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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만세운동 사적지 답사 후기 1(몇편에서 끝날지 모릅니다.ㅠ)
아기고양이

Lv.1 아기고양이 (223.♡.91.176)

2026년 5월 3일 PM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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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작성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원래 어젯밤에 올리려던 것이 오늘 밤에야 겨우 1/3을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6.10만세운동이라고 하면 3.1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순종이 돌아가시고 나서 펼쳐진 운동인데 권오설 선생 시신에 남은 고문 흔적을 감추려고 일제가 관을 못 열어보게 철제관에 납땜까지 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에 몽양아카데미에서 안동 답사에 갔을 당시 권오설 선생의 후손분께 직접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후손분께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정도가 기억나고 만세운동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저게 다였지요. 뭘 배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도 하고 한동안 관심을 안 뒀어서 또 더 모르기도 합니다. ㅠㅠ

암튼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답사 정보를 접하고 5월2일 어제 드디어 답사에 다녀와서 후기를 작성합니다.

저처럼 모르셨던 분들을 대상으로 적는 후기이고 저도 나중에 또 보고 상기할 수 있도록 들은 거를 최대한 다 적으려고 합니다.

2시부터 5시까지 계획됐던 답사가 길어져서 5시40분에 끝났고 자료집만 29페이지에 이를 만큼 내용이 방대했어서 후기도 내용이 길 것 같아서 쓰다가 너무 길면 나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답사의 해설은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님과 김경준 독립기념관 연구원 두 분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자료집이 답사 전날 저녁에 배포되었는데 역시나 파일명에 (최종)이 들어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김경준 연구원님은 12년전 몽양아카데미 답사를 같이 다니던 시절에 대학생이었는데 연구원으로 뵙게 되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내앙인이라 답사 메이트 친구와 둘이서만 반가워했고 내색은 못 했습니다.^^;

이 답사는 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의 지원으로 이뤄진 답사였고 사업회 관계자분도 몇 분 동행하셨고, 40명의 정원이 다 차서 대기인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주말이라 데이트하는 연인들과 관광객들로 무척이나 북적이던 북촌의 길을 지나 도착한 첫 답사지는 중앙고등학교였습니다.

답사 코스는 중앙고등학교 ->인촌고택 ->송학선 의거 현장 ->천도교 중앙대교당 ->단성사 ->권오설 아지트 터 ->세브란스의전 만세운동 현장 ->신간회 창립본부 터 ->신간회 본부 터 -> 탑골공원(즉석에서 추가된 곳)이었습니다.

  1. 중앙고등학교 : 6.10만세운동의 주역들을 배출한 요람

박찬승 교수님께서 72년에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셔서 75년 2월에 졸업을 하셨다고 하는데요. 학창시절 6.10에 대해 못 들으셨다고, 중요한 지도 모르셨다고 합니다. 연구도 많지 않고 실질적 연구서는 한 권 뿐이라고 해요.

기록의 대부분이 일본어 초서로 쓰여있고, 고려대 도서관에 있던 자료가 공개가 다 안 되어서 아직도 전모를 잘 모름을 전제로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하는 이 학교의 건물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3.1운동기념비, 왼쪽에는 6.10만세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이 본관 건물은 화재 후에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10~20년대 학적부가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학적부가 남아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해설은 우선 6.10만세 기념비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1운동기념비가 73년에 교수님 재학 시절 세워졌고, 6.10만세 기념비는 83년에 중앙동문회와 동아일보가 같이 세웠다고 합니다.

위 아래로 기념비가 두 개가 있는데요. 위에 있는 것이 1983년에 세워진 것이고, 아래에 있는 것이 2012년에 세워진 것으로 내용이 약간 다른데 1983년에 쓴 것은 학자들이 쓰고, 2012년에 쓴 것은 동문 중심 내용이라고 합니다.

순종의 인산일에 동원되어 나간 중앙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있던 곳이 단성사 맞은편이었는데요. 1930년대 경성트로이카 중 한 명이자, 해방 후 남부군의 빨치산 이현상이 당시 고2였고, 만세를 부른 3인 중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60명 정도가 체포되고 40~50명 정도가 재판을 받고 상당수가 퇴학을 당하여 졸업앨범을 보면 절반 정도가 비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앙고 학생 뿐만 아니라 중동학교 학생팀도 삐라를 만들어서 뿌렸는데, 이들은 동묘 앞에서 만세를 외쳤고 서로 약속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선호(23세, 당시 20대가 많았다고 해요.), 이동환(27세)도 만세를 불렀는데, 이들은 피가 낭자하게 구타 당하여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었는데, 도열해있던 학생들이 경찰과 헌병에 에워싸인 상태에서 만세를 외쳤기 때문에 심하게 맞았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용기를 냈던 분들이 정말 대단하고,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던 학생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당시 학생들은 두 분류로 통동(지금의 통인동)계와 사직동계로 나뉘었다고 하는데요.

