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어촌 마을었다가 발전한 여러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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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esserit 125.♡.123.52
작성일 2024.07.1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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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목포, 군산, 마산, 원산, 진남포, 성진 등이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 때 폭발적으로 성장한 해안 도시입니다. 모두 조선시대에는 그냥 바닷가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죠.

인천은 인천도호부의 제물포(대대급 육군부대 화도진 주둔지)
부산은 동래도호부의 부산진(여단급 수군부대 주둔지)
목포는 무안군의 목포진(대대급 수군 주둔지)
군산은 옥포현의 군산진(대대급 수군 주둔지)
마산은 창원도호부의 마산포(쌀을 실어 나르던 조운 교통지)
원산은 덕원도호부의 원산포(뭔지 못 찾았앙)
진남포는 평안도 삼화현의 증남포(증남포에서 진남포로 개칭)
성진은 함경도 길주목의 성진진(여단급 육군 주둔지)

등등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우셔서 아시겠지만, 일제가 대한제국 항구를 개항시킬 때 각 지역을 탐사해서 수출입과 내륙 침투에 가장 용이한 곳을 먼저 열게 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라서 조선군 육군, 수군 진지가 있던 곳들인데, 그곳이 바로 인천, 부산, 목포, 군산, 마산 같은 위 지역들이죠.

그곳에 점차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고, 일본인이 있는 곳만 만들면 너무 티가 나니까 청나라 거류지, 영국 거류지, 각국 조계지 등도 설정하긴 했는데, 인천과 부산 정도에만 청나라 사람들이 조금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일본인이 외국인 조계에 살던 인구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본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던 중국 내 '조계(상하이 조계지 등)' 지역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구한말에도 한반도에 이런 조계지들이 있었습니다.

하여간 그곳에 일본 영사관, 청국 영사관 등이 개설되고, 그런 외국인 관청에 대응하려고 조선에서도 '감리서'라는 외교 관련 기관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관'의 전신인 '해관(海關)'도 두었죠. 해관에는 영국인, 미국인 등을 초빙해서 해관장으로 임명했고요.

이런 개항 항구들이 점점 발전해서 대한제국이 망할 즈음에는 일본인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꽤 큰 시가지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일본인 인구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죠. 배가 들어오는 교통과 수출입 유통의 중심이라서 상인들도 모이고 일본군 수비대도 주둔하고... 그 결과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그곳에 '부청(府廳)'이 들어섭니다.

부산부청, 원산부청, 군산부청 같은 곳인데, 대부분 부청이 들어선 곳이 일본 영사관 건물이었습니다. 부산을 예로 들면 부산부청이 옛날 일본 영사관 지역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구를 만들 때 중구(中區) 명칭이 그곳에 붙었고 서구, 동구 등도 그런 일본인 중심지를 기준으로 정해졌죠.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곳은 지금의 부산동구, 부산진구 지역었고요.

부산포가 부산부가 되고 목포가 목포부가 되는 식으로 변경되자, 이런 행정단위들이 자기들의 본래 태어났던 곳을 거꾸로 흡수합니다. 목포부가 무안군을 흡수하고, 군산부가 옥구군을 흡수하는 식이죠. 인천은 원래 인천도호부가 있어서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요.

점심시간이군요. 이만 써야겠네요. 앙앙


암튼 조선시대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새로 만들어진 행정구역 단위인 부산, 원산, 목포, 군산 등이 오늘 부산광역시, 원산시, 목포시, 군산시 등의 명침으로 남게 된 유래를 허접하게 알아봤습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라서 틀린 부분이 있을 거외앙.

댓글 1 / 1 페이지

Gesserit님의 댓글

작성자 Gesserit (219.♡.191.66)
작성일 07.19 20:17
댓글이 없으니 나라도.. 앙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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