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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타자기

작성일
2024.10.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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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벗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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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네,
멀리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 속에서
나는 나무를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늘이 짙어질수록 마음도 차분해진다.
나무는 말없이 서 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아주었지,
이제는 그 자리를 내가 지키듯 천천히 다가가네.
너의 굽은 가지는 내가 본 세월보다 더 길다.
오랜 시간, 수많은 바람을 견디며,
너도 한때는 푸르른 잎사귀를 펼치던
젊음의 날들이 있었을 테지.
그렇게 마주한 우리는 서로의 삶을 묵묵히 읽는다.
나무야, 너도 나처럼 늙어가니?
굽은 가지는 수많은 시간과,
그 시간이 남긴 상처들로 휘어졌겠지.
하지만 여전히 강인하게 그 자리에 서 있구나,
나를 위해 그늘을 내어주며.
삶이란 다 그런 것인가.
때로는 기다림으로, 때로는 그늘이 되어주며
그리움 속에서 서로를 마주하곤 하는 것.
너의 그늘 속에 서면,
그 순간 모든 시간이 스며들어 버린다.
햇살은 나를 지나쳐 너의 이파리에 닿고
그 따스함은 다시 나를 감싸네.
바람은 부드럽게 속삭이고,
너와 나는 말없이 그 속삭임을 듣는다.
이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은
짧고도 길다.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삶 속에서
잠깐이라도, 그 너머의 것을 이해한 것 같구나.
나무야, 너의 삶은 어떠했니?
저 멀리 휘어진 가지 끝에,
얼마나 많은 바람과 비를 맞으며,
그 시간을 견뎌냈을까.
나는 이제 그 속삭임을 듣고,
너와 나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