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요제 초창기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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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80년대 중반에 가수 김학래씨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아마 가요 가사랑 악보 있던 그 책의 앞 부분에 있었던 글이었지 싶습니다.


그때 얘기가 '대학가요제 대상 출신들은 성공하지 못한다...'라는 얘기가 실려 있더라구요. 김학래도 1979년에 듀엣으로 '내가'라는 노래로 우승했는데, 그 글이 나올 때까지 김학래의 후속곡들이 히트를 친 적이 없던 때이죠.


나중에야 '해야 해야', '하늘이여'라는 노래들로 히트하면서 그런 징크스는 없던 것처럼 되었지만요.


몇 년 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당시 평론가와 강변가요제 출신인 유미리씨가 나와서 그때 얘기를 하는데, 강변가요제는 가수 지망생들이 프로 작곡가, 작사가들의 작품을 받아서 준 프로에 가까운 사람들이 출전했던 것에 비해서, 초창기 대학가요제는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주축인 아마추어, 그리고 아카데미즘(???) 성격이 많았다…라고 얘기하더군요. 대학가요제도 몇 년 계속하면서는 준 프로급들이 참여하면서 성격이 변해갔지만서두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초창기 대학가요제 출신들은 아마추어리즘 성격이 강해서 후속곡이 반향을 얻기가 어려웠을 거 같기도 하고, 그들도 딱히 프로 음악인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생각도 덜 했을 거고, 그래서 저런 징크스가 생긴 게 아닐까 싶더군요.(꿈의 대화를 부른 분들은 연대 의대라서 지금은 의사분들이시더군요. 그 외에도 당시에는 대학 진학율이 지금보다는 훨씬 적은 때였기도 하고요)

댓글 2

Java님의 댓글

그런일이 있었군요~
그저 음악이 좋아서, 음악에 빠져서 하던 분들이 계시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외모도 보면 동네 형같고 누나같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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