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비결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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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코미 89.♡.101.20
작성일 2024.07.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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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의 신리는 진흥왕이 영토를 넓힌 건 좋은데, 그걸로 백제와 고구려의 어그로를 끌어서 다굴맞는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멸망하기는 커녕 삼국을 통일한 건 

좋게 말하면 위부터 아래까지 다 하나로 뭉친거고, 나쁘게 말하면 애국심이 너무 심하다 못해 광기라 할 정도입니다.


1. 세속오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귀산과 추항은 602년 아막성(현 남원)에서 백제를 막다가 전사함.

2. 611년 가잠성(안성 내지는 괴산?)에서 성주 찬덕이 100일 넘게 포위한 백제군과 공성전을 벌이다가 전사함, 찬덕의 아들 해론 역시 618년 가잠성에서 백제군에게 전사함. 이 경우는 부자가 둘 다 전사한 경우네요.

3. 647년 대야성(합천)을 지키던 김품석의 부장 죽죽과 용석은 군량고가 불타고 성주가 자결한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

4. 647년 백제가 무산, 감물, 동잠을 공격하자 김유신의 부장 비령자가 백제군을 돌파하다가 전사, 그러자 비령자의 아들 거진도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고 돌격해서 전사, 비령자와 거진의 노비 합절도 주인을 따라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 부자+노비까지 3명이 죽은 경우입니다.

5.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김유신의 친척이기도 한 화랑 반굴과 관창이 적진에 돌격해서 전사.

6.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은 672년 당나라와의 싸움(석문 전투)에서 패배하고 겨우 목숨을 건지자 김유신과 그 부인이 비굴하다고 연을 끊어버림..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전사하는 일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또한 하류층, 사회적으로 천시받은 노비까지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길 마다하지 않았고 전사하면 칭송을 받습니다. 

좋게 보면 이러니 삼국을 통일한 거고, 나쁘게 보면 파시즘 아닌가 싶을 정도... 저런 정신머리를 보인 다른 사례가 스파르타, 독일 제국 같은 곳이다보니.. 긍정적으로 끝맺은 게 가끔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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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1 페이지

기억하라3월28일님의 댓글

작성자 기억하라3월28일 (211.♡.158.131)
작성일 07.18 10:53
국력의 근원이네요
요즘 우리나라는 위에는 다 군면제

쇼스타코비치1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쇼스타코비치1 (182.♡.21.68)
작성일 07.18 10:59
불교가 그런 역할을 뒷받침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쟁에서 장렬한 산화 = 극락왕생

푸른미르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푸른미르 (118.♡.73.2)
작성일 07.18 12:44
신라가 승리 했기 때문에 미화된 면도 크다고 봐야죠
신라의 통일 원동력은 저런 것 보다 금 때문이었다고 추측합니다

김관가야로 유명한 가야 7개국 조차 금관을 만들 때 구리를 섞어서 만들었고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는데
신라는 금으로만 금관을 만들었고 크기도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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