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라 새 미슬: 조선 전기 미술 대전_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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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someshine (61.♡.87.225)

2025년 7월 22일 PM 01:27 · 수정됨(01. 0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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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시 소개보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한 일주일 전 쯤 전시는 다녀왔는데요. 
우연한 기회로 나전장 일사(호) 김봉룡 선생님의 친손자 분과 함께 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책으로만 읽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박람회를 통해 조선의 나전칠기 제품들이
상도 많이 받고 그 우수성을 인정 받았다고 합니다.
김봉룡 선생님은 1825년 프랑스 파리 세계장식미술품박람회에서 은상을 수상했으며 1927년 도쿄에서 개최된
우량공예품전람회에서 금패를 수상했습니다. 뭐든 약탈하는 일본은 나전 기술은 유독
조선에 미치지 못해 뛰어난 옻칠장인들과 나전장인들을 초빙하여 큰 돈을 주고
오랫동안 일본 기술자들을 양성하여 기술을 빼내가고자 하였는데
식민지 시대에서 그런 청을 거절하는 것도 자기 목을 걸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이런 분들도 독립운동가나 다름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으로만 읽던 분의 생애를 옆에서 보고 자란 손자분과 함께라 뜻깊고 여러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해외 전시를 많이 하셨는데 전시 할 때마다 모든 작품들을 그 나라에 기증하고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작 가족분들에겐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안타까움 ㅜㅜ) 
그리고 나중에야 무형문화재가 되었지만 가족분들 모두 힘들게 살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예전에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하대하는 문화여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학생 쯤 미국으로 이민가셔서 지금은 라스베가스에서 살고 계시는데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을 만나서 그 분도 기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잠시 서울에 와서 전시를 보는 그 분과 함께 하다보니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서 ㅎㅎ
전시는 다시 가 볼겁니다. 
이 전시 마치고 오니 교환권으로 케데헌 굿즈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 분에게도 케데헌이 엄청 
인기인데 그래서 콜라보로 굿즈를 주나보다고 꼭 가지고 가시라고 했습니다. 
전시도 전시품 규모도 엄청 나고 아주 좋았습니다. 도자기부터회화 불교 미술까지 아우르는
전시라 이런 전시 관람하기가 쉽지 않겠다 생각둡니다.
그 분 말로는 박물관인데도 영어 번역이 형편 없는 것들이 눈에 보인다고 하셨지만
제가 알기로 지금 영어 번역은 엄청 좋아진 것입니다.
민주정권 들어서면서 이런 부분들도 혁혁한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ㅎㅎ케데헌 굿즈를 하나만 받아서 딸은 둘이니 한 번 더 가서 받기는 해야 합니다. 




댓글 (1)

  • diynbetterlife

    diynbetterlife Lv.1

    01.04 · 59.♡.103.12

    김봉룡 선생님에 대해 소개하신 글을 보니 정말로 자신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한국전통예술을 지켜오고 세계에 알려오신 역사에 기록될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소개, 기억해야 할 인물을 좋은 글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박물관에서 영어번역이 형편없다고 하신 점에 대해서도
    아무리 좋은 작품이나 역사적인 사례가 있어도
    그 '전달'에 소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시민 작가도 지적하신 적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 문화 유산을 소개하는 현장의 '팻말'이나 표지석? 같은 곳에 잘못된 정보들이 있다고요.

    "오랫동안 일본 기술자들을 양성하여 기술을 빼내가고자 하였는데
    식민지 시대에서 그런 청을 거절하는 것도 자기 목을 걸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이런 분들도 독립운동가나 다름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으로만 읽던 분의 생애를 옆에서 보고 자란 손자분과 함께라 뜻깊고 여러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해외 전시를 많이 하셨는데 전시 할 때마다 모든 작품들을 그 나라에 기증하고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작 가족분들에겐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안타까움 ㅜㅜ)
    그리고 나중에야 무형문화재가 되었지만 가족분들 모두 힘들게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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