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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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이 최고지. 신토불이 같은 게 아니더라도 국산 포션이 최고라는 건 누구나 안다.”
행보관의 말이 길어졌다.
하지만 국산 포션이 최고라는 건 맞는 말이다.
예로부터 국산 인삼은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유명했다.
좋은 약들이 많아진 지금이야 건강기능 식품 정도로 위치가 내려왔지만 그래도 인삼과 인삼을 이용한 홍삼은 우리나라 특산품 중 하나였다.
어느날 아무도 모르게 충청도 산골 어디쯤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큰 사고 없이 자연히 닫혔다.
그 자체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보다 게이트에서 어떤 식물의 씨앗이 산에 자리 잡았다는 게 더 신기한 일이었다.
씨앗이 자리 잡은 지 20년.
충청도에는 세계수가 자랐다.
그 주변 땅 식물들은 성장의 축복을 받았고 그 혜택을 인삼이 제대로 받았다.
숨만 붙어있으면 상처와 병을 고칠 수 있는 희대의 명약이 대량 생성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충청도의 인삼밭이 되었다.
당연히 24시간 5조 3교대로 인삼밭을 경비 서는데 나는 그 경비 중대에 자원입대한 하급 각성자다.
D급 이하는 게이트를 들어가는 것보다 나처럼 입대해서 5년 복무하는 게 더 이득이다.
혹시 아나.
인삼밭 경비 서다가 잔뿌리 하나라도 건질지.
잔뿌리만 있어도 웬만한 병은 치료할 수 있다.
물론 몰래 가져가면 군법으로 처벌받는다.
그래서 행보관이 일장 연설을 하는 거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욕심 내지 말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암구호는?”
“초록. 매실입니다.”
“그래. 알았다.”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전 군대는 규율이 엄했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군대는 자원입대이고 나는 하급이지만 각성자다.
하급이더라도 각성자는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근무 외 시간은 그렇게 빡빡하지 않고 이런 질문 정도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저, 행보관님?”
“왜? 김 상병?”
“초록매실이 무슨 뜻이 있는 겁니까?”
“하하, 내가 어릴 적에 있었던 음료수야.”
“아! 그렇습니까?”
“그래. 맛있었지.”
“예.”
나는 행보관의 말을 믿지 않았다.
행보관은 다른 건 다 좋았지만, 사병들 사이에서는 마이너한 입맛으로 유명했다.
“그럼, 어서 가서 교대 해줘.”
“예. 알겠습니다. 충성!”
“음. 그래.”
행정실을 나와서 앞에서 기다린 조원들을 봤다.
일병 둘에 이병 하나다.
사병의 복무기간이 5년이다.
이병이 6개월, 일병과 상병이 1년 6개월씩이고 병장이 6개월이다.
나는 다음 달에 병장 진급을 앞둔 상황이라서 나 혼자만 들어갔다 나온 거다.
“가자.”
“예!”
내가 앞서서 가고 뒤따라왔다.
각성자들이라 등에 칼 한 자루씩을 차고 있지만 소총도 하나씩 어깨에 걸치고 있다.
접근하는 외부인에게 경고하거나 몬스터를 쫓을 목적이다.
아무래도 마법사가 없다 보니 소총은 어쩔 수 없이 필수 도구다.
사회에서야 각성자가 총 들고 다닐 일은 없지만 우리는 다르니까.
“장 상병님!”
“왜?”
일병 중에서는 선임인 이일병이 윤 이병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오늘 우리 막둥이 생일인데 근무 끝나고 회식 좀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 해야지.”
중대, 분대별로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근무는 조별로 서다 보니 조원들끼리 조금 더 끈끈한 편이었다.
나는 회식을 하자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일병은 뭔가 더 할만이 남은 것 같았다.
“왜?”
“그거 혹시 못 먹습니까?”
“그거?”
“요새 막둥이가 감기도 자주 걸리고 체력도 떨어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음….”
이 일병이 이야기하는 그거는 우리 부대 중에서도 일부만 아는 전설을 이야기하는 거다.
예전에 부대가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병장 하나가 우연히 인삼 한뿌리를 주웠다.
자기가 반을 몰래 먹고 나머지 반은 페트병에 넣고 소주를 채웠다.
그리고 산 위에서 아래로 던지고 자기가 믿는 후임병에게 산 어디엔가 인삼주가 있다고 전하고 전역했다.
이후로 말로만 전해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다른 병사는 조원들끼리 인삼주를 한잔씩 돌려 마시고 소주를 채운 후 다시 산에서 던졌다.
이 일은 계속 반복됐고 전역한 우리 조의 병장이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나는 제초 작업을 하다가 인삼주를 발견했고 모처에 숨겨 두었다.
그 이야기를 이일병에게 말하고 날 한번 잡자고 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국산이 최고다.
그 최고인 인삼으로 만든 몇십 년 묵은 술을 오늘 먹을 거다.
아주 기대된다.
벗님님의 댓글
생일은 맞은 일병은 기대가 찬 눈빛으로 김 상병이 들고 있는 인삼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야, 아주 맛이 기가 막히지."
"오.. 기대되지 말입니다."
몇 십 년이 흘렀음에도 술병 안의 인삼에서 뿜어져 나오는 멋진 자태는 여전했다.
이전의 맛과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 김 상병은 뚜껑을 살살 돌리며 열었다.
김 상병은 순간 술병을 놓쳤다. 인삼주는 바닥으로 나뒹굴며 아까운 술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쓰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벌떡 일어나 한 걸음 뒤로 물렀다.
술병 안의 몇 십 년이나 지난 인삼이 꿈틀거리며 기어나오고 있었다.
잘 쓰셨습니다. ^^
팬암님의 댓글
제가 근무했던 부대는 범면(비탈면)이 매우 경사져서 저렇게 던져놓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것 같습니다... 술 공수도 힘들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