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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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군이 강남에 가줘야겠어.”
“예? 강남이요?”
동작구의 작은 마트에 자리 잡은 전직 마트 사장 현직 생생 마트 생존자 무리의 대장인 장 씨 아저씨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지난번에 들어온 정 씨 말이야.”
나는 지난주에 무리에 합류한 30대 남자를 떠올렸다.
좀비 사태가 일어난 지 삼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넥타이에 와이셔츠, 양복에 구두를 신은 남자다.
첫인상부터 싸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지만 생존자들이 다 어디 하나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니 사지만 멀쩡하다면 못 받을 이유는 없었다.
“예. 제약회사 출신이라던 분요?”
“그래 그 친구가 자기 회사 의약품 창고 열쇠를 들고 왔어. 당직 서다가 도망치느라고 들고 있었다던데 길만 뚫으면 앞으로 몇 년간은 약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실제로 약이 있는지, 구라는 아닌지 확인하라는 거죠?”
“그래. 강남에 좀비가 많아서 못 들어가니까 대충 어디서 열쇠 주워 와서 창고 열쇠라고 할 수도 있잖아.”
“예. 나중에 길만 연결되면 대박 난다고. 그러니까 대우 좀 해달라고 사기 칠 수도 있죠.”
“그러니까. 확인 좀 해줘.”
살아남으려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많았다.
제약회사의 창고 열쇠나 식량창고의 위치, 지자체의 재난 대비 용품 보관 장소들을 이야기하며 다가와서 하는 소리가 좀비 때문에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내가 주로 하던 일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해 보는 일이었다.
나는 좀비를 피하는데 재능이 있다.
“확인만 되면 규모에 따라서 다른 무리하고 연합해서 길을 뚫을 생각이야.”
“위험한 건 아시죠? 강남에는 좀비들이 장난이 아니에요. 아시잖아요.”
예전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강남에 있는 기업들에 취직하거나 번듯한 강남의 아파트를 사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가기도 싫은 곳이 강남이다.
빌딩 숲에 꽉 들어찬 사람들은 좀비가 제일 좋아하는 먹잇감이었다.
고층빌딩은 계단만 막혀도 도망칠 곳이 없다.
결국 수십억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명품을 걸친 좀비가 되었고 좀비가 된 사람들은 강남 거리를 꽉 메우고 배회했다.
장 씨 아저씨도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서. 김 군하고 동생 것까지 식량을 따로 챙겨 놨어. 안전하게 파출소 소장한테 맡겨놨다고.”
파출소 소장은 순경들 몇 명하고 무리를 이루었고 소규모의 강력한 무력 집단이 되었는데 중립을 선언하고 주변 무리의 중재 역할을 자청했다.
그만그만한 전력으로 싸울락 말락 냄새만 풍기던 여러 무리는 중재에 모르는 척 응해서 몇 군데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의뢰에 대가를 파출소에 맡기는 건 신뢰를 주기 충분했다.
“음…. 알겠습니다. 열쇠하고 주소 주세요.”
“그래. 여기, 다 준비해 놨지.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예.”
곡물가루와 물, 빈 물통을 받아서 배낭에 넣고 마트를 나왔다.
동생이 걱정스럽게 보았지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게 마지막 보는 모습이라면 웃는 게 좋다.
신발 끈을 여러 번 꽉 묶고 좀비 천지가 된 강남으로 향했다.
벗님님의 댓글
좀비들은 시각보다는 후각이 더 예민한 것인지, 사람의 피 냄새에 극렬하게 반응한다.
이 상태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아마 여기를 벗어나서 몇 걸음도 채 걷지 못하게 되겠지.
이 열쇠 하나에 내 목숨을 걸 만큼 충분한 의약품이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랬다.
맞는 것이겠지. 열쇠를 끼우고 손에 힘을 주며 돌렸다. 아, 맞다, 돌아간다.
철컥.
창고가 열렸다. 그런데..
잘 쓰셨습니다. ^^
어디가니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