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때 호랑이 피해가 심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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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수천년부터 시베리아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언제부터 살았는지를 따지는게 의미가 없을정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기록에 따르면 먹을것이 없어서 마을까지 내려온 호랑이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랑이와 사람의 접촉은 극히 드물었고 깊은 산속에 혼자만 안들어가면
호랑이를 볼기회가 없었죠 호랑이도 여러 사람이 있으면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농지개간을 하게되면서 산속까지 들어가 농사를 하게되면서 호랑이 접촉이 많아지고
사망자도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16세기에 이르면 한해에 수백명정도가 호랑이때문에 목숨을 잃은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족 실록의 위대함이죠.. 17세기 기록에 따르면 이때도 호랑이에 물려죽은 사람이
한해 140명이 넘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호랑이는 가축들을 먹이로 삼았죠.
한반도 남부로 한정하면 지리산 일대와 백두대간에 이르는 산맥에 호랑이가 많이 살아서 이쪽 피해가
극심했다고 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치르러 선비들의 1차관문이 호랑이 피해가기 였다고
합니다. 절대로 혼자 다니지 않고 5-10명의 무리들이 일부로 큰소리를 내면서 산을 넘었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사람이 몰려다니면 절대 다가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때만 해도 호랑이는 꽤 많이 있을거로 추정되는데 씨가 마른건 일제시대였죠.
농사를 중요시했는데 호랑이 피해가 심해지자 전국적으로 호랑이 박멸 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시대때 한반도에서 죽은 호랑이가 대략 200마리 이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혜아범님의 댓글
아.... 있기는 하네요.... 저기 용머시기 동네에 있다던데
이런저런님의 댓글의 댓글
홀맨님의 댓글의 댓글
러시아애들이 잡고 그러다가 시베리아 호랑이가 30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950 -60년대
러시아나 중국이 망했다 하면서 보호 정책을
펼치면서 20-30 년동안 늘어서
300-400 마리 이상 됩니다
무심님의 댓글
궁궐 옆 인왕산에도 호랑이가 있었고
남쪽 끝 통영의 산속에도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 호랑이는 표범도 포함하는 범칭이었던 것 같습니다.
biogon님의 댓글
햇살좋은봄날님의 댓글의 댓글
초보아찌님의 댓글
외국에서 산속에서 낙상해도 늑대에게 죽었다고 했듯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람님의 댓글
평지뿐인 세종일대에 '범'이 있기라도 했을까나요...
그냥 웃자고 해본 소리입니다...
휘소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