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경험 및 작은 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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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가 큰 화제네요.
잠시 고민하다가 몇년전 지하주차장 화재를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혹시나 도움이 되실까 싶어 경험기와 작지만 소중한 팁을 남겨봅니다.
저는 서울의 한 구축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지상주차장도 있고, 지하2층까지 지하주차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 동별로 지하주차장이 분리되어있습니다. 공간도 명확히 분리되어있고, 지하주차장 진출입로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주차장은 아파트 세대와 연결되어있지 않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몇년전 여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이었습니다.
저희집에서는 지하주차장 진출입로가 보이는데요, 베란다로 바깥을 보는데, 지하주차장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뛰어나오시더니, 경비실과 관리실을 분주하게 왔다갔다하시는게 보였습니다. 뭔가 이상하더라구요, 아니나 다를까 10분 정도 지났는데, 주차장에서 연기가 조금씩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눈치여서, 아내에게 나가서 상황을 보고 오겠다고 하고, 슬리퍼를 신고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보니 꺼먼 연기가 주차장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데, 소방차가 여러 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나오더라구요.
지하주차장에 불이 났으니, 주민들 모두 밖으로 나오라는 방송이었습니다.
다행히 곧 아내와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가지고 나왔다보니, 어디 가있을 수도 없기에, 제가 집에서 지갑이라도 들고오려고 아파트 중앙현관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저희집은 저층이라서 빠르게 걸어올라가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중앙현관에서 누가 막거나 하지는 않고 있기도 했구요.
정말 미친듯이 빠르게 뛰어올라가는데, 3층쯤 가서 알았습니다. 사람이 연기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갑자기 앞이 안보이고 목이 콱 막히더라구요. 그래서 위에 입었던 티셔츠로 입과 코를 막고 더 빠르게 뛰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니, 다행히 집안은 괜찮더라구요. 그래서 급하게 지갑을 챙기고, 손수건을 물에 적셔서 다시 입과 코를 막고 미친 듯이 뛰어내려왔습니다.
저층이었기 망정이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게 내려와서 가족과 상봉한 후,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가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근처 호텔로 갔습니다. 온가족이 정말 거지꼴이었죠. 화재는 생각보다 큰 화재였고, 아주 밤이 깊어서야 진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집을 떠나 집에 돌아가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일단,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차량으로 인한 화재는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한데, 전기 관련 설비에서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만 나중에 전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지하주차장의 화재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 화재는 우리 동의 주차장이 아니라, 옆 동의 주차장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불의 입장에서는 지하주차장이 분리되어있다고 하더라도,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주차장과 연결되어있지 않더라도 연결되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간이 분리되어있어도, 환풍, 설비 등 다양한 목적으로 만들어져있는 연결 경로가 다 불과 연기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옆동 주차장에서 난 불로, 단지 전체 주차장이 화재 연기로 가득찼고, 각 세대도 연기로 가득차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물론 옆동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동들은 직접적인 피해는 경미했습니다만, 거의 보름가까이 전기가 모두 끊기고 수도가 모두 끊겼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제 차와 아내 차는 다행이 지하1층 진출입로 근처에 주차가 되어있어서, 연기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만, 깊숙히 주차되어있던 차들은 연기 그을음 피해가 심각하였고, 실제 화재가 난 옆동에는 전소차량도 몇대 발생하였습니다. 게다가 각 세대에 침투한 연기들로 집안 전체가 검은 그을음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집안 청소, 세탁 등이 엄청난 문제입니다. 그나마 세탁으로 해결되면 경미한 편입니다. 화재연기는 그을음이라서 조금만 심하면 세탁으로 해결이 안되기 때문에 모두 버려야 합니다.
물론 화재 청소 전문 업체들이 있고, 그 업체들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수습해나가는데, 한두달 이상의 불편과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저희집은 다행히도 경미한 편이어서, 화재청소와 전문세탁업체 등을 통해서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용은 화재보험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기에, 경제적인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트라우마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전기차 충전 시설에 대해서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기차 충전설비가 화재의 원인은 아니었지만, 화재가 옮겨가는 경로를 제공하면서 더 큰 화재가 되었다는 말이 돌았거든요.
이전에 고속충전기가 동마다 2대씩 있었는데, 화재 이후 싹 없어졌고, 지금은 완속충전기만 한대씩 설치되어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반대속에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전기차든 내연차든 지하주차장 화재는 정말 무시무시하고, 위험합니다. 안전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자 이제 팁입니다.
1. 지하주차장 화재 시, 빠르게 대피하시되, 피난패키지를 평소에 미리 준비해두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갑과 차키, 그 밖의 생존키트)
2. 대피하실 때, 각 방의 방문, 화장실문, 베란다문, 현관 중문 등 다 닫고, 나가세요. 비가 안온다는 전제하에 창문은 열어두면 아주 좋습니다. 베란다, 싱크대, 화장실은 연기의 통로가 되므로, 다른 방으로 넘어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문은 닫고 창문은 열어두는 것이 향후 수습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3. 집에 놓고 온 거 있다고 다시 들어가지 맙시다. 정말 죽을수도 있습니다.
