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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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쏟아졌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다.
어머님이 하셨던 당부를 나는 지키지 못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착하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런.
어머니, 저도 이런 모습의 저를 상상한 적은 없어요.
찐득하다, 닦이지 않는다. 강렬한 핏빛. 눈이 아프다.
멈출 수 있었다. 항상 그런 기회는 있었다.
그동안 잘 다스려왔으니까, 너는 화나는 게 없어.. 라는 소리를 곧잘 들었으니까,
참고, 참아내고, 잠시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 그렇게 넘길 수 있었으니까,
내가 이런 자리,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부들거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어머니, 어쩔 수 없었어요. 어쩌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몰라요.
이렇게, 제 인생은 이 길로 향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몰라요.
어머니, 저..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
되집어 보면 그가 도를 넘어버린 거다. 그렇게까지 날카롭게, 그렇게 화나게 한 거야.
한 번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충분히 나도 그냥 여느 날처럼 넘길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내게 기름을 부었다. 끝끝내 꺼내지 않으려던 내 끓어오르는 화를 넘쳐나게 한 거야.
결국.. 그래, 네가 자초한 거다. 네가 자초한 거야.
한 번쯤 참지 그랬어, 한 번쯤. 너나 나나 이게 무슨 꼴인가. 이 꼴사나운 이 꼴이 뭐야.
나는 어설프게 그를 부등켜안고 있었다. 한없이 무거워지는, 축 처지는 그를 안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 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반짝인다. 칼날.. 그의 형이 달려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얼굴이 구겨졌다. 뛰어들었다.
그래, 이렇게.. 어쩌면 이게 내 운명이었는지 몰라, 내 스스로 내 목을 옥죄고 만 거지.
목을 주욱 내밀었다. 그의 형이 쉽게 할 수 있도록, 그의 분노가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도록.
...
눈을 떴다. 무슨.. 그의 형은 꽉 쥔 칼을.. 부들거리다가 툭 하고 떨어뜨렸다.
그리고 내게 한마디를 했다.
"미.. 미안하다. 미안해."
뭐.. 뭐라고.. 뭐가.. 뭐가..
"미.. 미안해.. 내 동생을.. 줘.. 이제 내게 줘.."
그의 형은 팔을 뻗어 그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한참을 그렇게 절규하며 눈물을 쏟아내던 그의 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그만 떠나줘. 그만, 이 모든.. 건 잊고.. 잘 살아.."
나는 굳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운명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나는..
원한은 원한으로 멈추지 않는다.
오직 자비만이 원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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