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작업하다 이제야 선고기일 지정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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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을, 그리고 어쩌면 아무도 찾는 이 없을 작업 진행 중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한 의사면허 정리작업이 지난하게 계속되고 있었거든요.
(대한제국기에 시작했던 의술개업인허장 144호 + 조선총독부 의사면허 2154호)
그중 오늘은 "폐업으로 인한 반납"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조사하느라 오전을 꼴딱 날렸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던 것이, 그는 이른 시기에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와이에서 개업하다가
부인이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들이 미국 시민권자가 되게 할 수는 없다"며 귀국했습니다. (1917)
그런데 그 아이는 딸(서울대 성악과 교수를 역임한 고 이관옥 여사)이었는데 어쨌든 귀국은 했지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919)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활동(주로 외교)을 하고 다시 러시아-독일 등지에서 활약하다 베를린대학에서 호흡기질환 관련 연구도 합니다.
그러다 1937년 2차로 귀국하여 개업하다 1942년에 폐업하며 의사면허를 반납한 것이었습니다.
임시정부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국민장(1968), 대한적십자사 창립의 공을 인정받아 적십자대장 태극장(1976)을 받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나라를 생각했던 옛 의사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었는데요.
왜 이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이 시기에 신문 광고를 내면 보통 일본어 신문에 많이들 냅니다.
그런데 이분은 일본어 신문에는 광고를 내지 않고 조선일보에만 냈더라고요.
말이 길어졌는데,
4월 4일에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상서롭게도 독립유공자의 발자취를 따르던 찰나에 나온 선고기일 지정이었으니까 기대합니다.
EthanHunt님의 댓글

에스까르고님의 댓글의 댓글
힘이 많이 납니다.
오늘 찾은 독립유공자님의 생애가 너무 멋져 그리 말씀하신 것이겠지요.
앞으로도 이런 분의 발자취를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에스까르고님의 댓글의 댓글
시카고 로욜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박사학위까지 거기서 받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돌아온 분인데
"의학박사"에 자부심이 있었는지 신문기고문이나 광고에 M.D. 혹은 '독토르' 라고 붙이시더라고요.
Java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