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하다 보니...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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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잡일전문가 118.♡.101.64
작성일 2024.06.1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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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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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음식은 그래도 어느새 세 명의 몸 속으로 다 사라졌다. 진짜 인간 승리라는 것은 이런 것 같다.

세 명의 위장 크기가 이렇게나 크다니.

하지만 또 하나의 고비가 다가왔다.

"디저트는 무엇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수정과, 커피, 젤라토, 푸딩이 준비돼 있습니다."

아니, 이건 절대 못 먹는다. 진짜 숨만 쉬어도 좀 전 까지 먹고 마시던 것들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저는 괜찮습니다."

"여기 수정과가 참 맛있어요. 일단 드셔 보세요. 강이사님도 수정과 괜찮으시죠? 여기 수정과로 셋 준비해 주세요."

조이사님은 우리 대답도 듣지 않고 수정과를 주문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수정과를 기다리는 도중 강이사님은 슬그머니 자켓이 보관된 옷장을 열어 지갑을 꺼냈다.

"아, 강이사님. 여기는 제가 계산할겁니다. 놔두세요."

"에이. 그래도 이건 저희가 내야죠. 법인 카드입니다. 회사에서 내는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도 모자라실텐데…"

강이사님의 눈이 커지며 반문했다.

"네? 세 명이 한정식 먹는데 뭐 얼마나 나왔겠습니까. 아직 이거 한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 생각보다 비쌉니다. 그리고 애초에 제가 모시고 왔으니 제가 하는게 맞습니다. 놔두세요."

오우. 멋진데? 드라마에서 보면 대기업 이사는 대부분 갑질하고, 매너도 없는데 여긴 드라마 속 세상은 아닌가보다.

조이사님이 이어서 계속 말했다.

"이미 계산도 다 된거라서 그냥 수정과만 드시고 일어나시면 됩니다."

강이사님은 송구스러운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다음엔 꼭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 소주잔 보다 조금 큰 백자에 담긴 수정과가 나왔다. 비싼데라 그런가 하얀 잔에 담긴 짙은 갈색의 수정과는 보는 것 만으로도 고급스럽게 보였다.

어디 맛은 어떨까?

배는 부르지만 그렇게 맛있다고 극찬하는 수정과를 한 모금 마셨다.

이게 수정과라고? 내가 지금껏 마신 수정과는 뭐지? 기름진 요리도 많았기에 약간 느글거리는 속도 진정되고, 웃긴 말이지만 이걸 마시니 소화가 되는 기분이었다.

"우와. 이거 엄청 맛있네요."

"하하. 그렇죠? 여기는 수정과가 화룡점정이죠. 입맛에 맞아 다행입니다."

강이사님도 우리 대화를 듣고 바로 수정과를 한 모금 마시고 감탄을 했다.

"수정과에 이런 말 하기가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품격 있는 맛입니다. 계피향이 너무 과하지도 않은데 또 입안에 확 퍼지는 그 향이 굉장히 절도가 있네요."

"강이사님 표현이 멋지시네요. 시인 하셔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마지막으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일어섰다. 통로로 나가는 도중 조이사님이 우리 행선지를 물어봤다.

"9시가 넘었네요. 두 분은 모두 집으로 가십니까?"

"예. 일단 오늘은 퇴근해야지요. 이 시간에 사무실 들어가기도 뭐하고. 임대리도 바로 집으로 갈거지?"

당연히 가야지요. 사내 갑질 하려고?

"네. 일단 오늘은 들어가고, 일정 마무리는 내일 지으려 합니다. 오늘 확인한 취약점도 보고서에 정리해야 하니까 내일은 일이 좀 많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조이사님은 다시금 물었다.

"두 분 댁이 어디신가요?"

"아, 저는 바로 근처입니다. 택시 타면 기본 요금입니다. 임대리가 어디였지?"

"저는 하계동이에요. 강 건너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돼요."

