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오늘의 한 단어 -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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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곧장 장례식장으로 온 터라 입성을 갖추지 못한 게 마음에 쓰였다. 그런데 구두를 벗자마자 양말 앞뒤에 난 구멍으로 검지발가락과 발뒤꿈치가 허옇게 드러난 것이다. 향을 올리고 상주와도 인사를 해야 하는데 허옇게 드러난 발가락이 여간 민망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양말을 벗고 맨발로 조문을 하는 것도 예가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이 바쁘더라도 집에 들렀다 올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벗던 신을 다시 꿰차고 근처 편의점을 찾아 나왔다.
장례식장 뒤편에서 사내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민망함과 귀찮음에 답답하던 참에 흡연자까지 보니 잊고 있었던 흡연 욕구가 꿈틀댔다. 이번 딱 한 대만 피우고 다시 금연을 하자. 맨질맨질하게 낯빛을 바꾸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담배 한대 얻을 수 있을까요?"
가까이서 보니 연배가 어려보였지만 아쉬운 건 내가 아닌가? 최대한 정중하게 담배구걸을 시도했다. 물론 어차피 갈 편의점, 그곳에서 사서 피우면 깔끔할 일이지만, '금연 의지'에 대한 나름의 도의가 있는 법이니까. 이런 구차함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벌의 일종이라고 생각을 갈무리했던 까닭이다. 사내들은 흘낏 보곤 아무 말 없이 담배 두 대를 내밀고 불을 붙여주고선 자신들의 대화를 이어가기 바빴다.
담배를 내게 건넸던 사내가 술냄새를 풍기면 말을 쏟아냈다.
"예전에 다 매장이었지만 지금은 장례법이 바뀌어 다 화장하잖아. 아무리 법이라지만 이거 전통을 무시하는 거 아니야?"
맞은편에서 밤하늘로 담배 연기를 쏘아올리던 사내는 시큰둥하게 대걸이를 했다.
"전통을 '조선시대'에서만 찾아서 그런 거라니까."
술김인지 그 사내의 목소리는 차츰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럼 '조선시대' 이전에는 매장을 안 했대? 고인돌도 매장의 흔적 아니야? 청동기 시대부터가 아니냐고"
맞은편 사내는 그 사내의 감정이 일렁거리는 걸 모르는지 여전히 밤하늘만 보면 중얼거렸다.
"맞아. 그렇다고 장례가 모두 매장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우리에게도 불교의 영향으로 남방의 장례 풍습인 화장도, 전라 청산도에서는 유목민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풍장까지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
나는 구걸한 담배를 몇 숨에 깊이 빨아 피우고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양말을 사서 갈아신고 올 참이면 어쩌면 싸움 구경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갖고서 말이다.
벗님님의 댓글
문상을 오신 분들, 조금은 술에 취해 고인을 떠올리며 지난 날들을 회상하시는 분들,
위로와 걱정, 앞으로의 나날들에 대해 따뜻하게 손을 맞잡고 눈물을 떨구어주시는 분들,
나는 인연이 많지 않아 조용히 절을 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죽는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둘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는 한 몸인지도 모른다.
쾌활한 이가 떠나버린 자리에 덩그라니 남아버린 커다란 슬픔의 크기 만큼,
넘치는 사랑을 전하가 이가 떠난 자리에는 채워지지 않는 안타까움과 눈물이 한 가득이다.
어떻게 사는가, 또 어떻게 마지막 이별을 해야 하는가.
술잔을 한 잔 기울인다.
내내 마음 한 켠이 쓰리다.
이렇게 보내줬어야 하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담담하게 보내줬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내 친구의 아이, 사회인이 미처 되어보기 전, 정장 한 번 입어보기도 전에
그렇게 떠나버린 그 아이를 보내주게 되었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위로를 전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를 어떻게 보듬어주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아이의 주검이라도,
마지막 그 아이가 입고 있던 옷,
신발 한 짝이라도 있었더라면..
잘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