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오늘의 한 단어 -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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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선 땅에 괴수들이 나타난 것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한양에서 나타났고 한양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
나라님도 그때 승하, 아니 뒈졌다.
괴수들이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보다 나라님이 뒈졌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는지 팔도의 이씨 성을 가진 양반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괴수들이 습격했고 그 양반들도 다 같이 뒈져버렸다.
괴수가 양반만 죽이지 않았다.
양반이나 천민이나 가리지 않고 죽이니 참 공평한 세상이 됐다.
나는 모시던 양반 나리가 반란을 주도했다나 뭐라나 같이 잡혀 와서 뒤지게 맞다가 기절해서 옥에 갇혔는데 그 덕에 살았다.
나를 거둬주고 멕여주시던 양반 나리의 시체도 못 찾았다.
다 같이 뒤졌는데 시체야 뭐.
괴수들이 만들어 놓은 아비규환을 뚫고 이틀만에 집에 돌아왔다.
괴수들의 습격에 피난 가던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갔는지 들고 갈만한 건 다 들고 간 모양이다.
곡식 한 톨을 남겨 두지 않았다.
나리의 안방으로 짚신 발로 들어갔다.
예전에야 먼지라도 묻을까 조심했지, 지금이야 조심할 것도 없다.
그래도 양반 집이라고 솜이불 한 채는 있었는데 그것도 사라졌다.
상관없다.
내가 찾던 건 그게 아니니까.
병풍 뒷벽에 활줄이 풀린 활과 화살 그리고 전통이 걸려 있었다.
활은 의외로 쏘기 힘든 무기이고 배우기도 어려워서 피난민들이 가져가지 않았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에 화살들을 챙겨 넣고 애기살과 통아는 보자기에 말아서 등에 멨다.
활에 활줄을 걸고 도망쳤던 한양으로 향했다.
집채만 한 괴수를 잡으려는 건 아니다.
거둬준 양반 나리의 은혜나 원수를 갚으려는 것도 아니다.
나리한테 배운 활 솜씨가 그놈들한테 통하는지 시험해 볼 요량이다.
뭐, 몇 마리 잡게 되면 좋고 아니면 도망쳐야지.
벗님님의 댓글
팔을 달달달 떨린다. 힘깨나 쓴다고 생각했는데, 활시위를 당기는 것은 낯설다.
"허허허, 그래, 그래. 잘했다. 이제 저기로.."
툭, 화살을 놓이자 바람을 가르는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올랐다.
아름다운 포물선. 과녁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풀숲에 떨어졌다.
"허허, 그래, 잘 쏘았다. 다시 한번 당겨보자꾸나."
나리는 처음 활을 잡아보는 나를 보며 즐거워했다. 하인들의 눈길이 따가웠다.
나리야 재미 삼아 이러는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특별 대우로 비쳣으리라.
처음은 어설프고 실수를 연발했지만, 몇 주가 흐르고 나니 재법제대로 과녁을 향했다.
그즈음이었다. 조선 천지를 뒤집어버리는 괴수가 나타났다는 것이..
잘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