"강 건너서 많이 올라가네요. 그럼 임대리님은 저랑 같이 가시죠. 집에 가는 길이라 중간에 내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민된다. 고급 차로 집에 편하게 갈 수는 있겠지만 상대는 갑. 거기에 높으신 분. 이건 거절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강이사님이 먼저 선수를 쳐 주셨다. 고마워라.

"아유. 아닙니다. 맛있는 식사도 얻어먹었는데 일부러 태워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저희 집 노원구에요. 그냥 북부 간선 타고 주욱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요 뭐. 중간에 한 번 빠지고 거기서 올라가도 되니까 제가 집까지 배웅하겠습니다."

못 빠져나갔다. 다시 소화가 안될 것 같은데.

가게 밖으로 나오자 검은 색 고급 세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앞좌석에 앉아야겠다.

"제가 나중에 내리니까 왼쪽에 앉겠습니다. 임대리님이 오른쪽에 타세요"

어억. 뒷자리에 같이 앉아서 가야하나보다.

이런 고급 차를 타보는게 처음이라 좀 많이 황송했다. 문 닫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세단은 소리 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차 안은 바깥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엔진 소리 조차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숙했다.

정적이 잠시 흘렀다. 이거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꺼내지?

내 마음을 읽은 것 마냥 조이사님이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얘기 말인데요. 조사하는거."

이 양반이. 그래서 나랑 굳이 같이 가려 했던건가? 설마 집도 나 데리고 가려고 노원에 산다고 한거 아냐?

"아. 네. 제가 근데 회사 소속이기도 하고, 불법적인걸 못해서요."

"불법은 아닐거 같은데, 그리고 그냥 막연한 궁금증이라서 물어보는거에요."

"아. 넵. 어떤게 궁금하세요?"

"휴면 계좌라는거 알죠?"

"휴면 계좌면 그 뭐시냐, 오랫동안 사용 안한 통장 말씀하시는거죠?"

"네. 보통 사람들이 몇 백원, 몇 십원 정도 남은 통장은 더 이상 안 쓰고 방치하잖아요. 딱히 시간 들여서 해약해봤자 동전 몇 개만 들어오는거니까."

"그렇죠. 저도 아마 찾아보면 몇 개 있을 것 같은데."

"그런 통장들을 다 찾아서 잔액을 전부 더하면 얼마나 될까요?"

"으음… 어차피 몇 십원, 몇 백원 단위니까… 얼마 안될 것 같은데요?"

"대한민국의 국민이 5천만 명이죠."

"근데 모든 사람이 휴면 계좌를 가진것도 아니니까 얼마 안될 것 같아요."

"과연 그럴까요? 전에 어디선가 듣기로는 농업은행에 있는 휴면 계좌만 다 모아도 천억 단위일거라고 하더군요."

천억?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천억이라니.

"그 정도가 될까요?"

"설립된지가 반 세기가 넘었고, 그런 휴면 계좌 중에서 사망자의 계좌나 찾을 생각이 없는 노인들의 계좌까지 다 합친다면요?"

확실히 그 정도면 단위가 꽤 커질 것 같다.

"그럼 이사님은 혹시 그 돈을 조사하고 싶으신건가요?"

"조금 궁금하긴 하네요. 그 돈이 어떻게 관리가 되는지, 이미 누군가가 유용하고 있는지 말이죠. 근데 이런 것도 불법적인건가요?"

애매하다. 개인 정보를 터는건 아니다. 하지만 조사를 위해서는 은행 시스템에 액세스를 해야 하고, 이는 불법이다.

"은행망에 들어가서 관련 정보를 찾아야 하니 일단 통신망법 위반에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면 혹시 공개된 정보라면 어떨 것 같나요?"

"공개가 된거라면 뭐 수집만 해서 가공만 하면 될거 같긴 한데요. 근데 계좌 정보가 애초에 공개는 안됐을테니 불가능할겁니다."

조이사님은 약간 실망한 눈치였으나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궁금했던건 다 풀렸습니다. 근데 이렇게 얘기를 해보니 임대리님 참 실력도 있으신 것 같고 좋네요. 종종 연락 좀 드려도 될까요?"

