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빠가 주장하는 동이(東夷)가 한민족이라는 주장이 틀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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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코미 180.♡.243.17
작성일 2024.10.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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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중화사상에 따라 자기 이외의 종족들은 방위에 따라 싸잡아 불렀는데 각각 동이, 서융, 남만, 북적입니다.

그 중 동이의 이는 오랑케 이(夷)로서, 상나라 갑골문에서부터 '尸'자로 보이기 시작하는 글자입니다. 이(尸·夷)의 뜻에 대해선 '죽은 사람' '키 작은 사람' '꿇어앉은 사람' 등 설이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주변 이민족을 낮춰보는 중화주의가 내포되어 있죠.

애초에 중국인들은 자기 이외의 민족들은 중화사상에 따라 낯잡아 본 거라서 이상할 건 없는 짓입니다.


동이라는 개념은 시대마다 달라져 왔습니다. 

상나라와 주나라는 황하강 중류에 자리잡았고, 그들 기준에서 동쪽인 중국 산동반도와 장성 북부에 분포하던 우이(嵎夷), 래이(萊夷), 회이(淮夷) 등의 이민족을 묶어 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나라의 경우 화하족이 중심으로서 상나라보다도 서쪽에 있었다가 상나라를 정복한 국가로서 그들은 상나라 유민들도 자기보다 동쪽에 있어 동이로 포함시켰으며, 이후 적극적으로 영토를 넓혀 산동반도와 장쑤성 일대까지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상나라의 후예인 노나라와 산동반도의 제나라 등은 전국시대까지 동이란 정체성을 유지하며 다른 나라와 차별화했죠. 그걸 환빠들이 물어서 공자도 강상(강태공)도 한국인이라 우기는데, 애초에 그 때 동이는 한민족의 조상인 예맥족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춘추전국시대까지의 동이는 한민족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진한시대가 되면서 중국 대륙 내부의 여러 이민족들이 동화되게 되면서 동이의 개념은 달라지게 됩니다.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 부여·고구려·예·옥저·읍루·삼한·왜 등이 바로 중국이 규정한 새로운 동이입니다. 한민족이 동이와 관련되어 언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중국 역사서에서 한민족이 동이의 범주에서 서술된 것은 한서 부터입니다. '동이 예의 군장 남려(東夷濊君南閭)'가 위만조선 우거왕을 배반하고 한의 요동군에 투항했다(기원전 128년)는 기록이 나오는 거죠. 예는 예맥(濊貊)이라고도 표기되었는데 고조선의 근간이 된 종족입니다. '사기(史記)'에서 위만조선을 가리켜 '예주(濊州)'라고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고조선의 예맥족은 삼한의 한족(韓族)과 함께 한민족의 근간이 됩니다.

이후로도 동이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서 선비족, 말갈족, 거란족, 여진족, 류큐인 등이 새로 추가되기도 하는 등 유동적입니다. 당연히 저렇게 동이에 포함되는 종족들은 유전자나 언어나 풍습이나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동이는 동이족이라고 같은 종족 취급할 수도 없고, 동이=한민족이 아닙니다. 동이>한민족일 수는 있어도..


즉 동이는 비유하자면 유럽이 중동의 이슬람 믿는 종족들을 싸잡아서 사라센으로, 아시아인들이 유럽인을 싸잡아 프랑크로 싸잡아 부르던 것과 같은 것으로 동이는 애초에 하나의 종족도 아니고, 그냥 중국인들이 지들 기준에서 동쪽에 있는 종족을 싸잡아 부르던 멸칭입니다.

그걸 가지고 자랑스러워 하고 자부심 가지려 드는 건 좀...

이하 내용은 박대재 고려대학교 사학과 한국고대사 교수님의 강의와 칼럼을 요약했습니다.

