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쳐라 밤일세망정...
페이지 정보
본문
아침에 경로당 글이 없어 저번에 쓰다만 글 살려왔어요^^;
제가 중학생때 오래비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둘이 자취를 했어요. 오래비는 방학이거나 학기 중이거나 하루종일 학교에 가 있었어요. 치즈와 후라이를 밥 중간에 끼워(제가 이렇게 치사한 짓을 생각해낸게 아니고요~엄마의 지시였다고요~) 엄마가 해다주신 밑반찬을 곁들이거나 이따금 쏘세지를 볶아 도시락을 두 개씩 싸는 게 주요 할 일이었고요.
방학때 오래비 가고 나면 매우 심심해서 아침부터 afkn 틀어놓거나 못 알아듣는 화면이 지겨울 즈음이면 오래비 책꽂이를 탐독하곤 했어요. 중학교에는 없는 과목 고전문학 교과서가 신기했었답니다.
님이 오마 ᄒᆞ거늘 저녁밥을 일지어 먹고
중문 나서 대문 나가 지방 우희 치ᄃᆞ라 안자 이수로 가액 ᄒᆞ고 오ᄂᆞᆫ가 가ᄂᆞᆫ가 건넌 산 ᄇᆞ라보니 거머횟들 셔 잇거ᄂᆞᆯ 져야 님이로다. 보션 버서 품에 품고 신 버서 손에 쥐고 겻븨님븨 늼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즌 드 ᄆᆞ른 듸 ᄀᆞᆯ희지 말고 위렁충창 건너가셔 정옛말 ᄒᆞ려 ᄒᆞ고 겻눈을 흘긧 보니 상년 칠월 사흔날 ᄀᆞᆯ가벅긴 주추리 삼대 ᄉᆞᆯ드리도 날 소겨다.
모쳐라 밤일싀망졍 ᄒᆡᆼ여 낫이런들 ᄂᆞᄆᅠ 우일 번ᄒᆞ괘라.
이런 문장이 즐비한데 얼마나 아름답고 신선하던지 충격 그 자체였어요.
특히 좋아한 싯구는 므쇠로 텰릭을 말아 옷을 지어이다. 그옷이 다 헐어시아 그옷이 다 헐어시아 유덕하신 님을 여의겠습니다… 이런 연시였어요. 남친도 애인도 없어도 그 절절한 마음이 골져스하게 얼마나 와닿던지요…유명한 정석가라는 건 나중에 기억하게 되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칠칠치못해 건너뛰며 읽고 제목 빼먹고 읽고...아무 구절이나 마음에 드는데만 골라읽고...아무렴 어떻습니까. 나중에 어떤 프랑스 작가가 독자의 권리장전 십계명에도 적었더만요. 읽고싶은 데만 골라읽을 권리!
이 책만 읽었겠나요~ 챆꽂이 한 귀퉁이에 짱박아 둔 사비에라의 고백도 탐독 했습니다. 와~~ 이런 신세계라니! 오래비 올 시간은 여적지 멀었는데도 공연히 들킬까 두근거렸습니다. 달뜨는 몸과 마음을 부쩌지 못해 두근거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같은 반 친구를 꼬여서 학교 층계참 아래에서 얼라리꼴라리 하던 대목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그러다 오밤중에 오래비 오면 종일 있었던 일 얘기 나누고 주말에 시장 가서 만두도 사먹고 오래비와 참 정이 도타웠어요.
