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아르헤리치, 임윤찬, 미샤 마이스키 등의 공연 후기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PWL⠀
작성일 2025.01.29 05:34
1,371 조회
26 추천

본문


이번 1월에 무려 3주간 기차를 타고 유럽을 훝고 다니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1. TVN에서 방영한 텐트밖은 유럽 이탈리아 편을 우연히 보게되었습니다. 작년에 유럽에 다녀온지라 올해에는 당연히 여행을 안 가고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에 나오는 지역에 졔가 코로나 직전에 갔던 곳과 일치하더군요. 그 떄의 좋은 기억이 떠올라 갑자기 비행기 표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2. 작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하던 날 밤에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가 공연을 했습니다. 몇 년전에 공연을 보고서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빈 공연을 하는 당일날 제가 귀국을 해야 한다니요! 공연 일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늦은 일정으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을 거라며 몇 달을 후회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르헤리치가 제가 유럽에 가고 싶은 기간에 스위스에서 며칠간 공연을 계속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거기에 임윤찬까지 같은 날에 공연을 한답니다! 아… 이 정도면 비행기를 타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었습니다.


이리하여 비싸서 절대로 가지도 않을 것 같던 스위스에 가게 되었습니다. 남들 다 가는 융프라우 같은 곳은 갈 생각도 안 했고 그냥 음악회와 미술관 관람을 목적으로 다녔습니다. 너무 비싸서 호텔 조식을 제외하고는 싸구려 음식만 찾아 먹느라 좀 구질구질하게 살았습니다.



스위스의 루체른(Luzern)이라는 KKL(루체른 문화 회의 센터)이라는 유명한 공연장에서 일주일간 피아노 페스티발이 열렸습니다. 인구 8만명 밖에 안 되는 도시에 이런 규모의 공연장이 있고 교향악단도 있더군요. 아르헨티나 출신이자 현재는 스위스에 거주하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가 상임고문 정도의 역할을 하는 듯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아르헤치리와 친구들’ 공연인 셈입니다. 본인이 직접 공연에 많이 참여하더군요. 공연은 피아노 독주, 루체른 교향악단과의 협주, 실내악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두 개를 골랐습니다.



(옛 건물이 잘 보존되어있는 이 도시에서 KKL은 상당히 튀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을 기준으로 뒷편으로는 동네가 완전히 재개발되어 신식 건물이 들어서있습니다.)




1월 16일

https://sinfonieorchester.ch/en/veranstaltungen/grand-piano-concerto-i-rachmaninov-2-martha-argerich-friends/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임윤찬의 피아노 협주

차이코스스키의 사계: 임윤찬의 피아노 독주

야니네 얀셴(Janine Jansen), 미샤 마이스키(Misha Maisky),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 Argerich): 공연장에서 연주곡 발표




1월 17일

https://sinfonieorchester.ch/en/veranstaltungen/grand-piano-concerto-ii-felix-mendelssohn-le-carnaval-des-animaux-martha-argerich-et-sa-famille/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아트리체 라나(Beatrice Lana)의 피아노 협주

다수의 멘델스존 곡: 베아트리체 라나의 피아노 독주

스메타나, 라흐마니노프 등의 다수 곡 : 릴랴 질버스타인(Lilya Zilberstein), 안톤 게어젠베르그(Anton Gezenberg), 다니엘 게어젠베르그(Daniel Gerzenberg),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 협주

생상의 사육제: 아르헤리치 외 다수의 악기 연주자 협주





정말 큰 기대를 하고 갔던 루체른 교향악단과 임윤찬의 공연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당혹스러웠죠. 교향악단과 피아노가 완전히 따로 놀았습니다. 지휘자는 피아노 연주자와는 별로 교감하지 않는 것 같았구요. 마치 교향악단이 먼저 치고 나가면 피아노가 따라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뭐 저런 지휘자가 있나 싶었습니다. 임윤찬의 연주 스타일도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올라온 후기를 보면 우리나라 관객이나 해외 언론이나 모두 찬사 뿐이던데 저도 다른 사람들이 느낀 흥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KKL의 음향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제 생각에는 이 공연장은 소리가 잘 울리는 곳이 아니라’벽이 소리를 다 흡수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루체른 교향악단의 연주, 임윤찬의 피아노 독주 뿐 아니라 그리고 베아트리체 라나의 독주 에서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게다가 마이크를 하나도 안 쓰고 그냥 악기 소리로만 공연을 진행한 것 같은데 교향악단과 협주를 하는데 피아노 소리가 묻혀 잘 안들리면 마이크를 썼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게 피아노 축제라면 피아노 소리가 돋보이도록 음향에 대한 고려를 했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https://damoang.net/free/2886580