댓글 17 / 1 페이지

예태님의 댓글

작성자 예태 (175.♡.116.247)
작성일 10.26 15:33
이민족을 퉁쳐서 부른 단어를 뭐하러 이어 가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마음에 안듭니다.
북한마저 일본은 백년의 적이고 중국은 천년의 적이라고 하잖아요.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80.♡.243.17)
작성일 10.26 15:35
@예태님에게 답글 근데 제가 저거 지적하니 왜 중국 동북공정 편 드냐 이래요...
답답해서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겠습니다..
저런 인간을 지금까지 4명은 봤는데, 분명 답변하면 또 되도않는 꼬투리 잡거나 제 국적을 바꿔버릴테니..

살살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살살타 (39.♡.121.81)
작성일 10.26 15:38
이게 맞는거죠!
요약 정리 고맙습니다. ~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180.♡.243.17)
작성일 10.26 15:43
@살살타님에게 답글 동이라는 명칭을 굳이 동이족이라고 붙여서 한 집단으로 취급하려 들면 두가지인데 환빠거나 역알못이죠.
동이족이라 적힌 교과서나 책들도 그래서 다 개정되면서 고쳐졌고요.
그래서 단어만 봐도 딱 쎄하게 감이 오더군요..

그러니까그게님의 댓글

작성자 그러니까그게 (58.♡.165.52)
작성일 10.26 15:51
동이를 시대에 따라 구분 짓는 내용이네요.
고려 해 볼 만한 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나라는 애초에 고죽국에서 온 것이라고 여러 곳에서 언급되지 않았나요?
주나라한테 밀려서 다시 원래 온 곳으로 돌아갔다는 내용도 여러군데 언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인들은 동이족들을 멸칭을 써가면서 불렀음에도
자신들 한족 즉 화하족에 대해선 그 뿌리나 시원을 여전히 못찾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것같습니다.

애초에 하북성과 그 동북쪽의 문명이 점차 커지면서 그 세력간의 싸움으로 맘 상해서
나 동이족 안해~ 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사기의 내용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어디 어느 동이족이 우리 민족이다 아니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 섞이고 섞였을텐데 의미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분을 해보려면 지배층으로 따지거나 아니면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었던 문화와 언어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살펴봐야 할 것 같네요.


--
그런데 공자가 동이족이라고 언급된 내용은 본적이 있는데 그래서 한민족이다? 라고 언급된 것이 정말로 있는건가요?
중국인들이 만든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요?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2a09:♡:4690:♡:0000:♡:20b:6a)
작성일 10.26 16:05
@그러니까그게님에게 답글 https://m.clien.net/service/board/park/14124229
네, 있어요..

그러니까그게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그러니까그게 (58.♡.165.52)
작성일 10.26 16:49
@코미님에게 답글 이 것 또한 전달하는 글이네요.
이덕일이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는 말은 이덕일의 말이나 글을 확인해야 알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덕일이 공자가 동이족이라는 이야기는 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가사라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가사라 (112.♡.211.243)
작성일 10.26 16:10
@그러니까그게님에게 답글 최근 갑골문과 금문 관련 연구들을 조금 공부한 바로는 대충 다음과 같은 흐름이 있는거 같더군요.

- 요하문명에서 고조선이 출발했음. 고조선 강역내에 고죽국이 있었음.
-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일부는 산동지방으로 내려가 상나라를 건국하고, 또 일부는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했음.
- 상나라는 갑골문에서 큰 나라가 자기를 칠지 아니면 먼저 쳐야 할지를 두고 점을 친 기록이 있음.
- 갑골문과 금문에서 동북쪽 큰 군사를 주나라와 상나라가 서로 움직이려 했다는 기록도 있음.
- 상나라가 망하면서 지배세력은 고죽국으로 도망침.
- 상나라의 유산은 주로 주나라로 편입됨.

지금은 요령성박물관에서 요하문명을 중국인의 뿌리로 강조하고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요하문명을 전적으로 현대 한국인이 모두 물려받은 것은 아니며 일부는 중국인의 유산으로 스며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자는 죽기전에 사실 자기는 동이족이었다고 고백했다는 기록은 있는데 공자가 어렸을 때 버림받은 것으로 유추하는 글을 본 적은 있습니다.
저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문화적으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디 출신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 인이잖아요.
공자가 이룬 것은 고스란히 화하족에게 전달되었고 그들의 문화유산이 된거죠.

