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조영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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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영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날이 좋아지면, 혹시 '조영래 변호사'를 영화로나마 만나 뵐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더불어, 글 하나를 덧붙입니다.
하얀 겨울에 떠나간 우리들의 '조변'
우리들의 '조변'이 갔다.
어디 가서든 그의 친구임을 자랑하고 싶도록 만들던
조영래 변호사-그의 푸근한 미소와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줄담배 연기를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는 '조변'없는 이승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조변!
그렇게 훌쩍 세상을 뜨는 것을 보니 저승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구려.
조변호사,
그는 어차피 요절한 천재로 기억될 것이다.
'조변'은 그러나 바보를 존경할 줄 아는 천재였다.
예리하고 가파른 천재가 아니라 강 같은, 음악 같은, 함박눈 같은 풍류남아였다.
그 깊고 넓은 웅지를 펴기 전에 질풍노도의 시대를 만나
1년 반을 감방에서, 여섯해를 도망자로 보내야 했던
'우리들의 조변'은 죽음까지도 태산같이 당당하게 맞아들였다.
전남 곡성의 태안사에서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던 '조변'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애써 싸우지 않았다.
죽음을 사색하고,
죽음과 대화하고,
그러다가 친구가 되었다.
그는 아마도 죽음과 손잡고 저승길로 떠났으리라.
조변호사는 이 나라 인권변호의 새 지평을 연 사람이었다.
그의 변호에는 인권의 파괴를 체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게와 진지함이 실려 있었다.
'작은 진실에의 열정'이 있었고
당해본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과 가슴이 있었다.
"권양, 온 국민이 그 이름을 모르는 채 성만으로 알고 있는 유명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조변'은 불의와 싸우는 데 있어서 논리의 힘에 못지않는 감성의 떨림을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의 인권활동에는 유려한 시심과 무서운 신바람이 함께 있었다.
권인숙양 사건과 망원동 수재소송사건에 열중해 있던 1986~87년이
아마도 그의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지금 모두가 갑갑해하고 있지만 먼 훗날에는 이 시대를 아름답게 추억할 겁니다.
인권, 자유, 평등과 같은 고매한 이상을 주제로 하여
나라 전체가 토론하고 분노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던 그가 19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야당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머리띠를 두르고 드러누워버렸다.
세상은 그의 희망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실패한 정권교체와 민주화의 사생아처럼 불거져나온 지역감정과 복잡다기해진 갈등들이
우리의 '조변'을 쓸쓸하게 만들어갔던 것이다.
'조변'은 작은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아는 이였다.
그는 연탄공장 주변의 진폐증환자,
스물다섯살에 정년퇴직해야 했던 여자,
분신자살한 젊은 노동자-이런 작은 이들의 문제 속에서
이 역사와 이 사회를 울리는 큰 의미를 뽑아냈다.
상처받은 권양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자상하고 세심하게 보살펴준 이야기는
오영수의 단편소설감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조영래는 억울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되었다.
그가 바로 '법을 배운 전태일'이었다.
'조변'은 꽉찬 80년대를 살았지만 결국 못다 핀 꽃이었다.
이것이 원통하고 억울한 것이다.
그는 10년 정도를 담을 그런 그릇이 아니었다.
짧았던 43년보다 몇배나 더 오래 이어질 아쉬움, 추억담,
그리고 긴 여운을 우리 가슴속에 남기고 그는 표표히 떠났다.
명창 '조변'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러뇨"를 즐겨 부르더니
한 2년 전부터는 왜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를 그토록 열창하기 시작했는지.
조영래 변호사!
그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이만 떠나시오.
뒤돌아보지 말고, 남은 것 묻은 것 있으면 다 털어버리고,
자 뛰어가세요.
'조변'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천당, 극락이 아니고 어디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은,
아무리 천당, 극락이라지만
몸이 아프거든 제발 약도 먹고 병원에도 좀 다니시오!
- 조갑제 (지금의 조갑제가 아니라 젊은 시절의 조갑제)
끝.
아수라장님의 댓글

어째서 이렇게 좋은 분들이 먼저 떠나시는지 안타깝습니다. ㅠㅠ
벗님님의 댓글의 댓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어디에서든 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배불뚝이아저씨님의 댓글
아니 인권 변호사로서는 노무현보다 더 떠어난분이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