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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가지 이야기' 중 이야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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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작성일 2025.03.0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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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해가 뜨겠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것도 물론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숨죽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죽을 맛이다.


님 웨일스가 쓴 책 아리랑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항일운동가 김산의 생애를 다룬 자서전이었는데, 이런 부분이 나온다.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저녁인지 새벽인지 조용히 몸을 숨기며 이동한다.

꽤 많은 수가 이동을 하는 터라, 자칫 단 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해서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

모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인기척이 들리는 이들을 떠날 때까지 견디고 있는데,

기침이 나오려고 하는 거다. 당장이라고 목구멍에서 터져나올 것 같은 잔 기침.

단 한 번만 기침을 해도 총구가 우리를 향할 것이고, 그 뒤는 뭐..

입을 가리고, 죽을 만큼 용을 쓰며 기침을 참는데,

눈알이 터져나올 것 같은, 무의식적으로 토해져나오는 그 반응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단 한 번, 아주 짧은 순간, 그 잔기침 한 번이면 죽어도 소원이 없을 것 같은

그 잔기침을, 삼키고 삼키며 그걸 견뎌냈다고 한다.

자신만 그러했을까, 함께 몸을 숨기고 있던 그 모든 이들이.

잔기침 한 번 들리지 않는 고요함.


지키는 이가 떠나고, 그들은 다시 이동을 했다고 한다.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저런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별 것 아닌 듯 무의식적으로 하는 잔기침, 이걸 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하긴 잔기침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책 안에 서술되어 있는 비정하고 잔혹한 그 시대에 살아남으며 겪은 사선들.

그저 서적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렇게 이해하게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헌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 지금 몇 시간이 지났을까.

주머니 속에 시계는 꺼낼 수도 없다. 비좁은 이 공간에 도대체 얼마나 있었을까.

저린 감각을 넘어 이제 무감각으로 번지고 있는 내 팔과 다리.

보라, 창 밖의 어둠도 많이 물러났다.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내자.

조금만 더 지나면 날이 밝겠지.

그러면 저들도 사라질테지.



// '14가지 이야기'를 써봅시다.

https://damoang.net/writing/334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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