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 공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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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WL⠀
작성일 2025.01.28 19:21
996 조회
21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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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대칭 디자인을 피하고자 크게 노력한 흔적이 보이던 공연장 내부)


1월 14일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Cité de la musique(음악의 도시)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 : LSO)의 연주회를 보았습니다. 저는 런던에는 몇 번 가보았지만 ‘자기네 음식도 제대로 못 만드는 애들이 음악 연주는 제대로 할 수나 하겠어?’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편견이지요. 빈 필하모니의 공연을 몇 번 보고나서 제 교향악단의 최상 기준은 빈 필로 굳어져버렸고 그 밑(?)에 속하는 교향악단은 괜히 깔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반성합니다.


사실 1월 14일의 공연을 보기로 한 것은 LSO 때문이 아니라 협연자로 나온 그 유명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떄문이었습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음반을 통해 피아노 연주의 신세계를 경험한 이후 팬이 되었는데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에 갔다가 정말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노래도 많이 연주했고 사실 당연하지만 제발 휴대폰을 꺼달라는 요청을 그렇게 많이 한 공연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연주장에서는 매우 민감해진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싶었죠. 공연장인 롯데 콘서트홀은 왠지 피아노 독주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들려주는 공연장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비싼 표는 살 엄두도 못 냈는데 그나마 조금 싼 좌석을 선택했는데 제 귀에 들리는 음색도 영 아니었습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나머지 실망을 했고 제 친구는 심지어 지메르만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유럽여행에서 파리를 경유하게 되었는데 마침 지메르만이 공연을 한다니, 이번에도 계속 실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좋아질 것인지 판단해보고 싶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공연은 제 인생에 기억에 남을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장, 교향악단의 실력, 지휘자의 실력, 피아노 연주자의 실력 모두 최정상급이었고 특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내지는 아예 모르고 있었던 새로 접한 음악이 정말 좋았습니다. 공연이 끝난지 이주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때 생각이 자꾸 납니다.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의 디자인도 매우 시각적인 영감을 주는 공연장도 계속 생각납니다. 이런 최고의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공연의 표 값은 제일 싼 것이 12유로이고 아무리 비싸봐야 89유로입니다!




https://philharmoniedeparis.fr/en/activite/27136?itemId=135193

(연주곡 목록 및 상세 정보)




Michael Tippett : Ritual Dances

현대음악인지라 쇤베르크나 알반베르그 같이 어려운 음악이 나오면 어쩌나 잔뜩 겁을 먹고 갔는데 악기 구성은 고전적이었습니다. 전혀 듣기 힘든 노래는 아니었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이 잘 안 알려진 영국의 현대 음악을 많이 소개해서 공로를 인정받아 작위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 공연장이 뿜어내는 음향효과에 매료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연주자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사방에 객석이 있는 구조였고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최장 33미터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음향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현악기의 날카로운 소리가 증폭되어 귀에 꽂히는 곳은 처음 경험해보았습니다. 저는 고역대가 다소 높은 음색을 좋아하는데 이 공연장의 음색은 마치 오디오에 달린 이퀄라이저의 고역대를 최대한 올려놓고 CD를 감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Mark-Anthony Turnage : 기타 콘체르토

이 곡 부터 잠이 확 깼습니다. 교향악단이 연주를 하는데 전자 기타 두 대가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가 이 노래 전체의 선율을 이끌어갑니다. 연주자는 미국의 유명한 기타 연주자 John Scofield 였습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람입니다. 전통적인 교향악단의 악기 구성에 왠 전자 기타인가 싶었는데 정말 잘 어울리더군요. 교향악단의 악기에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따뜻한 기타의 음색이 곡에 더해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기타 선율이 재즈풍인 부분에서는 지휘자도 춤을 추듯이 지휘를 했고 현악기의 연주 기법이 특이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고 작곡자가 무대에 직접 올라와 지휘자 및 기타 연주자와 함께 인사히기도 했습니다. 