오래비 대학 간 후에는 제가 공유하는 읽을거리가 달라졌어요. 세미나에서 각성한 충격에 대해 제게 나눠 줬고 저는 미성년이라 여파가 더욱 컸어요. 고등학교도 마치기 전에 이 부조리한 세상을 어찌 살아야하나 하는 뜬구름 염세적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헷세의 크눌프를 읽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얘기했다가 아부지가 충격 받으셔서 구안와사가 오기도 하셨어요. 다락방에서 찾아 읽은 여성동아 시인 김수영 특집( 여성동아 기자는 누구였을지?) 을 읽다가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 대목에 전율을 느꼈어요. 느닷없이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사회에 염오를 느꼈어요. 가위로 쥐 파먹듯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서 교무실에 불려가기도 했어요. 전교조 설립 전 뜻있는 선생님들이 많으셨던 고등학교라 실험적 수업과 실험적 평가가 행해지곤 했었는데요. 한국사에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을 서술하는게 기말평가였어요. 면면히 이어진 민중혁명이란 테마에 한완상의 책에서 알게된 내용을 적기도 했습니다. 국어시간에는 친일파 이효석의 문인의 감성 칠갑을 한 에세이가 당시 상황에 가당키나 하냐며 따져서 쌤이 분필을 던지며 나가시기도 했고....
철부지도 세상 그런 철부지가 없었네요.
그렇게 오래비 통해 프린트 문건으로 광주 일지를 처음 접하고.. 구식 타자기로 작성한 문건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었죠. 나중에 황석영 선생의 넘어넘어 책자를 통해 다시한번 환기하게 되었고... 민중과 지식인.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철학사. 어느 청년노동자의 외침(전태일 평전)등을 읽으며 시스템의 거대한 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 들어가서는 아무래도 유화국면이었기 때문에 보다 공공연하게 5.18이 회자 되곤 했습니다. 실천문학사인가 창비사인가에서 홍희담의 중편 깃발을 읽었는데 최초로 5.18을 다룬 픽션이라 들었어요. 또 포도나무
--------------------------------------------------------
포도나무집 풍경인가? 김영현의 후일담 소설 제목이 생각 안나서 쓰다말았습니다. 주제보다 산으로 간 내용이 마음에 걸려서 그만두었는지도요.
그런데 왜 뜬금없이 꺼내었냐면…^^;;
과거의 이야기를 한다고 과거에만 머무르는 건 아니라고요….
과거 소재의 이야기로 인해 회한. 정감. 분노. 슬픔 등등을 느낀다손 글을 쓰며 혹은 읽으며 되살리는 감정은 현재에 있잖아요.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무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은 느낌과 감정의 찌끄러미들이 올라와 자꾸 살려지며 해소되어야 비로소 가라앉을 것도 없이 옅어지더라고요. 그렇게 해소되면 한결 가벼워져서 컴플렉스라 칭할 것들도 옅어지고요.
또 설령 과거 감정에 단순히 취한들 어떻습니까. 내가 자금 취한다면 취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거고요. (위로나 연민이나 청년기 에너지의 뽐뿌나 필요하니 취하는 거고요) 어떠한 감정이든 한껏 빠졌다가 나오면 카타르시스가 있으니 그 또한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되겠지요.
뭐 그렇다고요~^^;;
담에 또 재미진 얘기 해드릴게요~~~^^
도미에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윤리선생님을 좋아했는데 윤리쌤이 동양철학 전공자라 한문쌤도 겸하셔서 덩달아 한문도 열심히 했었어요. 글자는 다 잊었지만 한문을 외국문학처럼 가르쳐즈셨던 선생님의 교수법은 기억해요. 쌤 덕에 맹자니 공자니 하는 고답적인 글이 이름다운 명문으로 기억에 남아있어요.
어쩌면 저조차도 묵은 것들과의 화해를 위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있는그대로 보는 게 중허단 말씀 자주 들어왔는데 요즘 소용닿는 바 크네요.