통인동에 하숙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중앙과 중동 학생들로 주로 이루어졌었구요.

사직동계라고 불렸지만 지금의 삼성서울병원과 4.19혁명기념도서관 자리(죽첨동)에 하숙하는 학생들,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계열이었고, 연희전문과 중앙고등학교 학생들로 주로 이루어졌고, 이선호와 동갑인 이병립이 주요멤버였다고 해요.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이번에 처음 듣게 되었는데요. 1925년 조선공학회의 해체 후에 만들어졌고, 화요회 계열의 학생단체로, 조선공산당이 청년기관 고려공산청년회(줄여서 고려공청, 책임비서 권오설)을 만들고 그 외곽단체가 조선학생과학연구회(줄여서 조과연)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s://www.osos.or.kr/610-2

후기 작성을 위해서 자료를 더 찾다보니 권오설권오상기념사업회에 이런 표가 있어서 가져옵니다.

각 현장에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전에 중앙고등학교를 둘러보며 설립자 김성수의 아버지(양부) 김기중의 동상 앞에서 중앙고등학교의 시작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인촌 김성수는 전북 고창의 만석꾼 집안의 아들로, 유길준이 경영하던 중앙학교가 유길준이 세상을 떠난 후 폐교 위기에 처하자 학교를 인수하게 되는데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양부와 생부를 설득했는데 생부는 20대 청년이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힘들거라 보고 재산을 내놓기를 거부했지만 인촌이 단식투쟁까지 할 정도였어서 결국 재산을 내놓아서 두 부친을 설립자로 하여 1915년 4월에 학교를 인수했다고 합니다. 총독부 허가도 쉽지 않았다고 하구요.

양아버지가 논을 3천마지기를 내놨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어 찾아보니 한 마지기가 200평이라 3천마지기면 600,000평이네요. 여전히 가늠하기 어려운데 엄청난 부자이긴 했었나봅니다.

그리고 건물들 뒷편으로 갔더니 무척 넓은 잔디운동장이 보여서 고등학교라고 하기엔 엄청난 규모에 깜짝 놀랐구요.

저 뒤로 성균관대학교가 있고, 옆으로는 창덕궁이 있었습니다.

이 곳 계동에 새로운 교사를 지을 때 송진우가 구석진 곳에 학교를 세운다고 반대를 했는데, 서울 장안을 내려다볼 수 있고, 뒤에 있는 북악산의 정기를 받고, 창덕궁 후원도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둘러보니 정말 명당 맞아보였고, 아들이 있었다면 여기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현재 중앙고는 자사고라고 합니다.)


운동장과 신관 건물 사이에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시비가 있었는데요.

고창에 서정주문학관이 있는데 친일문제때문에 백안시해서 그런지 방문객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라는 시를 쓴 요절시인 기형도도 이 학교의 70회 졸업생이라고 하고, 이상화 시인도 그렇고, 채만식 문학비도 있었는데요.

군산에 있는 채만식 문학관에도 방문객이 별로 없다고 하셨어요. 말년에 친일을 했었다나봐요. '탁류'는 지금 읽어도 잘 쓴 소설이라고 하셨는데 언제 읽어봐야겠습니다.

중앙고와 창덕궁 사이에 설치된 철망 사이에 폰 카메라 렌즈를 넣어서 찍었는데요. 교수님 재학시절에는 여기까지 내려가셨었다고 합니다.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이라서 일반 관람객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지도를 보니 이렇게 자세히 나옵니다. 창덕궁 신선원전, 수복방, 재실 등을 찍어왔나봅니다.

삼일기념관은 3.1운동을 구상한 장소라고 하는데 원래 위치는 강당 앞이어서 그 곳에 표식이 따로 남아있었습니다.

일본 도쿄 유학생 송계백(보성 고보 출신)이 중앙학교로 찾아와 보성고보, 와세대대학 선배인 교사 현상윤을 숙직실에서 만나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서 초고를 보여주고, 현상윤은 다시 최남선에게 보내주어서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상윤이 송계백이 가져온 독립선언서 초고를 천도교 측 최린(보성고보 교장, 가회동 거주)과 손병희에게도 보여주어 1월 28일경 천도교도 동참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3.1운동을 앞두고 대한제국 원로들을 설득했는데 거절 당했고, 기독교계도 동참하길 바라며 서북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남강 이승훈을 김성수와 송진우 교장이 계동 김성수의 집에 모셔서 설득했다고 합니다.

