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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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도에 읽고 써놓은 원고를 타이핑하였습니다.
'글이 안올라온다' 라는 당주의 글을 읽고 반성하며 한개 올려, 나는 그 책임에서 멀어지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텨텨텨~~~)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홍세화씨의 자서전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중 남민전 사건으로 인해 추방되어 프랑스 파리에 망명하였고 직업으로 택시운전사를 하였다.
그곳에서 택시 운전사로 살아가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담고있다.
그중에 그 대기업 사람들이 누군지 낱낱이 밝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누군가 지하철에서 나의 수첩을 주워주었을때 이것도 일종의 '관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정도는 아니고 "친절" 정도로만 해놓자.
70년대의 사건이 현재에도 "반공"의 허울의 울타리에서 지속되는것이 안타깝다.
그도 '스무살' 언저리였고
현재의 그렇다.
나는 사회에 대한 분별력없이 살아가는것은 아닌가?
내가 갑자기 빠리의 사회에 떨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대학 졸업장이 이곳에서 통용될리 없고
적응되지 않아 불신인 나라에서 나는 두려워할것 같다.
그렇지만 책대로라면
나는 쉬이 적응할것 같기도 하다.
"자기의 권리를 한치도 물러섬없이 주장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것에 대한 자제" 똘레랑스. 관용이 나의 삶에 스며들때 말이다.
그렇게 볼때 한국의 사회는 몰상식 하다.
사람들이 아닌, 한국. 국가를 바라볼때 말이다.
몰상식하다는것은
노동쟁의에 대해서 노조위원장을 구속하고
경찰의 도움이라기보단 경찰의 잔혹한 폭력의 결과에 대한 시선을 말하는것이다.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 공권력의 간섭을 싫어할것 같다.
정부의 부정부패는 용서할수없으며 용서해선 안된다.
이 책은 1995년을 살아가는 정치현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고
관용과 복지와 질서와 평등을 바라는 책이다.
벗님님의 댓글
나를 내가 잘 알지 못하다 보니,
나를 알고자 하는 수단으로 타인을 봅니다.
타인의 어떤 모습을 보면서 나를 비춰보는 거죠.
나도 저렇지 않을까, 나는 저렇게 하지는 않지 않을까.
나를 들여다보지 못하다 보니,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고,
나는 하지 못할 것 같은 것들을 해낸 이들을 찾아
그를 들여다보며
나는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들에 어쩌면 조금씩 해내기도 합니다.
나는 주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러한지는 모릅니다.
내 눈은 항상 밖을 향하고 있지, 내면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니까요.
나는 다른 이들은 봅니다.
되도록이면 귀감이 되는 이들을 봅니다.
본다는 행동 자체로는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을테지만,
나의 뇌를 속이는 거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타인인지, 거울속의 나 인지를 모르는
이 우둔한 나의 뇌를 속이는 거죠.
귀감이 되는 그 모습,
그 모습을 내 눈 속에, 내 머릿 속에 담아
언젠가는 그리 살아가고 싶으니,
생각치도 않는 무의식이 발현되며 그 모습을 행하고 있기를 바라기에.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