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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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어디가니 210.♡.254.193
작성일 2024.09.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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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앞을 주시하는 눈은 뜨고 있어도 감은 것과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이 온통 새까맸다. 시각은 마비되고 오직 청각만이 내가 있는 곳이 물 위임을 알려주었다. 수상 좌대에 부딪히는 물결, 그마저도 잔잔해서 물위를 흐르는 바람 소리에 묻혔다.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한참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에도 지포 라이터를 챙기길 잘했다. 기름 타는 냄새를 풍기며 불길이 담배 끝에서 일렁였다. 필터가 침에 젖은 탓인지 담배가 잘 빨리지 않는다. 오랜 흡연으로 약해진 폐활량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뻑뻑 소리가 나게 빤 후에야 담배 끝이 새빨갛게 타들어 갔다. 아니 잠깐 밝았다가 어둠에 먹혀갔다. 어둠 속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 물 위의 검정엔 하양을 섞어도 암흑이 더욱 깊어진다.  


‘무슨 소리지?’


단단한 고독에 미세한 금을 내는 소리, 노 젓는 소리다! 관리인에게는 분명 더 필요한 것이 없으니 내일까지 오지 말아 달라는 주문을 남겼다. 그런데 왜? 노 젓는 소리가 커지면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섞여 들렸다.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까지 낚시하러 오진 않는데 말이죠.”

“차가 막혀서 너무 늦게 도착했네요. 이 시간에 낚시를 할 수 있을까요?”


저 건너편 수상 좌대의 손님인 모양이다. 좌대에서 사람이 빠질 뿐 해 질 녘까지 다른 낚시꾼이 새로 덜어오지 않아 나흘째인 오늘에야말로 이 호수를 독점하리라 기대했다. 온전한 고독, 그걸 오늘 손에 넣을 줄 알았다.


“낚시야 하기 나름이죠. 대신 정숙을 잊지 마세요, 정숙.”

“정숙이는 또 누구예요? 참 구려, 호호”


이번엔 젊은 여자 목소리. 남녀 한 쌍이 왔나 보다. 최악의 상황이 예견되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좌대에 남녀를 내려놓고 나룻배는 올 때보다 조용히 어둠 속으로 지워졌다. 공손하게 ‘정숙’을 지킨 건 나룻배뿐이었다. 그들은 부산을 떨며 좌대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여자의 새된 목소리를 어둠을 갈기갈기 찢고 다녔다. 


“여기 벌레 좀 봐. 난 근처 호텔에 있겠다고 했잖아.”

“색다른 장소에 하는 것도 재밌겠다며, 물침대 어쩌고 할 땐 언제고.”


그들의 날카로운 대거리가 강물 위에 드리운 느슨한 낚시줄 같던 내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이정도 힘이면 송사리는 아닐 것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낚싯줄은 위험하다. 물고기와의 신경전을 못 견디고 끊어지기라도 하면 낭패다. 그렇다고 조바심에 함부로 줄에 손을 댔다가는 손가락쯤은 쉽게 댕강 하는 수가 있었다. 신경줄도 마찬가지다. 다룰 땐 사시미 다루듯, 부드럽고 분명하게 방향, 갈 길만 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걸 경험에서 배웠다. 뼈와 살 사이를 사시미는 그저 차갑게 지날 뿐이다.  


애써 신경을 끊고 있는 사이 건너편 좌대에는 어느새  낚싯대 네댓 대가 무성의하게 벌여져 있었다. 낚시꾼은 없이 켜놓은 라디오만 무어라 혼자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곤 불 켜진 수상 좌대는 강물 위에서 이색적인 파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원시 시대를 깨버리는 증기의 피스톤, 그것이 만드는 문란한 파문일 것이다.


신호다. 낚싯대를 쥔 팔의 팔꿈치부터 손끝까지 짜르 전기가 흘렀다. 내일이면 좌대의 예약도 끝이다. 오늘밤에는 꼭 이루어야 할 일이었다. 조급해할 것 없다. 어제처럼 뼈는 뼈의 길로 사시미는 사시미의 길로 고요히 흘러가면 될 터다. 아이스박스 안, 잘 히야시된 사시미의 손잡이가 단단하다. 이걸 등 뒤에 꼽고 어제처럼 조용히 어둠이 흐르는 강을 가로질러 갈 것이다. 저 문란한 좌대, 그리고 곧 나는 다시 완전한 고독을 되찾을 것이다. 


담뱃불이 가뭇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25 12:46
"어맛, 오빠야! 이거 뭐야?"
"어..? 으.. 으악!"

뭐, 뭐야? 시선이 흔들렸다. 낚싯대를 움켜진 손이 흔들린다. 놓이면 안된다, 놓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저쪽 좌대에서 난 소리다. 무.. 무슨.

어둠이 짙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 것도 걸치지 않는 사내가 혼비백산하며 좌대에서 뛰쳐 나왔고,
곧이어 그의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
그 둘이 질러대는 소리에 정적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사.. 살려줘ㅇ.."
그들의 좌대, 그들의 좌대가 호수 속으로 빨려들 듯 큰 파고를 일으키며 물 속으로 사라졌다.
숨이 막혔다. 이게 무슨..

거대한 머리가, 주둥이를 벌린 거대한 물고기 머리가 사라진 좌대 자리 위에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물 속으로 사라졌다. 엄청난 높이의 물결을 일으켰고, 나는 순간 얼어 붙었다.

'저.. 저 넘을 잡아야겠다. 저, 저 넘을..'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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