1911년 신민회 105인 사건으로 몇 명이 고문 끝에 사망하고 신민회가 해체되었기에 이승훈이 우린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흔쾌히 동참하기로 하셨는데 서울쪽 기독교계에서는 독립청원서를 따로 하겠다고 해서 천도교에서 무슨 청원이냐고;; 손병희가 자금 지원(5천원, 현재 금액 약 5억원)을 하고 이승훈이 다른 인사들을 만나서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2월 25일쯤 동참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27일에 서명자가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김성수도 3.1운동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학교를 지키기 위해 3.1운동 직전 고창으로 피신해있었고, 나중에 고등보통학교로 승격도 시켰다고 합니다.

중동학교가 원래 있던 자리는 수송동 연합뉴스 자리로 일본 대사관 근처입니다. 어제 카드지갑을 두고 나가서 대중교통 이용을 못 하고 차를 가지고 가서 주차를 한 곳이 연합뉴스 옆 건물 주차장이었어서 위치가 어딘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이 왜 이렇게 찍혔는지 모르겠지만;; 중앙고등학교 강당 아래쪽에 노백린 장군의 집 터 표식도 있었습니다.

2. 인촌선생고거 : 3.1운동기 천도교와 기독교의 합작을 논의한 곳

다음 답사지는 김성수 선생 옛집으로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4-6입니다.

상시개방이 아니고 어제는 닫혀있어서 대동세무고등학교로 올라가서 고택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입이 딱 벌어지게 넓은 집에 정자와 연못이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요.

김성수가 살던 때 40년대 전쟁 때는 방공호로 개조도 했었다는데 현재 금고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집안 행사, 가족 모임은 현재도 이 곳에서 한다고 하구요.

기독교와 천도교의 합작이 이뤄진 장소일 뿐만 아니라 제헌헌법 초안도 여기서 만들어졌고, 1980년 2월 25일 '서울의 봄'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 김영삼 신민당 총재, 김대중 전 의원 등 이른바 삼김이 회동을 한 곳이라고 합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개헌을 어떻게 할 지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그랬다는데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확대에 이런 꿈은 좌절되었죠...

아래 사진에 찍힌 나무 건너 건물이라고 설명을 들은 것 같습니다.

들어가셔서 보셨다는 분이 계셔서 어떻게 갈 수 있는지 검색해보고 있는데 딱히 나오는 게 없어서 관리하고 있다는 인촌기념회에 문의해봐야 알 것 같고, 아래의 블로그에 내부 사진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gbogie/223518353464

이곳에서 내려가기 전에 김성수의 친일 논란에 대해 어떻게 봐야할 지 교수님께 질문하신 분이 계셨고, 안 그래도 동문회 강연이 2년전 있었는데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김성수의 친일이 2가지로 전쟁협력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매일신보에 2번 학도병 논설을 올린 적이 있다는 것인데, 친일 흔적으로 훈장이 박탈이 되는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으나, 친일반민족행위자(1급 친일인사를 추려서 선정)라고 하기에는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동생 김연수는 중추원 참의였으니 친일이 맞지만, 김성수는 매일신보기자가 원고를 써서 김성수의 이름으로 올린 것인데, 유진오의 검토를 받아서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올린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분명 문제이지만 당시 인식의 한계였던 것으로 보이고, 요즘 말로 하면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역사의 평가는 냉정한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셨구요.

2018년 서훈이 취소되었고 중앙고에서 동상을 없애자는 주장도 사이에서 계속 나오지만 철거는 안 되고 있는데, 서울 대방동에 위치한 야구 명문 성남고에서는 친일 설립자의 흉상을 뒤로 치우고 교가도 바꿨다고 합니다. 후손이 조상의 죄를 씻겠다고 이렇게 했다고 하는데 교가의 내용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습니다.

먼–동이

트–니이 온누리- 환하도다

환—한

이강산에 원석두님 나셔서-

배–움길

여–시니 크신공덕 가이없네

성남성남

우리모교 무궁탄탄 할지어다

원석 두 님 : 설립자 원윤수와 김석원 둘 다 친일 인사를 기리는 노래였군요.

출처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46878

동작에 우뚝 선 진리의 배움터

미래를 선도하는 성남학교 인재들

땀 흘려 정진하자 우리들의 미래를 향해

성남 성남 우리 모교 무궁 탄탄할지어다

출처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50520/131639798/1

이렇게 바뀐 것을 야구부 우승 소식과 함께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3. 송학선 의거 현장 : 안중근을 존경했던 한 청년, 조선총독을 노리다.

송학선 의사의 이름과 얼굴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정말 얼굴과 이름만 알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의거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챗지피티가 사람들을 다 지워줘서 휑해보이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관람객이 무척 많아서 아주 붐볐습니다.

