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추] 여수, 빵집, 김ㄱㅇ파티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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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미 시전이 무서워 업장 이름 중 일부는 자음만 표기했습니다. 네, 저는 그런 쫄보예요. :))
인터넷 썰이든, 실제 제 주변 경험이든, 남자들은 대개 업장 리뷰를 잘 안 남긴다는 게 사실인 듯 싶어요. 그런 남자들이 업장 리뷰를 남기는 경우는 대개 똑같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진심으로 빡쳐서 까고 싶을 때죠.
여수가 관광 명소라고들 하는데 그건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수에 맛집이 많다는 주장엔 솔직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순천에는 맛집 많아요. 전라도의 다른 곳들도 그렇고. 하지만 여수? 아닙니다.
그나마 맛집 드문 여수, 그 중에서도 빵이 괜찮은 곳은 참 드뭅니다. 제가 빵순이, 빵돌이는 아니지만 나름 빵을 좋아하는데, 빵 기준의 여수는 아마 대전에서 20,000Km 떨어진 대척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여하튼, 다른 여러 블로그에서 여수수산물특화시장 근처에 있는 김ㄱㅇ파티쓰리가 괜찮다는 추천을 보고 방문했고, 정말로 크게 실망했습니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1. 빵을 얼마나 구매하든, 매장 내에서 취식을 하려면 무조건 인당 1음료 이상 주문해야 한다고 합니다. 뭐, 좋습니다. 이건 업장의 운영 방침이고, 그에 따른 고객의 반응을 감수하겠다는 거니까요. 즉,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정책이지만, 그와는 별도로 업장의 입장은 존중하겠다, 는 뜻입니다. 굳이 정리하자면 실망이라기보다는 "쓰읍... 좀 아쉬운데." 정도겠네요.
2. 그런데 진심 실망스러운 것은 빵에 대한 태도입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장마로 인해 비가 와서 습한 상태였고 제가 구매한 크루아상과 치아바타는 방금 진열된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카운터에 크루아상을 데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크루아상을 계산대 옆에 있는 전자렌지에 넣더군요. 설마 싶어서 계속 봤는데, 자연스럽게 크루아상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바로 포장봉지에 넣은 후 저에게 건네주는 것까지 보고나서, 저는 반드시 이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초입에 언급했듯, 진심으로 빡친 거죠.
가게 이름이 "파티쓰리"이니,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게 아마 "파티스리/파티쉐리"일 거라 생각할 겁니다. 실제 업장에서 판매하는 빵 상당수는 페이스트리 종류이고요. 그런데 밀가루와 버터가 켜켜이 쌓여 바삭한 질감texture을 내는 것이 핵심인 크루아상을 전자렌지에 데우면 그 질감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가 위 사진입니다. 네. 자신이 안으로 머금고 밖으로 내뿜은 습기로 인해 바삭은 고사하고 꾸덕한 질감조차도 아닌, 정말 이도저도 아닌 오천 원 짜리 크루아상을 씹고 있으려니 실소가 터져나오더군요. 네, 가게 밖에서 이걸 먹으면서 실제로 미친X처럼 실실 쪼갰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처구니없음 때문에요.
제가 아는 어느 빵집에서도, 심지어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마한 동네 빵집에서조차도 이런 짓은 안 합니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관문동에 있는 "단디"라는 빵집은 개당 2,500원인 소금빵을 하루에 이백 개 남짓 팔까말까 하는 작은 빵집이지만, 소금빵 하나를 주문해도 당연히 오븐에 3분 정도 데워서 판매합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저는 식품과는 전혀 관련없는 사람이고, "단디"를 홍보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단디"는 현재 장기 휴업 중이고, 언제 다시 오픈할지도 모르는 상태거든요).
3. 제가 너무 황당한 나머지, 저에게 전자렌지에 데운 크루아상을 건네주던 아저씨에게 혹시 사장님이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제가 봤던 여러 블로그에서는 사장님의 빵에 대한 자부심을 언급하던데, 적어도 제가 본 모습은 그런 홍보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4. 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그까짓 크루아상 따위가 뭐라고. 그런 빵쪼가리야 오븐에 데우든 전자렌지에 데우든 따뜻하기만 하면 아무래도 좋은 거 아닌가, 일 수도 있는 겁니다. 만일 이 크루아상을 만일 오븐에서 갓 나오자마자 먹을 수 있었다면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오버쿡이라 느껴질 수 있겠다"라거나, 또는 "카라멜라이즈드가 좀 과한 것 같지만 그래도 충분히 괜찮은 수준 내에 있다"고 나름 잘난 척을 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게 뭐 중요하겠냐고요.
아, 그리고 치아바타는 구워진 정도든 질감이든 치아바타라기보다는 "반죽과 치아바타 사이의 어디에선가 치아바타가 되길 포기해버린 무엇인가"에 가깝습니다만, 다시 한 번, 그런 게 뭐 중요하겠어요. 치아바타라는데 올리브유의 향내는 느껴지지 않고, 껍질이라 부를만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물컹하면서도 퍽퍽한 식감이 마치 전라도 화순에서 유명한 기정떡을 연상케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빵이야 아무래도 좋다, 뷰 좋으면 장땡, 이런 분들에게는 전혀 문제 없을 빵집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죠. 블랑제리든 파티스리든 일단 빵/과자 자체가 중요한 분들요. 이런 분들에게는 강력히 비추합니다. 저는 어지간하면 빵이든 음식이든 잘 안 남기는데, 정말 간만에 치아바타는 반 정도 먹다 던져버렸습니다 (크루아상은 꾸역꾸역 다 먹었습니다). 한국에서 맛있는 치아바타 찾기가 쉽지 않은 건 잘 압니다만, 그래도 이건 정말 심했다 싶었어요.
5. 아, 빵에 대한 실망과는 별도로 업장의 뷰는 좋습니다. 뷰만 놓고 보자면 여수 전체에서 열 번째 안에는 들겠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업장의 친절도가 평균 이상이라 느껴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약간 귀찮아하거나 지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그건 논외로 치죠. 달랑 식사빵 하나, 페이스트리 하나 구매한 뜨내기 손님이 받은 느낌은 그 업장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계실 사장님의 느낌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6. 결론입니다. 빵은 크게 실망, 뷰는 굿. 어쨌든 재방문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사장님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직접 전자렌지에 데워 눅눅해진 크루아상, 치아바타인 척 하지만 제게는 치아바타가 아닌 무엇인가를 굳이 제 돈 써가며 또 겪고 싶지는 않거든요.
덧. 이 글은 [사용기] 보다 [앙지도]가 적합할 것 같긴 한데… [앙지도]는 추천하고 싶은 업장을 소개하는 곳이라 생각해 [사용기] 게시판에 올립니다.
Heartbreaker님의 댓글
상상을 초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