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피해생존자의 증언, 그리고 당시 미국 고위관료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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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쌀이 없어서 일년 내내 쌀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전쟁을 하겠습니까?
미국은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왜 그랬겠어요?
실험을 해야 했으니까요? 폭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알았지만, 방사선 피해는 어느 정도일지는 몰랐겠죠.
과학자들도 짐작은 했겠지만 실험은 못한 상태였죠. 그래서 우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본 겁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폭격의 최후 결정은 포츠담에서 한 것도 아니고 트루만 대통령이 한 것도 아닙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무장해제하고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림으로써, 화를 자초한 것이죠.
(당시 미국의 상황)
당시 미국은 일본군의 암호 체계를 파악해서 해독할 수 있는 상태라 일본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포츠담 회담 중이던 트루만은 1945년 7월 16일 핵폭탄 실험 성공 성공 보고를 듣자, 일본에 대량살상 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일본에게 항복의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게 최후 통첩을 보내죠. 여기서도 미국은 '일본 군대(Japanese Army forces)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한다'라고 그 이전에 '일본(Japan)의 무조건적인 항복'에서 한발 물러난 표현을 사용합니다. 군부만을 콕 집어서 일본 황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하지만, 이 완곡한 항복 제안을 들은 일본은 오해를 하죠. 미국이 뭔가 급박한 상황이 생겨서 한발짝 물러서는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린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가 강한 모습을 보이면 미국이 도리어 항복을 하게 될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다음은 도쿄였는데 당시의 군부도 그렇고, 생존자들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저런 철없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일본 군부가 좀 더 강경하게 버텼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출처 EBS 다큐 히로시마 - 원작은 BBC 다큐 Hiroshima)
6K2KNI님의 댓글
도쿄에 떨구는 걸 계획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다른데다 떨궜을 수도 있고, 도쿄에 떨궜다 하더라도 그건 파괴목적보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봐야겠지요.
3차 폭격 후보지가 후쿠오카현 키타큐슈, 니가타현 니가타시가 원래 후보였던 만큼 3차폭격까지 갔으면 우리나라에도 약간의 피해가 있었을 수 있었습니다.
나물반찬님의 댓글
비록 전쟁이지만 낭만이랄까
뭔가 웹소설 주인공처럼 적에게 크게
손속에 사정을 둬 줬는데,
일본이 어리석게 다 걷어차고 폭망
감말랭이님의 댓글
원폭투하 생존자 또는 그 자손들한테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우리는 잘못이 없는데 미국이 나쁜거야!' 라는 개짖는 삽소리를
애잔한 브금까지 깔아가며 열심히 포장과 물타기를 해대죠
ㅋㅋ
보통닉넴님의 댓글의 댓글
전쟁일으키고 포로들 식인 +
온갖 인간미만 추악한 짓거리 다 하다가,
결국 싸다구맞아 대패하고 참교육 당했으면서 종전기념일???
일본놈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들 같습니다
설마 이런짓까지 하겠어???
ㅇㅇ 그 설마보다 더한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느낌이랄까요 적당히를 모르는 족속들입니다
떡갈나무님의 댓글의 댓글
다시머리에꽃을님의 댓글
미군이 그냥 일본 본토 상륙 전투 수행시 군 사상자가 수백만에 이를 것이다라는 보고도 있었어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을 겁니다.. (그 전에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의 민간인들 생명마저 도외시하는 잔혹한 전투수행 방법에도 미군이 치를 떨었다고 볼 수 있겠고요)
그리고 히로시마 나가사키로 정한건 도쿄나 오사카 등 인구많은 도시들 제외, 교토 등 문화재 있는 도시 제외..
그리고 군수시설 있는 곳 위주 등으로 추린 몇개 도시 후보들 중 하나였다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자신들의 일으킨 태평양전쟁과 식민지에서 자행한 잔혹한 행위 등 과거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저런 적반하장 격인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는거죠
일본은 이제 아예 태평양 전쟁도 자신들이 일으킨게 아니라 미국 때문에 일어난거다라는 식의 주장도 합니다
12345님의 댓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 그리고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 맨
히로시마 원폭후 일본은, 일왕은 그리고 일본군부는 항복을 거부합니다. 미국에 더 이상 원폭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기다리던 미국은 3일후에나 두번째 원폭을 실시합니다.
일본은, 일왕은, 일본군부는 일본국민 몇명이 죽든 어떤 비참한 상황이 되든 아무 관심이 없었고 전쟁을 지속하고자 한 것이죠.
항복이 8월15일로 나가사키에 원폭투하후 6일이나 걸린것도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로 생각됩니다. 다만 다음 원폭에서 일왕이 죽는다는 미국의 협박에 마지 못해 항복한 것이지요.
히로시마는 모르겠읍니다만, 최소한 나가사키의 희생은 일본의, 일왕의, 일본군부의 책임입니다.
* 전부 저 개인의 사견입니다.
hellsarms2016님의 댓글
아직 덜쳐맞은게 일본이란 나라일겁니다 강약약강의 비겁한민족성
저를드실건가요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