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예상
페이지 정보
본문
"그게 아니라니까."
윗입술에 세로로 길게 흉이 진 사내의 지적에 짜증이 났다.
"스-윽 빡."
스-윽 하고 여유롭게 당겨지던 활시위에 물려있던 살 같던 주먹이 말 그대로 쏜살같이 샌드백에서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60kg짜리 샌드백이 꺾인 허리처럼 휘었다. 그러나 앞뒤 흔들림 따윈 없었다. 클린히트다.
"이렇게 하라고. 스-윽 빡, 스윽 빡, 슥빡"
사내는 속도를 올리며 연거푸 주먹을 날렸다. 가벼운 스텝과 유연한 위빙으로 샌드백 주위를 돌며 주먹을 날릴 때마다 샌드백은 매번 배꼽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절을 했다. K는 주의를 기울여 사내의 동작을 흉내 내보았다. 사내에 미치지는 않지만 나름 예리한 주먹을 날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니라니깐."
스-빡! 사내는 다시 시범을 보였다. K는 무슨 차이가 그렇게 커서 <틀렸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해하던 사내는 링 줄에 걸려던 헤드기어를 K에게 던졌다. 실전을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K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분명 사내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러나 관장도 코치도 아닌 바에야 사내는 끽해야 체육관 고인물 정도일 것이다. 그 씹창 난 얼굴에 기가 눌려 다들 입 다물고 있을 뿐일 터였다.
"관원끼리 스파링은 관장님이나 코치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이 양반 답답하네. 이게 무슨 스파링이야, 지도지. 쫄리나 봐."
K는 잠시 망설이다 헤드기어를 썼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요."라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뻔한 클리셰였다, 게다가 자신의 꼴사나운 패배를 암시하는. 그저 자신이 쓴 헤드기어를 몇 번 툭툭 치고 사내의 머리를 가리켰다.
"참나, 지도라니까"
K의 지적을 사내는 웃어 넘겼다. K는 가볍게 양팔을 흔들어 힘을 뺐다. 그러곤 전형적인 오소독스 스타일의 가드로 사내에게 접근했다. 왼손 잽을 무심히 던졌다. 단순한 잽이지만 가볍지 않았다. K의 잽은 날카롭고 맵기로 관원들 사이 평이 높았다. 어지간한 수준은 이 잽만으로 요리할 자신이 있는 K였다. 노가드 상태의 사내는 손가락 두 마디쯤 여유를 두며 옆으로 돌았다. 한쪽 방향으로만 도는 단순한 회피. 단순한 방어에는 전통적인 공격이 제격이다.
"후, 훗"
마우스피스 사이로 뺕는 짧은 호흡과 함께 K는 갑자기 기어를 올려 원투를 날렸다. 옆으로 도는 사내의 움직임을 예상해 반 보 거리를 한 스텝으로 빠르게 파고 들어 노가드 사내의 머리로 날린 원투. 고개는 첫번째는 가볍게, 두번째는 턱이 들릴 정도로 꺾일 것이다. 소위 '따닥'이다.
"슥 뻑"
사내의 왼손 바디샷이 K의 오른쪽 갈비 사이로 꽂혔다. K는 그대로 오른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바디에 제대로 꽂힌 주먹 때문에 순간 호흡이 끊겼고 통증은 접지된 전류처럼 두 다리를 타고 아래로 흘렀다.
"이게 슥빡이라니까."
예상대로 사내는 움직였고 계획한 투가 사내의 얼굴을 향해 갔다. 그런데 그 찰라 K의 눈은 예상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얗게 번쩍였다. 사내의 한쪽 회피는 낚시였다.
"예상하니까 이렇게 걸리는 거야. 보는 것보다 예상이 빠르다고 생각하는데 반대야. 관건은 뭘 보느냐지."
사내는 팔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주위에 관원 몇이 감탄사를 토하고 있었다.
"어~, 선배님, 어쩐 일이세요."
출입구 쪽에서 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팬암님의 댓글
"........."
"쨉쨉원투 10바퀴 돌고 쉐도우 한시간이야."
"........."
"복창안해!!"
벗님님의 댓글
관장이 사내를 바라보고는 바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자꾸 이러면 출입 금지야, 응, 알았어?"
"아휴.. 선배님,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긴 뭐가 아냐, 이번엔 또 누구야?"
사내는 K의 등에 손을 올리고는 눈을 찔끔거렸다.
얼른 일어나라고, 별로 아프지 않다고.
"너 이러는 거.. 그러다 큰일 나는 수가 있어. 어때? 괜찮아, 괜찮아요?"
관장은 K의 얼굴을 살폈다.
사내에서 제대로 바디샷을 맞았다는 것 보다 관장의 그 염려하는 표정이 더 싫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수준 차이, 슥빡이 뭐 대수라고..
잘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