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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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하늘걷기 121.♡.94.37
작성일 2024.10.0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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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어요?”

 

나는 김 씨에게 물었다.

김 씨는 커다란 등산 가방을 등에 힘겹게 메고 있었고 나도 등에 멘 작은 가방과 가방 옆에 야구 배트, 허리의 정글도를 점검하고 있었다.

 

“예! 가죠.”

 

김 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난 정글도를 뽑아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도 우리는 보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철문의 녹슨 경첩에서 나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큰 것 같았다.

 

우리가 문을 나서자, 뒤에는 문이 닫히고 장애물들을 쌓아서 문을 막은 소리가 들렸다.

 

은신처를 나설 때마다 저 소리를 들으면 다시는 못 돌아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겁이 덜컥 난다.

 

누구나 은신처를 나설 때는 그럴 것이다.

 

나와 김 씨는 비장한 마음으로 은신처를 나왔다.

내가 김 씨의 호위 역이고 김 씨는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

 

빨래다.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는 당연히 생존이 제일 중요하다.

일단 급한 생존 문제가 해결되고 기간이 길어지면 그다음으로 골치 아픈 게 생긴다.

 

바로 씻고 입은 옷을 빨래하는 거다.

 

죽느냐 사느냐의 시점에서는 는 신경 쓸 시간도 정신도 없지만 일단 죽음의 위기만 벗어나면 갑자기 땀 냄새에 오물 냄새가 나고 온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단순히 냄새가 불편한 것 이상의 문제가 있다.

벌레와 짐승, 좀비가 꼬인다는 거다.

깔끔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살기 위해서라도 적당히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세제나 비누는커녕 옷을 빨 깨끗한 물 구하기도 힘든 환경이다.

 

현대의 수도는 전기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리고 이리저리 보내기도 하는데 전기가 없는 환경에서는 쓸 수 없다.

 

강이나 호수, 계곡에서 빨면 되는데 주변이 공개된 야외 환경에서는 혼자 움직이기 어렵다.

 

그래서 김 씨와 내가 빨래를 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우리는 북한산 쉼터를 중심으로 은신처를 만들어 놓았다.

다 좋은데 계곡까지가 멀다는 것이다.

 

식수는 멀지 않은 곳에 폐쇄된 약수터를 이용하지만, 빨래를 하기엔 너무 적게 물이 나온다.

 

그래도 그물을 가지고 씻거나 빨래하다가 주변 좀비를 한번 소탕하고 나면 옷들을 모아 한꺼번에 빠는데 그게 오늘이다.

 

군대에서 속옷 정도나 빨아봤지, 손빨래는 한 적이 없는데 이런 세상이 되니 원 없이 빨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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