(루체른에서 남긴 글)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왜 아르헤리치가 공연을 할 때에는 피아노 소리가 갑자기 확 튀어 나오는 것일까요? 1월 17일에 후반부에 공연한 사람들의 연주에서도 피아노 소리가 꽤 잘 들렸습니다. 좀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16일과 17일 모두 1부에서는 젊은 연주자들의 공연으로 꾸며졌고 2부는 아르헤리치의 친구들 위주의 공연이었습니다. 젊은 신예들의 연주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서 저를 힘들게 했는데 아르헤리치와 친구들 같은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 연주를 하면 그 소리가 확 살아난다는 점이 참 신기하더군요. 이게 경험에서 오는 내공이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르헤리치는 애석하게도 공연 전 며칠전부터 독감에 걸려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침묵을 꺠고 무대에 다시 선 오랜 친구 미샤 마이스키의 첫 공연을 외면할 수는 없어서 건강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강행했습니다. 하이든, 멘델스존, 쇼팽, 슈베르트의 노래를 연주했는데 1부에서 느낀 실망감을 한번에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르헤리치의 독감 때문에 공연이 짧아진 것이 아쉬울 뿐이었죠. 연주된 모든 곡이 극찬을 받을만 했고 그 중 마지막 앵콜곡으로 연주된 슈베르트의 그대는 나의 안식(Du bist die Ruh)를 연주는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DFGlYvzAAcQ/?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


https://youtu.be/3A9Qhh8oCnY?si=9-xhczwmeJv1O8oc

(미샤마이스키의 그대는 나의 안식. 예전 연주)




16일에 짧게나마 접했던 아르헤리치와 친구들의 연주가 훌륭했기에 17일 공연도 매우 기대가 컸으나 애석하게도 아르헤리치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17일 공연 전체를 취소해버렸습니다!

!!!

어찌보면 아르헤리치가 있어서 이번 유럽 여행을 계획했던 저로서는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소식이었습니다. 표를 취소하고 싶기도 했는데 공연표는 절대 환불 불가더군요. 아르헤리치가 빠지는 바람에 연주곡 목록이 대거 수정되습니다. 네 명이 한꺼번에 피아노를 치는 진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세 명이 치는 공연으로 바뀌어버렸죠. 그래도 연주가 훌륭했기에 큰 불만은 없습니다.


(세 명이 두 대의 피아노로 체르니와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협주)


https://youtu.be/mqvJt52dUBk?si=lG_6N8puoiNbpCwe

​(아르헤리치의 불참으로 연주되지 못한 곡.)



생상의 사육제 공연도 아주 좋았습니다. 특이한 점은 아르헤리치의 딸이 설명을 맡았고 손자인 다니엘 첸(Daniel Chen)이 피아노 연주에 합류했습니다. 말 그대로 아르헤리치의 친구들 공연이었습니다. 사육제 전곡을 설명과 함께 들어본 적은 없었기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연주도 훌륭했고 분위기도 가볍고 재미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미샤 마이스키가 제 코 앞으로 지나가더군요. 인사라도 하려고 헀는데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버려서 그냥 지나쳐버리게 되었습니다.




요약 및 추가 설명:

루체른 KKL과 심포니는 제 마음에 안 들어요. 표 값도 스위스 답게 제가 본 다른 공연에 비해 압도적으로 비쌌습니다.


두번째 본 아르헤리치, 얀센, 마이스키의 공연은 매우 좋았습니다.


아르헤리치 누님이 독감에 걸려서 둘째날 공연을 취소해버렸습니다.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임윤찬은 똑같은 곡을 빈에서 훨씬 더 좋게 연주했습니다. 루체른에서는 제 기준으로 별로였습니다. 역시 음악의 도시 빈...

