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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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하늘걷기 121.♡.94.37
작성일 2024.09.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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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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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망하기 시작한 첫날을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한다.

 

누구는 수년째 이어지는 이상 고온에 대한 해법을 의논하던 그 회의를 말하기도 하고.

누구는 우주에 거울을 달겠다고 우주선이 발사된 그날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지구 온난화 방지 행동이라는 테러 조직이 주요 국가의 발전소들을 동시에 폭파한 날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확실히 쐐기를 박은 건 테러 이후에 생겨난 게이트이고 처음 게이트가 열린 날을 세상이 망하기 시작한 첫날이라는 의견이 제일 많다.

 

나도 여기에 동의하는 편이다.

 

게이트에서 괴물이 튀어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날개 달린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왔다.

우리가 생각하던 천사의 모습이다.

천사들이 등이 커다란 통을 메고 있었고 통과 연결된 호스에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천사들은 날아다니며 하얀 연기를 사방에 퍼트렸고 그 연기를 맡거나 직접 맞으면 사람이 죽어버렸다.

지구의 기생충인 인간을 박멸하기 위해 신이 천사를 보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인간만 없어지면 해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었다.

천사들이 나타난 지 일 년째가 되는 오늘.

맑고 청명한 날씨에 공기마저 좋아진 세상을 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

 

일 년 동안 인구의 90%가 사라졌다.

그리고 게이트가 닫혔다.

 

세상이 다시 태어난 첫날이라고 내 일기장에 적었다.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12 12:17
생각해보면 '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어떤 종교인들의 예언이 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방법이 극도로 절제되고 무서운 것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맞는 얘기긴 한다.
가족을 잃지 않은 이가 없었고, 한 가족은 물론 한 마을, 한 도시가 사라진 경우도 허다했다.
천사가 선사한 그 하얀 연기는 지구 상의 생명체 중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널린 게 사람의 시체였고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벌레 천국이 되는 듯 뒤덮였다가, 그 벌레들을 잡아먹는 천적들의 번성이 뒤따랐고,
이는 결국 지구 생태계의 순영향으로 작용되었다.
풍요로운 자원이 풍요로운 세상은 만들 듯,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떠나간 그 사람들은
지구의 자연을 회복시키는 절대적인 영양소로 다시 태어났다.

'신이 우리는 구원할 것'이라고 외치며 신도들의 돈을 끌어모았던 이들도 역시 영양소가 되었다.
신이 우리만을 구원한 게 아니라, 지구의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구원했던 것일까.

그 '첫날'이 지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혼란의 나날들이 지나고, 인류는 다시 시작했다.
추모를 할 수 있는 이들이 남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대다수는 모두 고아였다.
희망이라는 씨앗이 자랄 흙바닥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수 개월이 지났다.
남은 사람들은 그 날을 잊으려는 듯, 더 이상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듯
그렇게 다시 '둘째 날'을 시작하려 했다. 아픔을 이제 뒤로 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그 즈음,
다시 게이트가 열렸다.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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