다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을 더 읽을 수 있었다.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밝거나 웃기지도 않고 적당히 피식 웃음이 나오는 정도의 유머라 딱 좋다. 노모, 낙타눈썹의 약혼녀, 10대에 없는 것, 웃음치료사 등등
처음 생각한 것보다 너무 길게 써서 이제 그만 쓰려는데 여튼 선선하게 읽기 괜찮은 책이다. 기대가 거의 0에 가까웠더니 더 좋기도 하다.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우리가 책을 읽게 만드는 동기이지만 현실의 이야기들도 우리 마음을 울리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럼 이제 이 책을 끝내고 파우스트로 다시 돌아가자. 또 파우스트는 “오 정령이여~”라며 고풍스런 어조로 노래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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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의 월터 부분을 보니, 마치 가난한 집에 태어나면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쓴 거 같은데 저는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불우한 집안에서 따듯하고 훌륭한 시민으로 자라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성장환경을 범죄의 변명으로 삼는 많은 범죄자들이 싫습니다. 위에 저렇게 쓴 것은 그 책에 나오던 사례들을 한한 것인데 그 사례들을 쓰자니 이미 긴 글이 더 기네요. 여하튼 브라이언 스티븐슨이라는 분은 그런 경우들을 찾아다니며 변호를 하여 재심을 받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셨고 거기에 다양하고 상세한 통계치를 더해서 상당히 멋진 글을 쓰셨습니다.
ㅋㅋㅋ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