이곳은 창덕궁 금호문 앞으로, 주소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입니다.

평소 안중근을 존경했던 청년 송학선은 원래 일본인이 운영하는 농기구점에서 점원으로 일을 했던 사람인데 1926년 3월 어느 날 일 하던 사진관에서 스테이크 나이프를 주워 외출할 때 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일본인 고관을 암살할 기회를 엿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승하하자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창덕궁에 조문을하러 올 것으로 짐작하고 26일부터 매일 창덕궁에 찾아가서 기회를 노리다가 28일 오후에 돈화문과 금호문 사이를 배회하며 기회를 노리다가 덮개가 없는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에 사이토가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 차에 뛰어올라 한 명은 즉사시키고, 한 명은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습니다.

사이토는 이미 오전 8시에 문상을 하고 갔고, 정무총감 역시 다녀간 상태였고 경성부협의회 의원 사토 토라지로가 중상을 입었고, 국수회 지부장 다카야마 다카유키가 즉사한 것이었습니다.

의거 직후 송학선은 재동반면으로 도주했는데, 휘문고보(현재차 계동 사옥 자리)쪽에서 추격해오는 일본 경찰들과 결투를 벌이는 것을 학생들이 목격하고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송학선의 기세에 순사들이 달려들지 못하고 돌을 던졌는데 돌을 다 피하고, 심지어 총알을 다 피해서 못 맞히니 송학선이 팔을 벌리고 맞춰보라고 할 정도였는데도 경찰이 잡지를 못하다가, 송학선이 발을 헛디뎌서 붙잡혔다고 합니다.

피체된 후 법정에서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우리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여 마땅하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겠다."라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891884&cid=72555&categoryId=72555

의거 다음날 국수회에서 국상중인 창덕궁에 난입하여 조선인들을 보이는대로 구타를 하고 시설을 파괴하며 행패를 부렸는데도 일본 군대와 경찰들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하네요.

송학선은 사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32살의 짧은 생을 마쳤는데 순국 당시 나이가 평소 존경했던 안중근의 순국 당시 나이와 같았습니다.

​의거터 표지석이 설치돼있지만 정확한 위치에 대한 고증이 더 필요하다고 하셨구요.

답사 한 시간 반 분량의 후기를 작성하는데 몇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고, 내용이 너무 많아서 ㅠㅠ 일단 후기 1을 여기까지 적고 나머지는 또 나눠서 작성하겠습니다.

부디 끝까지 다 작성할 수 있음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10)

  • 수현

    수현 Lv.1

    05.04 · 211.♡.164.238

    단편적으로만 알게 되었던 걸 자세히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속의 기형도 시인이 그립기도 하네요ㅜ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수현 작성자

    05.04 · 223.♡.91.176

    아… 기형도 시인을 아세요?

    저는 잘 모르는데 광명시에 있는 문학관에 답사 메이트 친구와 같이 간 적이 있어서 어제 얘기 듣고 반가워했었어요.

  • 수현

    수현 Lv.1 → 아기고양이

    05.04 · 211.♡.164.238

    제가 좀 우울한 영화나 문학을 좋아해서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입시집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또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치기도 해서요. 자기 감정 상태나 환경에 따라서 좋아하는 글들도 다른 것 같아요. 글 속에 기형도 라는 이름이 등장하니 무척 반가웠습니다.ㅎ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수현 작성자

    05.04 · 223.♡.91.176

    아… 그러시군요. 좋아하신다니 저도 반갑습니다.

  • kita

    kita Lv.1

    05.04 · 125.♡.203.162

    {emo:damoang-emo-008.gif}

    정성글은 추천 후 정독이라 배웠읍니다.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kita 작성자

    05.04 · 223.♡.91.176

    남은 건 좀 짧게 끊어서 써야겠어요. 이거 쓰고 지쳐서 누웠습니다. ㅋㅋ ㅠ

  • 감정노동자

    감정노동자 Lv.1

    05.04 · 116.♡.18.168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성스럽게 쓰신만큼 정성스럽게 잘 읽겠습니다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감정노동자 작성자

    05.04 · 223.♡.90.16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쉽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끊어서 쓰겠습니다.^^;

  • Rider_man

    Rider_man Lv.1

    05.04 · 180.♡.225.117

    우리의 역사가 잊혀지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죠!

    이렇게 올려주시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멋진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emo:damoang-emo-000.gif}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Rider_man 작성자

    05.04 · 223.♡.90.6

    아직 밝혀야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 같아요.

    답사 다니면서 몰랐던 걸 배우는 건 재밌는 일이에요. 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자료를 더 찾아봐야하지만 그것도 재밌어요.

    다만 후기 작성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 쉽지가 않네요. 어설픈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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