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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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하늘걷기 121.♡.94.37
작성일 2024.09.2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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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낚시다.

 

나는 뼈대만 남은 자동차 밑에 몸을 숨기고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가로등에 밧줄로 20kg 쌀 한 포대가 묶여 있다.

이런 시기에 쌀이라니.

 

가마솥에 쌀 한 주먹 넣고 끓여서 쌀 물을 먹어도 오랜만에 쌀 먹는 호사를 누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시기다.

 

고가 도로 가로등에 쌀이 걸려 있다.

 

나뿐만 아니라 뭐라도 건질 것 없나 여기저기 뒤적거리는 청소부들이 다들 어디선가 숨어서 쌀을 노리고 있을 거다.

 

누가 저런 낚시질을 할까?

쌀을 차지 하기 위해 청소부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기를 바라는 걸일까?

서로 죽고 죽이라고?

 

그건 쌀 한 봉지만 흔들어도 가능한 일인데?

 

저 정도 쌀이면 겨우 청소부들을 끌어내려는 게 아니다.

생존자 무리가 나설 일이다.

 

―드드드득!

 

벌써 등장했다.

킥보드를 탄 무리들이다.

 

칼에 못을 박은 야구 방망이를 든 시커먼 아저씨들이 킥보드를 타고 오는 게 조금 우습지만 자전거나 오토바이는 타이어가 다 터진 지 오래다.

 

그나마 우레탄 바퀴가 달린 이동 수단들만 사용이 가능한데 저 무리는 열 명이나 킥보드를 타고 왔다.

보이는 것 보다 무장이 더 단단할 거다.

 

어쩌면 총을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킥보드를 조심스럽게 세워 놓은 무리는 무기들을 꺼내고 2열로 고가 도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사람들이 다 볼만한 위치에 멈춰 섰고 대장인 듯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어디서 구한 건지 정글도를 들고 있다.

 

“우리는! 4동 오거리파다!”

 

남자가 주변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오거리파, 유치한 깡패조직 이름이지만 생존자 무리는 그런 식의 이름을 선호했다.

 

그게 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자는 정글도로 가로등에 걸린 쌀을 가리켰다.

 

“저건! 우리가 가져갈 거다! 불만이 있으면 지금 나와라!”

 

칼 들이대고 나오라고 하면 못 나오지.

누가.

 

“여기! 내가 불만이 있다!”

 

누군지 보려고 고개를 들뻔했다.

다행히 자동차 바닥에 머리를 박기 전에 멈췄다.

 

옆으로 몸을 돌려서 소리가 들린 곳을 찾았다.

 

오거리파 대장이 두리번거렸다.

 

“어디냐?”

“여기다!”

 

나처럼 자동차 뼈대 밑에서 지켜보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포수다.

 

덩치 큰 남자가 포수 마스크에 가슴 보호구 무릎과 정강이까지 이어진 보호대를 착용했다.

 

그리고 용접해서 만든 것 같은 긴 창을 들었다.

 

“8동 장비!”

 

오거리파 대장이 소리쳤다.

 

8동의 장비라는 별명의 저 남자는 일곱 명 한 무리를 저 복장으로 혼자서 막아냈다고 장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성이 장 씨라 그 별명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오거리파와 장비가 대치하는데 목소리가 더 들렸다.

 

“나도 불만 있다!”

“나도!”

“여기도 불만 있다!”

 

크로스보우를 든 두 명이 건물 사이에서 나왔고 방검복을 입음 순경 세 명이 삼단봉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검도 호구에 일본도를 든 남자가 일어섰다.

저 남자는 나도 아는 남자다.

예전에 삼거리에서 검도 도장을 운영하던 사범이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다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다.

 

정말 누가 미끼를 걸었는지 몰라도 다들 낚여서 서로 싸우기 일보직전이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모든 전자장치가 멈췄다.

외부의 침입 없이 그것만으로 세상은 망했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남들이 먹다 흘린 걸 주워 먹으며 사는 청소부다.

 

누가 낚시를 하는지 몰라도 여기서 절반은 죽을 거다.

쌀은 바라지도 않는다.

죽은 놈들 주머니나 털 생각이다.

 

저게 낚시라면 나는 바닥에 떨어진 떡밥을 주워먹는 존재다.

 

오늘 하루 살 수만 있다면 뭐라도 상관없다.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25 13:21
일촉즉발, 누가 먼저 발을 땔 것인가.
상대해야 할 수가 많다. 장기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치열한 혈전, 쉽사리 먼저 움직였다가는 먼저 기운이 빠진다.
되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비축해야 한다.
최종 승자가 된다면 적어도 한 달은 거뜬이 버틸 수 있다.
그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패거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슬렁 어슬렁거리며 좌우로 퍼진다.
저들의 손 마다 반짝이는 금속이 내뿜는 비릿한 살육의 냄새가 가득이다.

인류를 구원해줄 것이라던 눈부신 과학의 발전은 결국 구원을 해주긴 했다.
더 이상은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독립적인 인류로 거듭나게 되지 않았던가.
무뎌지던 기억력은 되살아났고, 과체중, 비만으로 내달리던 사람들은 날씬해졌다.
혹은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불로불사, 아니 불로즉사를 맞이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환경이 바뀌었는데 따르지 않으면 뭐.. 그런 거다.
인류의 가장 큰 숙제는 생존이었다. 생존, 살아남아야 하는 것.
살아남아야 그 다음 고상한 것들을 추구할 수 있지, 이게 없으면.. 바로 골로 가는 거다.
그러니, 저 가로등에 걸려 있는 저것에 목숨을 걸지 않겠는가.
다 살아남으려고 최선을 다 하는 거지.

왼쪽에서 슬금 슬금 다가오던 이들은 고갯짓을 하더니 달려오기 시작한다.
오른쪽에 있던 이들도 신호에 맞춰 달려오기 시작한다.
자, 그래, 어서 오라.
나는 오늘 꼭 따끈한 쌀밥을 먹고 싶으니.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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