아. 네 물론이죠. 언제든지 메일 주시면 답장 해드리겠습니다."

"아뇨. 개인적으로 한 번씩 안부도 묻고, 밥도 먹고 하게.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아니. 싫다. 왜 개인적으로 물어보려 해? 하지만 내 옆의 사람은 갑님이다.

눈물을 머금고 가방 안의 메모지를 꺼내 전화번호를 적어서 조이사님에게 건넸다.

"바로 이 번호로 전화 걸게요. 찍히는게 제 번호니까 저장해두세요."

'우우우웅… 우우우웅…'

"전화 왔죠? 그거 저장해두세요."

그 사이에 어느덧 차는 하계역 근처에 도착했다.

"아, 저기 역 사거리에서 내리겠습니다. 바로 옆 아파트라 1분도 안 걸립니다."

"박 기사님. 여기서 세워주세요."

역시나 고급차는 덜컹거리는 느낌도 없이 부드럽게 정차했다. 나는 그 고귀한 문을 조심스레 열고 또 조심스레 닫았다.

조이사님은 창문을 열고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정말 반가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마무리 잘 부탁드릴게요."

"예, 저도 오늘 감사했습니다.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조이사님이 탄 차는 소리 없이 출발했고, 난 그 차를 보며 다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근데, 진짜 휴면 계좌의 돈을 다 모으면 천억 단위가 나오는걸까?


(계속)

댓글 7

잡일전문가님의 댓글

작성자 잡일전문가 (118.♡.101.64)
작성일 06.16 22:04
아무도 안 읽으셔도 주욱 쓸겁니다 'ㅅ'!
주말 또는 휴일에 1-2편 정도 써서 올릴 예정입니다.

정말 기본이 되는 설정 딱 하나 외엔 아무것도 구상을 안해서
빈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태클과 반박과 지적 모두 환영합니다.

피드백 해주셔요~

아라님의 댓글

작성자 아라 (49.♡.11.6)
작성일 06.16 22:16
하.. 작가님, 다음 화는 .. 언제.. ? 몰입감 쩌네요.. ㅎㄷㄷㄷ 유료결제없이 웹소 보는거 같아요ㅋㅋㅋㅋ ㅠㅠ 감사합니다  👍 일단 따봉도 드립니다..ㅋㅋ

잡일전문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잡일전문가 (106.♡.89.104)
작성일 06.17 01:26
@아라님에게 답글 담주 주말에 올리겠습니다‘ㅁ’
아니면 내일 출근해서 인수인계 빨리 끝나면
시간 내서 좀 써보겠습니다 _ _)

높다란소나무님의 댓글

작성자 높다란소나무 (108.♡.202.71)
작성일 06.17 00:13
저런 갑님은 없을거라는게 유일한 흠이랄까 ㅎㅎㅎ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조이사의 정체가 곧 나오나요. 흥미진진합니다.

잡일전문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잡일전문가 (106.♡.89.104)
작성일 06.17 01:29
@높다란소나무님에게 답글 아. 있긴 합니다.
1-3편은 경험담 베이스로 작성한거라...
물론 비싼 밥은 안 사줬습니다. 자기들 잘못만 인정한거..

밥은.. 지난 주에 저 퇴사한다고 하니까
사장이 간판도 제대로 없는 가게 데려가줘서...
(사직 방어로 인당 백 만원 짜리 밥 얻어먹었습니다;;)

조이사 정체는...
나아중에 나올겁니다.
담달에 나올 수도 있습니디-ㅁ-

아라님의 댓글

작성자 아라 (49.♡.11.6)
작성일 06.17 17:34
아참.. 여기 중간쯤에 농업은행과 농민은행이 번갈아 쓰인 오타(?)가 있습니다. ㅎㅎ 말씀드릴랬는데 깜빡했군요.

잡일전문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잡일전문가 (118.♡.216.4)
작성일 06.17 17:48
@아라님에게 답글 엇. 어제 보고 수정했었는데 저장 안됐었나봐요 ;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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