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 야밤의 달리기 1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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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장거리를 달린 후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살짝 못됐더군요.
장마기간 비가 오던 안오던, 그래도 우리는 달려야합니다.
말을 타고 달리던, 차로 달리던, 두 다리로 달리던.
저녁을 먹기전에 달리고 와야지 하고 급히 차를 충전시키고 들어가려는 찰라,
'어라, 이건 뭐지?'
충전기에 오류 표시가 뜨더군요
-사용이 중지된 카드입니다-
'하아, 죽긋네…..'
엉덩이가 무거워 장실도 가야되고, 달리기도 해야 되고… 바쁜데 이 무슨 충전기 까지
속을 썩이고….. . 예전에 선친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오줌은 마렵지요, 콩죽은 끓지요, 비는 오지요, 마당은 질지요, 변소는 멀지요....'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일단 집에 들어가서 장실에 앉아서 충전기 회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최대한 상냥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접대 목소리로, "여보세요~" 이러쿵 저러쿵…. "아,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요"
7/8일에 충전한 요금 1,980원이 결제가 안돼서 사용이 중지되었다고 하더군요, 젠장.
우여곡절 끝에 충전기 회사와는 해결을 하고, 관리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충전기 오류가 나서 기계가 작동을 안합니다. 전원을 내렸다가 다시 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
"여보세요?"
"네? 잘 안들려요. 크게 좀 말씀하세요"
"여보세요! 들리십니꽈??!!"
"네"
"아, 충전기가 @%#$ㅉㄸㄲㅎㄴ … 다!"
"위치가 어디라고요?"
"지하 @ㄲ@#ㄴㅇㄹㄹ ... 요!"
"알겠어요, 나가볼게요"
유선전화기가 잡음이 상당히 많아서 잘 안들렸나 봅니다.
전화를 끊고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관리실에서 나오는 시간이 있으니, 충전기 앞에 가서 기다리면서 준비운동을 하면 되겠다, 시간을 좀 줄이자'
부랴부랴 신발을 신고 지하에 있는 충전기 앞으로 가니, 역시 예상대로 관리실 직원분이 아직
도착 전 입니다.
슬슬슬 삭삭삭 몸을 풀고 있으니 관리실 직원 분이 저 쪽에서 보이더군요.
고개를 돌려 봐라보니, 한 손에 몽키 스패너를 들고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시는데.
'몽키 스패너를?'
그 걸어오는 자세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나오는 박중훈 모드 입니다.
'곰 인가?'
다행히 가까이서 보니 나이드신 관리실 직원이시더군요.
충전기를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사용중지된 카드라는데요?"
"그거는 충전기 회사와 풀 문제고, 그 문제는 해결 됐습니다.
그 상태에서 재부팅이 안되서 전화드린겁니다. 옆에 분전반에서 전원을 내렸다가 올리면 리셋됩니다"
"분전반을 열어야 된다고 말씀 안하시던데….."
"전원을 내려야 된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 분은 전화 받은 분이 아니더군요. 전화 받은 분이 가보라고 해서 온 듯 하더군요.
"열쇠를 안가져왔는데….."
"분전반 안에서 전원을 내려야 됩니다"
"열쇠가 관리실에 있나 모르겠네요, 충전기 회사에서 주고 갔나 모르겠어요"
"관리실에 있습니다. 분전반은 관리실에서 관리하는 것이라 열쇠는 관리실에 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몇 번 한 경험이 있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슬쩍 못마땅하게 째려보시는데 모른척 했습니다, '얼른 달리러 가야 되는데 ,하아….'
"열쇠 있나 가볼게요"
"네"
다시 몸을 풀고 있는데, 지하로 차 들어오는 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야밤에 이상한 복장에 지하에서 어슬렁 거리면 이상하게 볼까봐 차들 사이에 숨어서
몸을 풀고 있자니, 한 10여분 흐르고, 그 관리실 직원분이 또 다시 어슬렁 거리며 오시더군요.
분전반을 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데, 전원을 내리면 옆에 있는 충전기들 전원도 같이 내려가는거 아닙니까?"
"아니요, 충전기 마다 번호가 있고, 분전반안에 전원 스위치에 각 번호가 붙어있어서
그 번호만 전원 내렸다가 올리면 됩니다"
자신 없어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분전반에서 전원 내렸다가 올리고, 기계가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을 관리실 직원에게 보여주고, 차에 충전을 시작했습니다.
충전을 시키고 난 후 시계를 보니 밤 10시 반이 다 되어 가더군요.
'잘하면 12시 넘겠는데, 정말 한 밤중에 달리겠네' 하면서 워밍업 겸 살살 달려서 트랙으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무술 연마 하시는 분도 안계시고, 트랙을 달리는 러너들도
많지 않더군요.
기온 25도에 습도는 83% 더군요.
'어라, 습도가 생각보다 높지가 않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하는데, 한 8k 쯤 달렸을까요 뒤에서 계속 누군가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내 발 소리인가?' 하고는 조심 조심 뛰어봐도, 계속 소리가 따라 옵니다.
슬쩍 뒤를 한번 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9k, 계속 소리가 납니다.
'뭐지?'
다시 뒤를 돌아보니, 아래위로 검정색 복장을 한 러너가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고 있더군요.
' 아, 잡힐 수 없지'
조금 더 속력을 내 봅니다. 발자국 소리가 조금 더 가깝게 들립니다.
조금 더 빠르게 뛰어봅니다. 소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10k. 의자에 놓아둔 플라스크를 잡는다고 속도가 줄었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졌습니다.
'안돼…'
페이스를 5초 당깁니다. 한 바퀴.... 발자국 소리가 멀어집니다.
10.6k, 다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집니다.
