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택적 정의도 정의롭다고, 선택적 공정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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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사전에 ‘정의’와 ‘공정’, 두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정의를 검색하자 가장 위에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라는 의미가 화면에 떴다. 그 다음에는 공정을 검색했고, 이번에는 위에서 두 번째에 ‘공평하고 올바름’이라는 의미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에 잠겼다. 저 두 단어를 짧고 굵게, 그러나 동시에 필요한 건 모두 담아서 한 줄로 정의(定義)내릴 수 있다는 것에 탄성이 나오는 동시에 허무했다. 비록 뜻은 아주 짧았으나, 그 짧은 한 줄로 표현된 단어가 가지는 중요성은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중요성에서 나오는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저 정의와 공정이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단어들과 그 뜻이, 읽고 곱씹어보면 볼수록 저것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렇기에 간결하게 정리된 저 한 줄의 무게가 마치 어릴 적에 헌법 전문을 읽고 느낀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져 탄성이 나왔다.
반면에 동시에 엄청난 허무감이 괴로울 정도로 몰려왔다. 그렇게 무거운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들을 마치 깃털 하나 들듯이 너무나 가볍게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 수도 없이 많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대표적인 이들에게서는 포토라인 앞에 서서 터지는 플래시를 온몸으로 받으며 검찰청 조사실로 해가 떠 있을 때 들어가 몇 시간씩 조사를 받고 해가 진 후에 나와 수행원이 운전하는 검은색 고급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멀쩡히 걸어들어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와 목도리로 자신의 얼굴을 철저히 숨긴 채, 손등에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탄 채로 들어가기도 했다. 뭐, 어떻게 검찰청에 들어가서 어떻게 나오던지간에, 감옥에 들어간 권력자들은 집유를 받던, 사면을 받던, 보석으로 풀려나던, 결국 감옥에서 나왔다. 그나마 들어가기라도 했으면 다행이고, 아예 들어가지도 않은 이들도 차고 넘쳐났다.
제목에서의 질문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은 당연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하며 얼굴에 ‘그따위 질문을 뭐하러 시간 아깝게 하고 있냐’는 표정을 띄울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선택적인 정의’라는 단어와 ‘선택적인 공정’ 이라는 단어는 각각 정의와 공정이라 볼 수 있는지의 유무를 따지기도 전에 일단 모순이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붙었는데, 앞뒤가 맞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누군가 또 나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는 정의가 완벽하게 실현이 되었나요? 그 나라는 공정한 나라인가요? 힘을 가진 자들에게만 치우치지 않은, 선택적이지 않은 정의와 공정이 있는 나라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 또한 앞뒤가 맞지 않지만, 정말 유감스럽게도 나는 정의가 실현되다 말고, 공정이 실현되다 마는 세상은 보았지, 완벽한 정의와 공정이 실현되는 세상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권력자들 때문만이 아니다.
필자가 13살 때 조국 사태가 있었다. 언론은 그들의 용어로 ‘초대형 입시 비리’라 칭하던 그 사태를 기사로 뉴스로 수없이 퍼다날랐고, 해당 가족의 신상을 공개하였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세세하게 전달하였다.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식당 배달원에게 무슨 메뉴를 시켰냐고까지 물으며 취재윤리까지 어겨가던, 아주 기자정신이 투철했던 기자들이 기억난다. 결과적으로 해당 사건의 당사자인 조민 씨는 모든 학위가 취소되며 한순간에 최종학력이 고졸이 되었고, 가정 하나는 말 그대로 파탄이 났다. 사견을 감히 밝히자면 필자는 아직도 이 사건을 검찰과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횡포라고 생각하지만,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유죄 선고가 나와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도 감옥에 들어간 마당에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6년이 지났다. 필자가 19살이 되었을 때,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의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외교부에 취직할 당시에 인정되지 않아야 했던 경력이 인정되었고,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붙지 못해야했던 총장의 딸은 면접에서 3명 중 2명의 면접관에게 만점을 받아 최종적으로 합격했다. 본디 합격해야 했던 사람은 ‘한국어가 서툴러서’라는 이유 때문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불공정 사태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조용하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조국 사태에 관한 기사는 5757건 인데에 반해, 이번 심우정 총장의 딸의 채용 비리 의혹에관한 기사는 255건에 불과하다. 조국 사태때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일명 SKY라 불리는 한국 최고 대학 3개교를 포함한 수많은 대학교의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촛불집회를 열고 조 전 장관의 딸을 규탄했는데, 이번에는 그 대학들이 모두 조용했다. 이번 채용비리에 관해 SKY 학생들이 항의하는 대자보를 붙이거나 성명을 내거나 촛불집회를 열었다는 얘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조국사태와 거의 유사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딸에 관한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어느 대학도 항의의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다.
다수의 젊은이들은 ‘선택적으로’ 침묵했다. 이 나라의 정의와 공정이 한 쪽으로 치우쳐있는 것이 비단 권력자들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목소리를 내며 항의하고, 어떤 때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는 기자들과 청년들의 탓도 분명히 있다.
그들에게 정말로 묻고 싶다. 도대체 왜 잣대가 다른가? 조국과 그 일가가 잘못한 게 맞다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럼 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심한 일들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런데 왜 어떤 때는 가만히 있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당신네들이 운운하는 정의감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짜 정의가 뭔지 다시 한번 고민하라고. 진짜 공정이 뭔지 다시 한번 고민하라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의 뜻과 작금의 일들을 비교해보라고. 만약 그 일들이 각자의 정의와 공정에 맞지 않는다면, 나서라고.
마지막으로 청년들을 믿어본다.
글이... 좀 깁니다.
사견을 아주 꽉꽉 채워넣은 '사설'입니다. 이런 종류의 글을 써보는 건 처음이라 많이 부족한 글이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매주 제 생각을 담아 다방면의 주제에 관해 사설을 기고 해보려고 합니다. 별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쓰고 올려볼까 합니다.
뭔가 쓸데없이 거창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주는 시험이라 휴재입니다. 윗 글은 저번주에 완성했던 글입니다.)
팬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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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적으로 분노하고 계획적으로 침묵하고 있죠. 못된건 어디서 배웠을까? 사회적 풍토인가... 싶습니다.
전우용 학자가 대한민국 건국이래 제일 멍청한 대학생 세대들이라 표현했던것이 생각납니다.
벗님님의 댓글
몇 센티미터를 줄이는 데에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도 더 걸리지요.
이상과 현실의 틈은 상당히 넓고 우리의 행동들이 공허한 듯 보일 수도 있으나,
조금씩 그 틈을 좁혀지고,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 마음을 조금 더 내려놓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음을, 아주 작은 만족들이 더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참 좋아지고 있는 것이거든요.
이와 같은 진보는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와 공정, 어디에도 완성되었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곳은 없을 거예요.
어느 만큼 다가가고 있는가, 어느 만큼 노력하고 있는가로 평가를 받게 되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국가의 최정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만큼 자랑스럽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 나라, 많지 않거든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