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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가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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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isckh
작성일 2025.02.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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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조회
1 추천

본문

// 이야기 #1

문장 : "출구가 정말 있는 걸까?"

단어 : 미로

제한 : 이야기의 배경이 현대여야 함

성격 : 끈질기고 호기심 많음

---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출근하는 길에 있는 흡연 장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담배 한 대를 피우며 하늘을 보고 있었던 차에 일어난 우연한 만남이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오래 세탁하지 않은 티가 나는 낡은 점퍼를 입은 노인이 나에게 걸어오더니 말을 걸었다.


 "담배 한 대 얻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딱히 대답은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담배 한 까치를 꺼내어 라이터와 함께 건내 주었다.

노인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 난 후 라이터를 돌려주며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으나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고 있던 시끄러운 음악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고 그 노인은 계속해서 뭔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어서 잠시 노인의 입술을 보고 있다가 반쯤은 예의상, 반쯤은 궁금함에 음악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그래서 이렇게 제가 작은 은혜를 얻었으니 보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좋게 생각 하자면 인생 선배의 덕담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사이비 종교 포교 활동의 시작 멘트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일단 적당히 듣다 끊고 출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사주 관상을 좀 풀어 이야기 해드리고 싶은데 다른 정보는 말해줄 필요 없고, 본인 올해 띠가 어떻게 됩니까?"

'진짜 사이비 종교인가.' 란 생각이 들어 살짝 실망을 하면서도 요즘엔 어떤 말로 포교를 하는지 궁금함이 더 들어 대답을 해주고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개띠 입니다."


 "아.. 개띠, 어디 보자.."


한 모금만 피운 담배를 왼손에 계속 든 채 십간과 십이간지를 중얼거리며 한참동안 계산을 하던 노인이 나를 보고 천천히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본인 올해 33세 맞나요?"


아니다. 일단 올해 개띠는 한국식으로 32세고, 난 44세이다.


 "아닙니다, 그거보단 하나 위 입니다."

 "아.. 그럼 34세?"


 "아니요, 40대 입니다."


내 말이 이상하게 표현되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십이지로도 계산을 틀리는 역술가가 있을리 없어 김이 샌다.

그리고 노인의 눈에 내가 아직 30대로 보인다는게 웃기기도 하고, 사이비 종교가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약간의 호기심이 생긴다.


 "그럼 아직 음력으로 해가 안지났으니 43세.. 맞지요?"


아니다. 설이 지난지 보름도 넘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정확한 대답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적당히 얼머무렸다.


 "네, 뭐 그 쯤 이겠지요.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요."


 "그래요, 내가 계산을 해보니까 본인은 앞으로 내년, 내후년에 횡재수가 있어. 갑작스럽게 큰 재물이 들어온다는 거지."


올해와 내년이란 뜻인지, 내년과 내후년이란 뜻인지. 그 전에 진짜 본인의 계산이 맞다고 생각 하는건지 궁금했지만

노인이 계속 말을 이어가는 통에 물어볼 수가 없다.


 "... 그래서 혹시 로또 자주 사시나?"


 "아뇨, 전혀 구매 하지 않습니다."


어느새 나에게 하는 말투가 가벼워졌다. 역시 우리나라에서 한 방은 로또 뿐 인건가. 


 "내가 10여년 전에 로또에 당첨된 적이 두 번 있어, 2등만 두 번. 그 때는 지금처럼 당첨금이 적지 않아서, 2등을 해도 1억 3천 정도가 나왔다고."


그렇다고 하기엔 현재 노인이 처음 나에게 말을 건 이유와 행색이 딱히 일치하는 느낌은 아니다.


 "내가 꿈을 많이 꿔요. 그래서 예지몽 같은 걸 많이 꾼다고. 그래서 내가 한 번 당첨 되고 얼마 안 있다가 또 당첨이 된거야."


역술과 예지몽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해 졌다.


 "내가 그 때 **제약 이사였는데, 그 후로 퇴사하고 개인 경매 같은 걸 했지. 그러다 뭐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그 때 내가 벤츠 살 거 한 등급 낮춰서 사고, 좀 다른거 덜 사고.."

 "이 주변에 문중 땅도 좀 있고 했는데, 다 날려서.."


점점 말소리가 작아지며 중얼거리는 노인의 왼손에 계속 들려있던, 한 모금만 삼킨 담배는 조금씩 짧아져가고 있다.


 "여튼, 본인은 횡재수가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로또 당첨되는 법을 알려 줄 거예요."

 "이걸로 당첨이 되면 무조건 10%는 기부를 해야 해, 그래야 10년에 한 번 오는 대운이 연속해서 찾아와."


본인도 10% 기부를 해서 두 번째 2등에 당첨 된걸까? 두 번째에는 기부를 하지 않아 노인의 운이 꺾여 버린걸까?