어서 이 노래의 음반이나 실황이 좀 공개되면 좋겠습니다. 하루 빨리 다시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 신선한 자극으로 인한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XTZSXuFxzoM?si=mCgHUSODhbcW5HPX






Ludwig van Beethoven : 피아노 콘체르토 4번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출연했습니다. 사이먼 래틀은 지휘를 하면서 지메르만과 계속 눈을 자주 마주치며 호흡을 맞추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래틀의 LSO와 지메르만은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전곡을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LSO는 빈 필하모닉에서나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마치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연주하는 듯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톱니바퀴 같은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지메르만의 피아노 연주는 그냥 ‘미쳤습니다’. 자칫하면 피아노 소리가 교향악단의 소리에 묻히기 쉬운데 피아노 소리가 매우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피아노 건반에서 물결이 파도치며 오고가는 느낌을 느꼈다면 믿으실려는지요?


https://youtu.be/I59CqV3BsrI?si=5r7MLplRTwY32ngi

https://youtu.be/TeyZMS1OrWM?si=pAQ4QJN3rM9tAFwE

https://youtu.be/EKp50_mb_kg?si=PD5eG8rcAHkK3bg1




연주를 너무 잘 해서 관객들이 일어났는데 각자 나름대로 박수를 치는게 아니라 군대식으로 모두 박자를 맞춰 박수를 쳤습니다. 두 곡을 더 연주했는데 마지막 곡은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의 프렐류드(Prelude) 23의 5번이었습니다. 이 빠른 노래를 매우 여유로운 자세로 힘있고 박력넘치게 연주하더군요. 무대에서 피아노 하나만 연주되고 있는데 마치 교향악단이 동원된 느낌이었습니다.


https://youtu.be/acVODwPb1G8?si=3xMB59E0Kcg92w3P

(지메르만의 연주 영상은 없는 듯 하여 비슷한 풍으로 연주한 동영상을 올립니다.)




이 공연을 계기로 저는 다시 지메르만의 팬이 되기로 하였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아 사이먼 래틀에대한 근거 없는 편견을 버리고 실력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좋은 현대음악이 찾아 듣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죠. 이런 감동적인 공연을 언젠가 다시 경험하게 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 그나저나 표 값 좀 싸지면 정말 좋겠습니다.



(+ 연주자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폰 프로를 사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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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7 / 1 페이지

SDK님의 댓글

작성자 SDK
작성일 01.28 19:21
정성스러운 후기 감사합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19:23
@SDK님에게 답글 사실은 보러간당에 올릴까 하다가... ;;; 여기에 올렸습니다.

SDK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SDK
작성일 01.28 19:24
@PWL⠀님에게 답글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러간당에 제가 나중에 복사해드리겠습니다.

달콤오렌지님의 댓글

작성자 달콤오렌지
작성일 01.28 19:30
와우~ 공연 후기 공유 감사하네요~ b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19:31
@달콤오렌지님에게 답글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알려고 싶었습니다 ㅋㅋ

달콤오렌지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달콤오렌지
작성일 01.28 19:32
@PWL⠀님에게 답글 공연홀도 멋있습니다~ b

Kaff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Kaffe
작성일 01.28 19:35
멋진 공연 후기 감사합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19:36
@Kaffe님에게 답글 댓글 감사합니다.

달짝지근님의 댓글

작성자 달짝지근
작성일 01.28 19:37
와우 공연 영상은 없나요?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19:37
@달짝지근님에게 답글 찍으면 아니되옵니다.... ;;;

Badman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Badman
작성일 01.28 19:38
공연장 디자인 참 이쁘네요.
요즘은 공연장들이 다들 저렇게 아티스트를 가운데 놓고 사방에서 볼수있게 만드는게 일반적인가 봅니다.
전에 락밴드 공연에서 저런 무대를 보고 참 신선하고 신기했는데 말이죠.

뭐 이 세상에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있지만, 세계최고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곳은 빈필과 베를린필이라는 얘기는 저같은 문외한도 들어본적이 있네요. ^^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19:44
@Badman님에게 답글 빈필은 보면 정말 기계가 연주하는 것 같아요. 베를린도 그렇구요.
제가 괜히 영국이라고 런던필 무시한것을 반성합니다.

queensrych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queensryche
작성일 01.28 23:31
@PWL⠀님에게 답글 (소곤소곤 위에 공연은 LPO아니고 LSO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LSO가 영국 최고의 기능적(?)인 오케스트라라 생각합니다
동시대 작곡가에게도 열려있고요, 브랙시트 이후 영국 악단들이 정체됨을 느낌니다ㅠㅠ
(지머만이 래틀이 아닌 살로넨/필하모니아랑 녹음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웠습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02:25
@queensryche님에게 답글 아… 생각해보니 lpo가 따로 있네요 ;; 알려주샤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녹음 결과물은 좀 그저 그랬던 곡의 라이브에서 감동을 받은 거죠?!

