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돌.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벗님 223.♡.23.199
작성일 2024.06.21 15:21
분류 한페이지
84 조회
2 추천
쓰기

본문

넓은 테이블을 덮고 있는 검은 천이 걷혔다.
대낮처럼 밝게 플래시들이 터진다.
하지만, 이내 취재 열기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 이.. 이거 돌인가요?
- 네, 맞습니다. 돌입니다.

어떤 기자가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이어진 명쾌한 답변.
기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웅성거린다.

- 완벽한 돌입니다. 모양을 흉내 낸 게 아니라, 돌 그 자체죠.

모든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발표하겠다는 사전 예고에 기자들은 흥분했었다.
기술력으로 손꼽히는 OO 기업에서 수개월에 걸쳐 진행했다는 비밀 프로젝트.
그런데..

넓은 테이블, 한 가운데 작은 돌멩이가 하나 놓여 있다.

- 어때요? 멋지지 않습니까.

그의 말처럼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냥 돌이었다.
기자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 이건 3D 프린터로 비슷하게 찍어낸 게 아닙니다. 자연의 산물이죠.
잠시 후에 보시게 되겠지만, 모두 다른 모습입니다. 같은 건 없어요.

그는 돌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며 멋진 포즈를 취했다.

- 여기서 34km 떨어진 곳에서 구해 왔습니다. 수석 전문가분들을 함께해 주셨죠.
보세요. 이 물 흐르는 듯 펼쳐진 아름다운 곡선. 아직 만져보실 수 없지만, 이 기가 막힌 질감..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슬쩍 보고는 그가 말을 이었다.

- 네, 압니다 알아요. 궁금하시죠. 도대체 이 돌이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냥 돌을 집는 시늉을 했다.

- 바로 이렇게 재빨리 집어 들어서 위험한 순간이 오면.. 네, 농담입니다.
물론, 그렇게 사용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시는 건 아마.. 이것의 능력을 10%로도
사용하지 않는 거겠죠. 자.. 보세요.

그가 천천히 손을 돌 위로 가져가고, 닿을 듯 말 듯한 높이에 다다르자 돌에서 엷은 빛들이 감돌았다.
수 많은 작은 바늘 구멍, 수를 셀 수 없는 그 작은 빛 알갱이들이 물결치 듯 일렁거렸다.
기자들이 흠칫 놀랐다. 분명 강가에서 며칠 전에 주워 온 것 같은 볼품없는 돌멩이였는데,
마치 살아 있는 어떤 생명체의 변태 과정을 지켜보는 듯했다.

- 오래 기다렸습니다.

돌에서 소리가 들렸다. 교양이 넘치고, 지적이며, 퇴근 후에 반겨주는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
불빛이 반짝일 때보다 이 목소리에 더 놀라는 기자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수만큼 선호하는 목소리가 제각각일 텐데, 이 돌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모두를 사랑에 빠지게 했다.

그가 돌을 향해 말했다.

- 그래, 이제야 너를 소개해 줄 수 있겠네. 거긴 어때?
- 아시잖아요. 얼마나 기다린 줄 아세요?

- 아, 그래 그래. 미안, 미안. 핀잔은 있다가 듣기로 하고, 자.. 너를 모두에게 소개해 줘.
- 네, 반갑습니다. 저를 무척 기다리셨죠? 이제야 여러분에게 다가갈 수 있네요.

'살아.. 있다.'
일렁이는 불빛과 아름다운 목소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돌멩이였는데, 이제 보니 이것은 살아 있다.

- 반갑습니다, 여러분. 항상 저를 사랑해 주세요. 제가 여러분의 첫 번째 '리얼 돌'이니까요.



끝.

댓글 4

잡일전문가님의 댓글

작성자 잡일전문가 (118.♡.101.64)
작성일 06.21 17:03
리얼도오올!

마지막의 반전 같은
서술트릭 같은

한 문장이 임팩트가 있네요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223.♡.23.199)
작성일 06.21 17:36
@잡일전문가님에게 답글 사실.. 마지막 한 문장을 위해서 쓴 글 맞습니다. 흐흐흐..

프로그피쉬님의 댓글

작성자 프로그피쉬 (112.♡.76.76)
작성일 06.21 19:11
말하는 돌, 귀하네요 ㅎㅎ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223.♡.23.199)
작성일 06.21 19:12
@프로그피쉬님에게 답글 무려 '리얼 돌'이에요. 흐흐흐. ^^;
쓰기
홈으로 전체메뉴 마이메뉴 새글/새댓글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