'하아, 오늘 강적 만났네….' 하는 순간 트랙의 모든 불이 꺼지더군요. 시게를 보니 12시 입니다.
주위를 보니 러너 한 네 분, 산책하는 암수 한 쌍 있더군요.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요즘 대세라는 상탈을 한 번 해보자'하고는 윗 옷을 벗었습니다.
'오우야~, 안입은 그 자유로움~, 캬야~, 그렇구만 좋구만 크하~'
자유로워졌으니 페이스를 10초 당깁니다. 거리가 똑같이 유지됩니다.
11k. '질 수 없다….'
전력 질주의 80% power로 뛰었습니다.
5'15'',….. 5'05''……. 4'50''….. 4'30''……4'25''
11.4k 아, 이제 더 이상 안따라옵니다.
'됐다, 이겼다, 헉~헉~헉~ 헉헉.......'
12k에 멈추고, 파워에이드 원샷 때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뛸 힘이 없습니다…….
뒤에 따라오던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일부러 안봤습니다.
그 분이 더 뛰는지 멈췄는지 안봤습니다. 그렇습니다.
벗었던 윗 옷 싱글렛을 손으로 짯더니, 물이 주르륵~ 떨어지더군요 금방 물에서 건진것 마냥.
땀으로 온 몸 샤워를 했습니다.
기분 좋은, 혼자만의 레이스를 이겼습니다. 푸핫~
레메디스트님의 댓글
고향이 어디신지 모르지만 이런 옛말은 또 처음인데 너무 재밌습니다요
'오줌은 마렵지요, 콩죽은 끓지요, 비는 오지요, 마당은 질지요, 변소는 멀지요....'
한편의 시트콤 잘 읽... 아니 봤습니다 ~
감사합니다 ~
해봐라님의 댓글의 댓글
재밌게 읽으셔...아니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포체리카님의 댓글
해봐라님은 작가를 하셨어야 합니다.
글 속에서 상상이 되니 얼마나 표현력이 대단하신지!!
기억력도 좋으시고!!
어렸을 때 에피소드들 하나씩 풀어주세요 작가님!!!!!
아마 개구장이셔서 재미있는 얘깃거리 많으실거 같아용 ㅎㅎㅎㅎ
일등 독자 돼 드릴게용^^
해봐라님의 댓글의 댓글
달리기 평가를 해주셔유~ 4'25''까지 뛰었어유~
포체리카님의 댓글의 댓글
허벌나게 빠르셨습니다!!!!!
ㅎㅎㅎ500원 콜~~~~~
말랑말랑님의 댓글
상탈의 자유글 잘 보았습니다(?) ㅋㅋㅋ
고생하셨습니다. 다음글에서 또 뵈요~
해봐라님의 댓글
기회 되면 상탈 한번 해보시져, 어휴 새로운 세상입니다.
감사합니다.
해바라기님의 댓글
해치우고 와서 지금 읽는데…ㅋㅋ흐흐흑..!
해봐라 님의 해학적인 표현들은 선대인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 받으신 모양입니다.
“오..콩..비..마..변”ㅋㅋㅋ
제가 어제 아래위 검은색 복장으로 438로
겁나게 달렸는데 425로 도망가고 계셨구만요^^
후반부에 저정도 페이스업 가능하시면
3분대도 그냥 들어 가시겠어요.
인간극장 4부는 이걸로 갈무리하는 걸로!ㅎ
야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해봐라님의 댓글
'오 콩 비 마 변'으로 외워야 겠습니다. ㅋㅋ
해바라기님이셨군요 해氏 일족이 해를 쫒다보니 그렇게 뛰었나봅니다 ㅋ.
4분대는 거의 심장 터지죠, 1k만 하는걸로 ㅎㅎ.
아저씨 : "아직 1부 남았다"
감사합니다.
저스트리브님의 댓글
그래도 뿌듯하시겠습니다 달리셨으니까요! ㅎㅎㅎ
해봐라님의 댓글
뿌듯합니다 ^^
오늘도 달리려고 했더니 비가 오네요....
감사합니다.
지지브러더스님의 댓글
해봐라님의 댓글의 댓글
배 나온 아재 몸 입니다.
야음을 틈 타서 잠시 자유를 만끽했습니다ㅎㅎ
울버린님의 댓글
앞부분 읽다가 이 글은 천천히 읽어야 겠다~ 라는 생각에~ㅎㅎㅎ
수고하셨습니다~ㅎㅎ
제다이마스터님의 댓글
해봐라님의 댓글의 댓글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ㅎ
살맛난다님의 댓글
짜토님의 댓글
전방에 저분 바지에 휴지를 달고 뛰시는구나… 급하게 화장실에라도 다녀온게 아닐까? 쫓아가서 알려주고 싶은데… 점점 빨라지는군… 휴지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무시해도 좋으련만. 불행히도 난 뭔가에 꽂히면 꼭 해결해야만 하는 강박증 환자! 하지만… 점점 더 빨라진다… 숨이차다. 갑자기 불이 꺼졌다. 하지만 흰색 휴지는 달빛을 받아 더욱 눈에 성가시다.. 이번엔 웃통을 벗었다. 바지에 낀 휴지를 알아차릴만도 한데… 이젠 웃통벗고 휴지를 날리며, 더 빨리 달리고 있다. 도저히 무리다… 분하지만. 거리가 점점 늘어간다…. 죽을 힘을 다해 쫓아가려는데… 드디어 바지에 붙었던 휴지가 떨어져 산들바람에 날려오는게 보인다. 트랙에 삺포시 떨어진 휴지를 손에 든다. 다행이다. 휴지는 휴지통에. 자.. 이제 됐다.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만족감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해봐라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이런이런님의 댓글
너무 잼나게 읽었습니다^^
질주로 도망도 하시고 ㅋ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