4. 집에 돌아왔을 때, 청소부터 하지 마세요. 피해상황을 꼼꼼히, 상세히 사진찍어서 남기세요. 특히 그을음은 그냥 사진 찍으면 안보입니다. 만져서 문질러 봐야 보이니, 티가나도록 해서 사진을 남기는게 좋습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 상황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나중에 보상받을 때 피곤함을 줄이는 길입니다. 청소업체들이 사진도 남겨준다고 하는데, 대충합니다. 적어도 피해상황은 스스로 최대한 상세히 찍어서 남기는 것이 유리합니다.
5. 화재보험은 꽤 유용하다. 개인별 화재보험이 없더라도 공동주택 화재보험이 있기 때문에, 보상은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개별 화재보험이 있으면, 보상 받는 과정이 훨씬 더 수월합니다. 한 업체가 수 백 가구 화재보상을 접수받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까요. 개별화재보험이 있으면, 거기를 통해 접수하고 업체 간 구상권청구할테니, 피해세대 입장에서는 훨씬 편합니다.) 저는 별도로 화재보험을 들지 않아서, 꽤 왔다갔다했고, 고생스럽게 했습니다.
6. 화재가 나면 일단 전기는 끊깁니다. 수습을 위해 집에 돌아왔을 때에, 냉장고 열지 마세요. 전기가 끊겼더라도, 안에 있던 냉기때문에 며칠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냉장고를 열면 그 냉기가 빠져나가고, 망하는 겁니다. 냉장고는 전기 돌아오고 열어도 늦지 않으며, 피해를 줄이는 길입니다.
7. 자동차는 가능한 상황이면 빨리 전문 업체에 그을음 세차를 맡기세요. 경미한 편이라면 대부분 원상복구에 문제가 없습니다.
8. 근처에 저렴한 호텔, 레지던스 등 한 일주일 정도는 머물 수 있을 곳을 미리 잘 알아두세요. 중간중간 왔다갔다도 해야 해서 가까울 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호텔비는 화재보험에서 실비로 주는 것이 아니므로, 비싼 곳가면 손해입니다.
9. 와인셀러에 있던 와인은 멀쩡하더군요. 와인은 살렸습니다.
더 생각나는게 없으니, 이만 줄입니다. 댓글로 물어봐주시면 생각나는 범위 내에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ciroccoR님의 댓글
"창문은 열고 방문은 닫아라" 꼭 기억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화재 보험 얼마 안하니 꼭 가입 하세요.
누수관련,일배책 특약도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ACIDBURN님의 댓글의 댓글
화재보험은 저도 동감입니다. 당해보니 가입해두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aeronova님의 댓글
ACIDBURN님의 댓글의 댓글
버미파더님의 댓글
무사히 잘 넘기셔서 다행이고,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CIDBURN님의 댓글의 댓글
platypus님의 댓글
ACIDBURN님의 댓글의 댓글
해방두텁바위님의 댓글
꼰대생각님의 댓글
일전에 같이 점검 들어갔던 소방관님께 들었던 얘긴데
화재 난 집 가보면 가족들이 대부분 현관문 근처에서 숨져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평생을 살아오던 집인데도 앞이 보이지 않는 연기와 호흡곤란에 진짜 불이 났다는 공포와 정신적인공황상태에 빠져 현관문을 찾아 헤메다 몇분 안되어 연기에 질식해 쓰러진다고 하더군요.
영화같은거 보면 위급상황이 발생했을때 정신만 차리면 일사분란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 상황에 접하면 대부분은 공황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하시더군요.
다리힘이 풀리고 발이 안떨어지니 계단을 찾아도 내려가다 구르기 일쑤고 그러던 중 한두번 호흡하며 연기를 훅 들이키는 순간 끝이라고 합니다.
화재현장에서 사망사고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불에 타죽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 연기에 의한 질식사라고 하시더군요.
결국 철저한 예방과 초기발견, 초기진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베레나르님의 댓글
ACIDBURN님의 댓글의 댓글
도시님의 댓글
고층의 경우 엘레베이터 중단되면 걸어서 내려가기 겁날겁니다. 내려가다 불이나 연기에 막히면...
마틸다님의 댓글
창문을 열어두라는건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들인거죠?방마다 있는 창들은 닫아야 하는건가요?
ACIDBURN님의 댓글의 댓글
연기의 내부유입이 예상되는, 베란다, 싱크대, 화장실, 그 외 환기, 배수 시설이 있는 공간은 연기의 내부 유입이 예상됩니다.
그런 곳은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을 열어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육일사님의 댓글
저게 근데 참... 당해보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행동절차들이죠.
잘 숙지해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