그러니까그게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그러니까그게 (58.♡.165.52)
작성일 10.26 16:57
@가사라님에게 답글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으로 맥락 상 맞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기까지 밝혀진 내용을 현재 시점의 인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내용 이론이나 가설이 성립되지 않은 내용은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덕일은 그래도 책을 보고 연구하고 찾아보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가설로 만들어 설명을 합니다.
이런 부분은 긍정적인 부분으로 봐야 하는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역사를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학교에서 배운 사실만으로 더 찾아보려는 노력없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싸잡이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그리고 현재 배우고 있는 국사책은 삼국사기 내용조차 제대로 담고 있지않아요.
왜곡된 부분이나 없는 내용을 가르치기도 하고 있구요.

삼국사기가 국보라면 최소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사책은 그 내용을 잘 담고 있어야 하는것 아닐까싶어요.

RanomA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RanomA (125.♡.92.52)
작성일 10.26 20:58
@그러니까그게님에게 답글 이덕일은 같은 상황이라도 내로남불이 있습니다.

선조의 독살설에 대해서,광해군 뒤의 서인이 집권한 뒤에도 서인 누구도 선조의 독살설로 광해군을 더 조지겠다라고 한 적 없다...라면서 선조 독살설을 말이 안된다라고 했었죠. 같은 논리라면 정조의 죽음 뒤 정순왕후가 물러나고 시파가 집권했어도 벽파에 대해서 독살했다면서 벽파를 더 조지겠다라고 한 적 없는데도 (그래서 같은 논리로 유봉학은 정조 독살설이 틀렸다라고 했죠)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이덕일도 주장을 제대로 하려면 그냥 교차검증도 안한 문헌적 얘기를 할 게 아니라, 교차검증된 문헌 얘기를 하든가, 고고학적 증거를 대든가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그게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그러니까그게 (58.♡.165.52)
작성일 10.26 22:33
@RanomA님에게 답글 어느 설이 설득력 있는지는 각자가 판단하겠지만 여러 문헌을 가지고 보는 것이 판단에 더 도움이 되겠지요.
기본적으로 저런 설들이 다양하게 나와 논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후에는 더 나은 역사가 만들어지겠지요.

포도튀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포도튀김 (218.♡.73.74)
작성일 10.26 16:04
고대사 공부 조금만 해보면 머 다 나오는데요… 우리가 고대사라 배우는 고조선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게 전부인게 현실이지요.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2a09:♡:4690:♡:0000:♡:20b:2)
작성일 10.26 16:13
@포도튀김님에게 답글 사실 뭐 고대시대 기록은 로미와 중국이 이상하게 많은 거지 고조선이면 그래도 양반이긴 합니다.

깜순할매님의 댓글

작성자 깜순할매 (2001:♡:916a:♡:0000:♡:1230:f7d7)
작성일 10.26 16:45
여기서 박교수님의 자료를 보다니요!
코미님 당최!ㅋㅋ

코미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코미 (2a02:♡:c3e5:♡:0:♡:121b:613c)
작성일 10.26 16:48
@깜순할매님에게 답글 예전에 리그베다 위키에서 하도 환빠때문에 학을 때서요..

세발낙지님의 댓글

작성자 세발낙지 (2001:♡:510c:♡:20b9:♡:c122:3db0)
작성일 10.26 16:54
이게 정설이죠~~

그러니까그게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그러니까그게 (58.♡.165.52)
작성일 10.26 17:05
@세발낙지님에게 답글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내용에 있어서 정설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정설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이론이 되겠지요.
일단 그걸 가설이라고 하고 현 세대의 역사는  현재 그 구성원들의 인식에 부합하는 설을 역사로 인정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것 등으로 이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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