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엔젤 (118.♡.112.3)
2026년 5월 14일 PM 05:47

마침표에 인색한(?) 라슬로 선생님의 책을 또 한 권 읽었습니다.
'서왕모의 강림'이라는 제목 때문에 표제작이 있거나, 여신님께서 강림(?)한다는 뜻인줄 알았는데, 왠걸요. 여신 대신 성찰의 순간들이 내려오사라는 뜻이었나 봅니다.😀
각 장의 숫자가 순차적으로 되어 있지 않아서 목차만 보고는 당황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피보나치 수열식으로 장에 숫자를 붙였는데요. 이는 각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야기가 독립적이라고 보지만, 실제로는 긴 삶의 시간들이 이어지는 상징이라고 번역가 분의 해설이 있었네요.
그만큼 소설속 주제인 성찰의 순간들과 그에 따른 등장 인물들의 내면의 고독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면을 보여줍니다.
예술가라고 하면 흔히 크리에이터적인 면도 보기도 합니다만, 비평가나 단순히 읽거나 접하는 독자와 갤러리도 어느 순간 저마다 작품에 대해 받아들이는 독특한 감동을 가지는 순간 예술가적인 성찰에 다다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작가와 화가, 작곡가들도 등장하지만, 한 편으로는 한 직의 경비부터 예술적 대가의 작품을 분석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자신만의 예술적 성찰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역자 분은 이러한 성찰을 '에피파니'라고 명명하셨더라구요.(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다.^^)
이 극도로 높은 정신적 도달음의 순간은 그것을 경험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타인들간의 단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타인의 이해를 받지 못하거나, 자신이 느낀바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 하기도 합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면, 전람회에 가서 늘 뭔가 찾아 내려 애쓰던 어린시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책에서 봤던 위대하고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자신이 못나게 느껴지는 자격지심 같은 걸까요?
하지만, 나이를 먹고 이런 저런 경험을 쌓다 보니 어느 날은 문득(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아! 이런 느낌이구나!'라는 감정 혹은 생각을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라슬로 선생님의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게 비슷한 데요. 끊어지지 않는 문장 들 사이에 쉼표를 정말 말 그대로 쉬는 표식 삼아 고통스럽게 읽어가다가 하나의 챕터가 끝났을 때 그런 느낌이 듭니다.
책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소설 속 예술가들이 느꼈을 고독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감각의 경지에 이른 기쁨이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와 같은 범인들이 일상에서 이런 비슷한 엑스터시(마약 이름 아니에요!)를 느끼게 되는 건, 아무래도 진행하던 업무가 뜻밖에 성공이나 전혀 다른 차원의 단계로 갔을때일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직장인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엄연히 예술가라고 불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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