(https://damoang.net/free/2967960)


영국의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에서 이 축제 전체에 대한 평을 올렸습니다. 저보다는 훨씬 더 후한 평가를 주었는데 글 속에 미묘하게 연주의 단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라나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건반을 뭉개버리며 연주하는 사람은 앞으로는 거르겠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music/2025/jan/25/le-piano-symphonique-festival-lucerne-luzern-review-high-drama-with-martha-argerich-and-friends



26추천인 목록보기
댓글 14 / 1 페이지

설중매님의 댓글

작성자 설중매
작성일 어제 05:43
일단 와드박고 정독합니다 ㄷㄷ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05:45
@설중매님에게 답글 일찍 일어나셨군요 ㅋㅋ

설중매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설중매
작성일 어제 06:22
@PWL⠀님에게 답글 이날씨에 산소가야해유 ㅎㅎ
안오면 이놈하심요 ㅠㅠ

Kaffe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Kaffe
작성일 어제 07:25
음반에서만 듣던 분들을 실제로 보고 듣는 경험 저도 꼭 해보고 싶네요. 클래식의 본고장 답게 저변 자체가 다르다는게 느껴지는군요. 유럽 가게 되면 음악 공연 꼭 가봐야겠어요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09:48
@Kaffe님에게 답글 이런 동네에 살면 오디오에 큰 돈을 안 들여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기회가 되면 꼭 음악회에 가보세요.

링컨타는백수님의 댓글

작성일 어제 07:25
와우 거장들이 모이는 공연을 스위스에서 했었군요 저는 알아도 못 갔을듯하네요 ㅎㅎ 부러울따름 입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09:48
@링컨타는백수님에게 답글 대신 통장 잔고가… 비어갑니다

Silvercreek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Silvercreek
작성일 어제 08:26
와 대단하시네요..언제쯤 저런 공연을 가볼려나요.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09:49
@Silvercreek님에게 답글 대단하긴요. ;;;;

striatum님의 댓글

작성자 striatum
작성일 어제 16:45
이야 아르헤이치 여사의 연주라니 정말 부럽네요!! 건강이슈로 정상적으로 모든 공연을 보지는 못하셔서 아쉬우시겠어요.

임윤찬의 연주도... 참 좋더라구요. 저도 좋아하고 짝궁이 참 좋아해서 볼 수 있을때는 항상 노리고 있는데... 그런 임윤찬의 연주와 오케스트라의 궁합이 안 좋았다니 참 아쉽네요 ㅠ 개인적으로는 반 클라이번의 라피협2번을 참 좋아하는데, 어떤 스타일인지도 궁금하군요. 덕분에 글 잘 읽었습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16:55
@striatum님에게 답글 사실 가장 기대했던 것은 대부분 예상을 벗어났고 (임윤찬, 아르헤리치) 기대를 별로 안 했던 것은 좋아서 (LSO, 알솝, 비엔나의 오페라)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곡도 다른 환경에서 완전히 들린다는 것도 깨달았구요.
독감은 정말 걸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ㅠㅠ

달짝지근님의 댓글

작성자 달짝지근
작성일 어제 17:40
스위스 물가를 생각하면 쉽사리 도전하기 힘든 여행기네요 ㄷㄷㄷ

PW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PWL⠀
작성일 어제 18:27
@달짝지근님에게 답글 표 값이 비쌌는데 이게 사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 표 값 수준입니다. 유럽에서 보는 클래식 공연치고 비싸다는 것이고 사실 유럽에도 비싼 표가 많습니다. 다만 비싼 표도 있지만 싼 표도 많아서 우리나라에서보다는 훨씬 덜 부담스럽게 공연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 스위스 공연은 표 값도 비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값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될 수준입니다. 박물관에 둘이 가면 10만원 비슷하게 깨져요. 한국에서 사간 음식과 수퍼마켓제 싼 피자 조각으로 떼웠습니다. ㅠㅠ

달짝지근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달짝지근
작성일 어제 20:15
@PWL⠀님에게 답글 한국도 도서 산간지역은 택배비가 따불이니까 물류비로 생각하면 높은 물가도 어느정도 이해가 갈지도요 ㅋ
홈으로 전체메뉴 마이메뉴 새글/새댓글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