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으로 출세 포기하고 교사 하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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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코미 121.♡.69.119
작성일 2024.09.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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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교련교사 하면 폭력적이고 무식한 이미지인데…

의외로 육사 졸업하고 대령쯤은 따놓은 당상이었고 별도 따려면 못 딸 게 없었던 엘리트였는데 굳이 교련교사로 내려온 분을 본 기억이 납니다.

뭐 전 이미 교련이 사라진 후 사람이라 제가 만났을 땐 교련이 아닌 사회와 역사를 가르쳤는데 그 수준이 뒤쳐지지도 읺았고, 무려 교사 하며 박사 학위까지 딸 정도였다고 합니다.

왜 교사 하냐고 물어보니 베트남 전쟁에 나갔는데 자기 부하들이 전투에서 허무하게 죽고, 민사작전을 하며 친해진 마을 아이들이 학교 다녔다는 이유로 베트콩에게 죽고 하는 참상을 보고 군인으로 출세하겠단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는군요.

그래서 교련 때도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전쟁터에서 안 죽고 살아남을지를 염두에 두고 가르치려고 했다나…

그러다보니 사회나 역사 등도 반공적이고 보수적인 관점이 묻어나긴 했지만 의외로 그런 거 치거 중립적이고 상식적이더군요.

얼마나 전쟁이 끔찍했는지 안 겪어 봤지만 그래도 대충 짐작이 가더군요.

댓글 20 / 1 페이지

벽오동심은뜻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벽오동심은뜻은 (180.♡.127.104)
작성일 09.21 15:52
반대로 교사 때려치우고 군대가서 나라를 말아먹은 색마 땅딸이도 있었읍니다 ㄷㄷㄷ

포말하우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포말하우트 (172.♡.52.239)
작성일 09.21 15:55
@벽오동심은뜻은님에게 답글 친일+빨갱이+반공 끔찍한 삼위일체의 혼종이 있다면서요??

멸굥의횃불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멸굥의횃불 (121.♡.110.4)
작성일 09.21 17:38
@포말하우트님에게 답글 193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일명 파쇼라고 하는 빨갱이+반공의 혼종은 무수히 많았죠. 다카키의 정체성을 형성한 소위 '만주국'도 이 혼종들이 건설했습니다.

백날해봐라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백날해봐라 (14.♡.210.104)
작성일 09.21 16:20
@벽오동심은뜻은님에게 답글 설마 탕탕절에 요단강 건너가신 그 황군 출신 노인네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멸굥의횃불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멸굥의횃불 (121.♡.110.4)
작성일 09.21 17:19
@백날해봐라님에게 답글 밀라노 광장에 내연녀와 함께 거꾸로 매달려 시민들의 저주를 받은 누군가가 다카키의 롤모델이었죠. 실제 군사적 능력은 형편없었지만, 군인 코스프레 하나는 5성급이었습니다.

anonymouz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anonymouz (182.♡.52.43)
작성일 09.21 17:12
@벽오동심은뜻은님에게 답글 시바스리갈과 여대생 좋아하던 걔요??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18.♡.66.123)
작성일 09.21 17:22
@벽오동심은뜻은님에게 답글 어디 말론 반인반신이라죠..
반은 사람이고 반은 (병)신..

그냥바람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그냥바람 (175.♡.48.132)
작성일 09.21 18:20
@벽오동심은뜻은님에게 답글 권력에 집중했고 끝끝내 성공하셨던 그분이군요. 즐겁게 한잔 하시다가셨다던

Gesserit님의 댓글

작성자 Gesserit (219.♡.191.66)
작성일 09.21 15:54
본문에 쓰신 것처럼, 육사 출신이 월남전까지 참전했으면 채소 대령까지는 진급 보장이었다고 봐야죠.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21.♡.69.119)
작성일 09.21 16:01
@Gesserit님에게 답글 그런 출세길을 포기한단 건 뭐… 그만큼 전쟁이 준 상처와 충격이 큰 거죠..

멸굥의횃불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멸굥의횃불 (121.♡.110.4)
작성일 09.21 17:22
@Gesserit님에게 답글 장교 뿐만 아니라 사병 역시 베트남에 다녀오면 병장 전역은 따놓은 당상이었죠. 1981년 이전에는 특별한 무공을 세운 소수만 병장을 달 수 있었고, 대부분 상병으로 전역했습니다.

잰리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잰리 (211.♡.126.250)
작성일 09.21 17:34
@멸굥의횃불님에게 답글 제 처남 다니는 학교에 갑종 출신으로 월남 갔다가 대령 예편하고 교수로 재직하신 분도 있더군요.
하물며 육사 출신이라면....그 고민의 깊이가 솔직히 감도 잡히질 않네요.

아름다워용님의 댓글

작성자 아름다워용 (121.♡.97.150)
작성일 09.21 15:55
준위로 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 하셨는데요

전쟁이라는게 사람이 무섭게 변한다고... 살인, 약탈, x폭행 그런것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진행된다고
명령 이행과 승리의 목적으로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 악마가 되어간다고

전쟁은 무조건 안하는게 최고다라고 말씀 하셨죠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18.♡.66.123)
작성일 09.21 17:22
@아름다워용님에게 답글 전쟁은 영화로 보면 몰라도 직접 보면 참 끔찍하죠..

YBman님의 댓글

작성자 YBman (112.♡.213.251)
작성일 09.21 16:01
제 교련 선생님도 생각나네요.. 그 유명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당시 지휘체계 쪽에 속해있었다고 하면서 엄청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시던 것을 들었던 것이 벌써 거의 30년 전이네요..ㅠㅠ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18.♡.66.123)
작성일 09.21 17:21
@YBman님에게 답글 특수부대군요..

풍사재하님의 댓글

작성자 풍사재하 (112.♡.81.89)
작성일 09.21 16:20
93년 2월 졸업자로써
본인 학교나
친구들 타 학교
교련 선생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나온 교련 선생 수준이었는데
학생부소속(학생들 줘 패는)으로 체육 선생과 쌍벽을 이뤘지요
시국 학생 운동으로 걸려들어가
퇴학과 정학 면한 대신에 엄청 두들겨 맞았던 기억뿐이죠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18.♡.66.123)
작성일 09.21 17:14
@풍사재하님에게 답글 그게 교련교사 다수가 3사관학교나 그 이하 학력이라서 그렇습니다.

까망꼬망1님의 댓글

작성자 까망꼬망1 (211.♡.199.114)
작성일 09.21 17:16
제가 다녔던 학교 교련선생도 베트남 파병군인 출신인데...이 인간은 베트콩 많이 죽이고 왔다 자랑하던 미친놈이었죠...수업은 않고 애들 패는 재미로 학교오나 싶었더랬죠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18.♡.66.123)
작성일 09.21 17:18
@까망꼬망1님에게 답글 저것도 PTSD의 일종이죠.
사람 죽이고 나서 충격을 받는데, 그 때 죄책감 해소방법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면 저 꼴이 되요. 반성하거나 극복하려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려 하면 제가 본 사례가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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