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 대한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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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보드에 대한 이야기 #1
https://damoang.net/writing/2078
수동식 타자기는 종이를 둥글게 말아 올리는 드럼과 먹지,
표적을 노리듯 정중앙에 탁탁탁 찍어내는 글자판들이 모두 함께 있는 일체형이었습니다.
글자판이 있다는 건 곧 타자기가 있다는 의미였죠.
본체와 키보드가 분리? 이런 건 상상할 수도 없는 구조였죠.
커다란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어 젖히고 드르륵 드르륵 종이를 끼우고,
타다다닥 리드미컬하게 글자판을 두드리고, 스페이스 바, 탭 키를 누르고,
리턴 키를 누르면 챙! 하고 돌아오던가.
뭔가 멋진 걸 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타자기 생긴 것부터 경쾌한 소리들이 뭔가 공과 감성이 진하게 묻어있는 그런 물건이잖아요.
저는 수동식 타자기를 자주 써보지는 못했습니다.
아주 잠깐씩 써볼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세게, 또 단발마처럼 짧게 눌러야 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군요. 또 엉성하게 누르는 틈을 주다 보니 글자판끼리 서로 물리고,
아 힘들었습니다.
이에 비해 잠시 쳐봤던 피아노 건반은 상대적으로 정말 부드럽더군요.
오묘한 차이, 똑같이 누르고 두드리는 것이었는데 이 둘은 많이 닮았으면서도 참 달랐습니다.
찍어내는 것이 종이였던 것과 달리,
보여주는 것이 녹색 스크린 모니터로 바뀌는
'전기'를 물려서 사용하는 새로운 세상.
저에게 컴퓨터는 그렇게 다가왔고,
XT 컴퓨터, AT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케이블이 달린 키보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애플 II+ 호환 기종을 사용할 때 격자 무늬의 받침대가 있는 마우스는 써봤지만,
단일한 구조의 선이 달린 키보드를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본체는 조금 뒤로 밀어 놓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앞에 배치했습니다.
전에는 본체에 바짝 붙어서 자판을 쳤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패턴이 바뀐 거죠.
본체란 녀석은 원래 뒤에서 저렇게 뒤치닥꺼리를 하는 거고,
내 앞에 키보드와 마우스가 내 손발이 되어주는 거지.. 이런 마음이 들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계속 쓰겠습니다.
끝.
로얄가드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