queensryche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queensryche
작성일 어제 09:12
@PWL⠀님에게 답글 ㅋㅋ

queensrych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queensryche
작성일 01.28 19:41
오래 전 녹음 번스타인과의 3, 5번 아주 좋았고 몇년 전 래틀과의 녹음은 아쉬웠었는데
다시 찿아 들어봐야겠습니다
새해에도 멋진 공연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19:49
@queensryche님에게 답글 https://damoang.net/free/2886580
https://damoang.net/free/2967960
며칠 전에 임윤찬의 공연과 관련하여 짧게 올린 글이 있습니다. 심심하면 읽어보세요. ;-)

연초부터 돈을 너무 휘질러 썼습니다. 올해는 국내에서 클래식 공연은 안 가도 된다는 심정으로 이번에 몰아쳐서 봤습니다. 아마 이후에는 후기가 없을지도 몰라요.

시간이 날 때에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공연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adfontes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adfontes
작성일 01.28 20:08
@PWL⠀님에게 답글 최애 피아니스트입니다. 후기 기대하겠습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05:48
@adfontes님에게 답글 https://damoang.net/free/3010645 후기 올렸습니다.

발랄한원자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발랄한원자
작성일 01.28 19:52
링크된 영상보니 기타 콘체르토 정말 멋지네요.
일렉 기타가 저렇게 따뜻하고 온화한 소리를 내다니요.
정말 멋진 크로스오버입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19:57
@발랄한원자님에게 답글 정말로 저 쇼츠는 분위기의 극히 일부만 살짝 보여준 것입니다. 소리의 폭도 크고 기타 특유의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떨림을 더해주기도 하고... 정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RPhF님의 댓글

작성자 RPhF
작성일 01.28 20:07
LSO도 대단한 악단이죠. 영국 요리도 사람들 편견이 심해서 그렇지 괜찮은 게 있긴 합니다. 존 스코필드가 솔로이스트로 협연했다니, 재미있었겠습니다. 래틀도 이젠 늙은 티가 나네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콘서트는 보셨나요?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20:14
@RPhF님에게 답글 반갑습니다. 덕분에 폴리니 공연을 볼 수 있어서 계속 기억하고 있는 은인이십니다. ;-)

영국 음식은... 제 영국 친구들이 잘 안 먹더군요. 선데이 로스트라는 것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왜 그걸 굳이 먹냐고 해서 저를 오히려 당황시켰어요.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기타 연주자분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고 깜짝 놀랐어요.

강행군 끝에 부다페스트에서는 거의 몸살 수준으로 뻗어버렸습니다. 오페라를 보고 싶었는데 잘 모르는 공연을 하길래 그냥 순수 관광객모드로만 있었습니다.

RPhF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RPhF
작성일 01.28 23:57
@PWL⠀님에게 답글 저도 선데이 로스트는 먹어 본 적이 없지만 펍 요리도 잘 하는 데서 먹으면 정말 맛있죠.

예전에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연주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퍼포먼스가 훌륭해서 아주 만족했었죠. 창립자인 지휘자 이반 피셔가 지금도 상임으로 있죠. 세체니 온천도 들르셨나 보네요.

존 스코필드도 음악 내공이 상당하죠. 케니 버렐과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즈 기타리스트입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02:36
@RPhF님에게 답글 저는 두번째 방문인데 동행자는 처음이라 여기저기 관광모드로 다녔습니다. 한 겨울에 세체니 온천은 야외인데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높아서 그냥 현지인들이 가는 곳에 갔습니다. 아주 좋았어요! :-)
이반 피셔가 거기 출신인줄 몰랐습니다. 왠지 또 하나 뭐 놓친 느낌입니다!!!

RubyBlood님의 댓글

작성자 RubyBlood
작성일 01.28 20:27
마음을 담아 써주신 후기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공연 현장을 마음으로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명절 연휴에 링크 영상도 좋네요.
덕분에 본가에 온 김에 예전에 모았던 CD(언제적 유물 일까요. ㅎㅎ)들 보고 있는데 추억이 몽글몽글 하네요.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01.28 20:53
@RubyBlood님에게 답글 감사합니다. 제 cd는 팔려나가거나 방치 상태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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