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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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이 운명의 끈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명이라 함은 너무 거창하지 않는가.
그저 우연이지 않았을까, 우연.
어쩌다 보니, 우주 만물이 우연스럽게 그리 되어
내가 한 생명으로 발현되지 않았을까.
이를 두고 운명이라 함은
그저 말 붙이기 좋아하는 이들의 농이 아닌가.
나는 그리 생각한다.
나는 우연스럽게 이렇게 생을 선물받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내 삶 또한 그런 우연의 산물이라 여긴다.
살아지니 삶이지, 이 흐름에 무슨 이름을 달까, 그저 사는 게지.
작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 위에 어쩌다 떨어진 이파리 하나가
흐름을 따라 물 위에 간신히 떠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 게다.
이런 소소한 선물을 받아 흔들 흔들 물결을 따라 그렇게 살아간다.
부질없지, 부질없어.
물길을 거슬러 오를 수도 없고, 물 위로 솟은 바윗돌로 갈린 것 탓할 수도 없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야. 이 흐름에 순응하고 이 흐름에 맞춰서 그렇게.
허나,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물결치면 치는데로, 흐르면 흐르는데로 몸을 맡기지는 않아.
있는 힘껏 이파리를 들어올리려 애를 쓰기도 하고, 한쪽으로 기울이려 노력도 하지.
아주 조금이나마 그렇게 내 흐름에 영향을 주고 싶으니.
비록 아주 작은 차이겠지만, 모두 흐르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바뀌지 않았겠어.
저 친구, 그래도 여간 애를 쓰며 살아오지 않았겠나.. 라고 누가 말하지 않겠어.
무지렁뱅이마냥 이도 좋고, 저도 좋다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아야 하니,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 흐름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리 사는 게지.
그렇게 사는 게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