여름숲님 도시락 까먹는 얘기 마냥 재미진 얘기도 기다립니다~~^^ 한여름날 모깃불 피워놓고 수박 뜯듯이 들으리이다~
도미에님의 댓글의 댓글
원래 삼등칸 이란 그림으로 알게되어 그의 서민과 가까운 화풍을 좋아했다가...오르세박물관에서 실제로 빨래하는 여인 그림을 보고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삯빨래 바구니의 왼손과 살림과 육아의 상징인 아해를 붙잡은 오른손이 제 처지인 듯해서....어느 하나도 놓을 수 없는데 그 와중에 굳건한 팔뚝과 아이쪽으로 기울어진 다정한 품을 보여 저렇게 살아야지... 한편 저런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 같은거요^^
팬암님의 댓글의 댓글
도미에님의 댓글의 댓글
Java님의 댓글
(이거만 듣고 글에서 나갈뻔 했습니다 ㅋㅋ)
고전문학은 뭔가 매력이 있지만, 몇줄 읽으면 지쳐요~ ㅎ~
남매의 사이가 좋으셨다니 축복받으셨네요.
과거의 기억이 단지 과거에 머무른다면? 늙은거죠.
저는 이런 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적지 않은 사람이 어릴때 꿈꾸죠, 죽을 때까지 늙지 않는 꿈을 말이죠.
(어떤 영화에서 여성 배역의 대사: "저는 30살이 되면 확 죽어버릴거예요"
이 대사는 나이드는 것/어른에 대한 발랑까진/치기어린 혐오 같기도 합니다만, 기억에 남았네요)
그렇지만 저는 반백살이 지난 지금도 꿈꿉니다. 죽을 때까지 깨어있기를 말이죠.
(70대까지는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제발 치매에 걸리지 말기를~)
근데 제목 정확한 뜻이 뭐예요?
"모처럼 밤이 셀 망정?"일 듯도 하면서 아닌 것 같아요.
여름숲1님의 댓글의 댓글
저도 좋아했던 옛시어서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습니다 ㅎㅎ
여름숲1님의 댓글의 댓글
글제목은 "모처럼 밤이라 망정이지" 입니다 ㅎㅎㅎ
즐 점심하세요 자바님!
Java님의 댓글의 댓글
제가 정신건강 유지 및 분쟁 방지를 위해 다른 분의 댓글은 잘 안보는 편이라서요. ㅋㅋ
도미에님의 댓글의 댓글
어떤 기억도 과거에 머무를 수가 없지요. 현재화된 형태로만 가능하니까요~~
옛 시도 지치는 시간을 견디며 꾸엮꾸역 읽다보면 견딘 값을 전해줍니다^^ 특정 분야는 다 코드에 익숙해질 때까진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도미에님의 댓글의 댓글
어디다 맞장구를 쳐야할 지 모르겠죠? ㅎㅎㅎ
비치지않는거울님은 요새 왜 안보이실까요?
거울님 계시면 사비에라의고백으로 수다 떨었을텐데...누가 더 발랑 까졌냐 옥신각신하면서요....
삶은다모앙님의 댓글
인제는 이런것도... 접해봐야겠네요
사진 찍는 것도 많이들 허시고
도미에님의 댓글의 댓글
아버지만 이과셨거든요. 아버지가 본인의 직업을 매우 못마땅히 여겨 자녀가 다 문사철 공부하기를 원하셔서....
여름숲1님의 댓글
처음 제 국민학교 시절의 꽃미남 그룹사운드 송골매가 반갑고
고딩대 사범대 졸업 후 첫 부임한 남샘이 담당한 문학시간에 그다지도 열심히 공부하며 보았던 우리 고어로 쓴 옛 시들이 아득하면서도 반갑고.. 그래서 "모처럼 밤이라 망정이지 행여라도 낮이었다면 남을 웃길 뻔 했겠다" 던 애심의 뻘쭘함에 한번 웃었어요..ㅋㅋ
해소되지 않은 감정에 대한 얘기는 급 자기 반성 모드로 돌입합니다. 그 상처나 기억이 무엇이었든 그 감정을 당시 해소하지 못면 평생에 걸쳐 인생의 발목을 잡는게 아닌가 싶은데 그게 꼭 개인의 책임이기에 앞서 그저 그랬으니..
지금이라도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그걸 길어올려 드러내는 것으로 해소하는게 우리네 사는 것 아닌가 싶네요.
너무 좋은 글 잘봤어요..
담에 또 재미진 얘기라니.. 팬 1호로 등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