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벽돌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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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게 꼭 노래도 같이 붙이고 싶네요^^;;
이문세의 오늘 하루...뭐 하루이틀은 아닙니다만 제가 넘 바보 같이 생각되는 날이면 이 노래를 찾아듣습니다)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글입니다.
내가 지금 벽돌 두 장에 꽂혀있구나
죽비로 한방 맞은 듯 얼얼했습니다.
아잔 브라흐마 스님의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책에 실린 글입니다.
이 책 매우매우 추천입니다.
스님의 지성과 유머와 호쾌함과 자유로움과 자애와 통찰에 전염됩니다.
이 책의 서시를 먼저 읽어보실래요?
(우리냥이가 여러분의 평안을 기도해주네요^^)
( 이 시에 덧붙이자면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어야 올챙이였던 줄을 안다고 합니다~ )
벽돌 두 장
우리는 절 짓는 일이 시급한 가난뱅이 수행승들이었다.
그렇다고 언감생심 집 짓는 인부들을 고용할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재 값만 해도 허리가 휘었다.
하루빨리 나 자신이 집 짓는 법을 배우는 도리밖에 없었다.
땅을 파 기초를 세우고, 시멘트와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리고, 배관시설을 하는 등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내 손으로 해야 할 판이었다.
출가하기 전 나는 이론물리학자였고, 전직 고등학교 교사였다.
따라서 육체노동에는 그다지 잔뼈가 굵은 몸이 아니었다.
몇 해가 지나서는 집 짓는 솜씨가 꽤 늘어서 나와 내 동료 수행자들은 '절사모(절 짓는 사람들의 모임)'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벽돌 쌓는 일이 일견 쉬워 보일지도 모른다. 먼저 흙손으로 시멘트 반죽을 펴서 한 덩어리 바르고,
그 위에 벽돌 한 장을 얹은 뒤, 오른쪽을 한두 번 두드리고 다시 왼쪽을 한두 번 두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벽돌을 쌓기 시작했을 때는, 수평을 맞추기 위해 한쪽을 두드리면 반대쪽이 올라갔다.
그래서 그쪽을 두드리면 이번에는 벽돌이 일직선에서 벗어나 앞쪽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튀어나온 쪽을 다시 밀어 넣으면 이번에는 반대쪽이 높아졌다.
일머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나를 무시하기 전에 당신도 한번 해보라.
명색이 수행자인지라 나는 참을성 면에서는 일가견이 있었고, 또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오래 걸린다 해도 모든 벽을 완벽한 형태로 쌓아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첫 번째 벽돌 벽을 완성한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감탄의 눈으로 내가 쌓은 벽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제야 나는 중간에 있는 벽돌 두 장이 어긋나게 놓여졌음을 알아차렸다.
다른 벽돌들은 모두 일직선으로 똑발랐지만, 두 벽돌만은 각도가 약간 어긋나 있었다.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벽돌 두 장 때문에 벽 전체를 망치고 만 것이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쯤 시멘트는 이미 굳을 대로 굳어 벽돌을 빼낼 수도 없었다.
나는 우리의 리더인 주지 스님에게 그 벽을 허물고 다시 쌓자고 제안했다.
솔직히 말해 허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토록 공들여 했는데 일을 망쳤으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벽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방문객들이 찾아와 우리의 미숙한 절을 안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외부 사람들이 가능하면 내가 쌓아 올린 벽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구라도 그 잘못된 벽을 보는 걸 나는 원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절을 다 짓고 서너 달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한 방문객과 함께 절 안을 거닐다가 그가 그만 그 벽을 보고야 말았다.
그 남자는 무심코 말했다.
"매우 아름다은 벽이군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선생, 혹시 안경을 차에 두고 오셨나요? 아니면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벽 전체를 망쳐 놓은 저 잘못된 벽돌 두 장이 보이지 않나요?"
그가 그 다음에 한 말은 그 벽에 대한 나의 시각을,
나아가 나 자신과 삶의 많은 측면에 대한 나의 전체적인 시각을 근본에서부터 바꿔놓았다.
그가 말했다.
"물론 내 눈에는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올려진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석 달 만에 처음으로 그 두개의 실수가 아닌,
벽을 이루고 있는 훌륭하게 쌓아올려진 수많은 벽돌들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 잘못 놓인 벽돌의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에는 제대로 놓인, 완벽하게 얹힌 수많은 벽돌들이 있었다.
게다가 완벽한 벽돌들은 두 장의 잘못된 벽돌보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았다.
전에 내 눈은 오로지 두개의 잘못된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눈 뜬 장님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 벽을 바라보는 것 조차 싫었고,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것도 싫었다.
그 벽을 폭파해 부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나는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벽돌들을 볼 수 있었다.
벽은 전혀 흉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방문객이 말한 대로 '매우 아름다운 벽' 이었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그 벽은 그곳에 그대로 서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잘못 얹힌 벽돌 두 장이 어디께 있는지도 나는 잊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더 이상 그 벽에서 잘못된 벽돌을 발견할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 안에서 '두 장의 잘못된 벽돌'만을 바라봄으로써
절망에 빠지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는가?
실제로는 거기 훨씬 많은 훌륭하게 놓인 벽돌들, 완벽한 벽돌들이 존재한다.
잘못된 것의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 사방에는 멋지게 쌓아올려진 수많은 벽돌들이 있다.
하지만 그대로 우리는 그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 대신, 바라볼 때마다 우리 눈은 오로지 잘못된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잘못된 것뿐이고, 우리는 그것만이 그곳에 존재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파괴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때론 우리는 슬프게도 실제로 '매우 아름다운 벽'을 폭파시켜 버린다.
인간은 누구나 두 장의 잘못 놓여진 벽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각자 안에는 그 잘못된 벽돌보다 완벽하게 쌓아올려진 벽돌들이 훨신 많다.
일단 그것을 보는 순간,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게 된다.
그때 우리 자신과 평화롭게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대방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나는 이 경험담을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한번은 내 얘기를 듣고 나서 한 건축 전문가가 직업상의비밀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그는 말했다.
" 우리 건축가들도 늘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객에게 그것이 이웃의 다른 건물들과 차별화를 시켜 주는
그 건물만의 특별한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다음 수천 달러를 더 청구하지요."
당신 집의 '특별한 점'은 어쩌면 실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자기 자신 안에서, 상대방 안에서,
또는 삶 전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당신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주는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당신이 오로지 그것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을 중단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아잔 브라흐마의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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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에님의 댓글의 댓글
자기 자신을 그렇게 보기란 쉽지 않아서요.
스스로를 그렇게 보라는 말씀이 와닿더라고요
Java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