기부? 역시 사이비 종교인가? 이제야 본심, 본론이 나오는건가? 노인의 이야기에 쓸 때 없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본인은 오행 상 토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 올해가 무슨 해인지 알아요?"


을사, 뱀의 해. 원래라면 새해와 설이 지날 때면 관련된 마케팅으로 사람들 머리에 심어져야 할 정보이지만

작년 말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사회가 너무 정신이 없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마케팅인 것 같다.


 "올해하고 내년은 불의 기운의 해야, 오행 상 불이 땅을 밀어주거든? 그래서 대운이 오는 해고 그래서 횡재수도 있는거야."


그리고 오행에 관해 또 일장 연설이 계속되고, 난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른 점이 있는지 가볍게 스쳐 듣는다.


그러다 노인이 나에게 빌려 한 모금만 핀 왼손에 들린 담배 -이제는 절반쯤 타버린- , 가 오른손으로 옮겨지며 긴 재가 담뱃불과 함께 똑 떨어진다.

노인은 담배를 무심하게 바닥에 쓱 닦아 버리고 계속해서 예지몽을 꾸기 위해 잠을 자는 자세, 머리와 다리의 위치 그리고 방위, 또다시 십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문득 노인이 나에게 말을 건 이유가 정말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 였는지, 그냥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어서 였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다시 담배 한 까치를 노인에게 꺼내 준다.


 "아, 이 이야기 다 끝내고 피울게요."


담배를 받아든 노인의 지쳐보이는 얼굴 속 반짝이는 눈동자와 하나 빠져버려 비어있는 앞니가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계속되는 노인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 속 방향 없는 정보들로 만들어진 내 생각의 미로에 한참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슬슬 노인의 이야기가 마무리를 하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 그래서 난 이제 연금복권만 하고 있어, 그러니까 본인은 로또를 살 때 이 점을 꼭 생각하고 사야돼요."

 "혹시 볼펜 있어요? 내가 이제부터 로또에 당첨되는 방법을 적어줄게요."


손목시계를 슬쩍 보니 출근 시간까지 2분 남았다. 그리고 내 가방에는 늘 볼펜과 작은 공책이 있다.


 "아니요, 없습니다."


 "허허, 그래요. 아쉽네요."

 "우리가 이렇게 만난게 우연일 수 있지만, 다시 만나면 인연 인거니까 혹시 다시 만나면 내가 꼭 로또 당첨되는 법을 적어서 설명 해줄게요."

 "내가 이 위에 있는 교회에 자주 예배를 보러 왔다갔다 해요.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겠죠."


명리학과 개신교의 연결점이 있었던가.


나는 가볍게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내 생각의 미로에서 빠져나와 출근길을 서둘러 걸어 올라간다.

출근시간에 약간 늦을 것 같다는 메세지를 보내고 나니 문득 노인에게 담배에 불을 붙여주지 않고 자리를 떠난 것이 생각난다.


이미 노인이 한 이야기들은 잠시 뒷전이 되고 다른 생각에 빠진다.

지금 노인은 지금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고 있을까.

본인의 과거 경험이 만든 현재에 어떤 꿈을 투영하여 미래를 생각 하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걸어 회사에 다 와갈 무렵 문득 나는 저 노인이 되었을 무렵 어떤 모습일까 란 생각과 함께

내일모레 받을 월급과 처리 해야 할 금액들이 떠올라 살짝 맥이 풀리며 피식 웃는다.


 '내 코가 석자인데.'


별 연관성은 없을지 모르지만 아까 그 노인과 나의 삶의 굴레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진다. 

약간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사무실 문을 열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출구가 정말 있는 걸까?"


---


눈팅만 하다가 주제가 재미 있어 보여 글쓴당에 처음 글을 올려 봅니다.

월급루팡 하며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니 썩 탐탁치 않지만 헬스 PT 첫 시간 하는 기분으로 시작 해봤습니다.


종종 뵐 수 있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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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레드엔젤님의 댓글

작성자 레드엔젤
작성일 02.19 21:30
생각의 미로군요.^^b

risckh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risckh
작성일 02.20 00:40
@레드엔젤님에게 답글 생각했던 결말과 생각의 미로를 더 부각 시키지 못해 아쉬운 마무리 였습니다. :)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작성일 02.20 10:43
계획된대로 착착 진행되는 삶이면 좋으련만, 이리 저리 정신없이 코스가 바뀌어버립니다.
그 안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그래, 이 안에 분명 뭔가 풀이 방법이 있을꺼야'.. 라고
신중하게 그 흐름을 읽어보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이 조차도 우연의 우연일 뿐이에요.
그저 결과를 놓고 풀이를 하는 것일 뿐, 한치 앞도 먼저 나아서지 못하지요.
저 노인의 삶을 어떠했을까, 과연 핸들을 잡고 엑셀을 풀로 밟는 삶을 살아보셨을까요,
아니면, 정속으로 운행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유추하셨을까요.. 글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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