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림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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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잡일전문가 39.♡.211.151
작성일 2024.06.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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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이번 주가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해달라는거 다 해주세요."

중년의 여성은 의사의 말에 그대로 허물어졌다. 내 딸이 이렇게 아픈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의사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억장이 무너진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돌도 안된 아들을 잃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다. 이렇게 놔버릴 수는 없다.

"내가 데려가서 괴기도 맥이고, 살려보것소."

바로 퇴원수속을 마치고 서울역에서 군산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이제 스무살이 된 딸은 병이 심해 뼈에 가죽을 입혀둔 몰골이었다. 온몸에 퍼진 악성 종양으로 퉁실했던 허벅지가 어린애 손목만큼의 굵기가 되어 제 힘으로는 걷지도 못할 정도였기에 여성은 딸을 업고 다시금 눈물을 흘렸다.

"아가, 집으로 가자. 집에서 굿이라도 한 번 해보자."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걸려 군산에 도착하자 이미 늦은 밤이었다. 역에서 집까지는 이십 리를 넘게 가야했지만, 늦은 시각이라 버스는 이미 끊겨 걸어가야만 했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은 여인의 뒤에 업힌 빼짝 마른 여성을 보고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기도 했다.

다음 날, 여인은 동네의 용한 무당을 찾아갔다.

"신병이네. 신내림 허소."

"참말이요? 신내림 받으면 나아브러요?"

"응. 다 낫어. 신이 화가난겨."

여인은 바로 내림굿을 하기로 하고 날을 잡았다. 오래 끌면 안된다.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무당은 준비가 되는대로 시작하자며 준비할 것들을 일러두었다. 이틀 뒤 내림굿을 하기로 했다.

내림굿 당일, 무당은 여인의 딸에게 입힐 무복과 부채, 방울을 가져와 여인의 딸에게 입혔다. 빼짝 마른 여인에게 그런 옷을 입으니 더욱 볼품이 없었다. 오랜 기간 병상에만 누워있어 하얗게 된 피부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으니 하얀 얼굴은 더 창백해보이기만 했다.

내림굿이 무르익어갈 때 즈음 손가락 하나 가누기 힘들던 여인의 딸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힘으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는 것 뿐 아니라 펄펄 뛰기까지 했다. 실성한 것 같은 눈으로 작두 위에 올라가는 딸을 보는 여성은 마음이 타들어갔지만 딸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에 넋이 빠져 딸을 지켜만 봤다.

굿이 끝난 뒤 여인의 딸은 시한부 선고를 내린 의사를 무색하게 점차 건강을 찾았고, 약 1년 후 재검사에서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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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이모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지만...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해봤습니다.

댓글 2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6.24 12:23
알게 모르게 주위에 신기가 있거나, 신내림을 받으셨거나, 혹은 거부하셨거나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의 할머님도 그러하셨고, 형수님의 어머님도 그러하셨고, 일하는 직원의 가족 중에도 있더군요.
단군의 '단'이 하늘님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람, 제사장이면서 지금으로 보면 큰 무당이지 않을까요.
우리들을 '단군의 자손'이라 흔히 부르는데,  우리의 몸 속에 흐르는 피의 일부는 언제나 이렇게  내제되어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잘 쓰셨습니다. ^^

프로그피쉬님의 댓글

작성자 프로그피쉬 (112.♡.76.76)
작성일 06.24 13:15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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