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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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머리에 죽비가 내려쳐졌다.
“잡생각이 너무 많아.”
자칭 스승이라는 남자가 차가운 눈으로 한번 슥 보고 지나갔다.
잡생각이 많을 수밖에.
자고 일어났더니 깨끗하게 머리를 민 노인이 몽둥이로 나를 두들겨 팼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졌더니 이놈이 미쳤나? 하며 더 많이 맞았다.
정신 차려보니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여기는 절이고 저 스승이라는 자는 중인데 나는 머리를 밀지 않았다.
상념을 없애고 정신을 집중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내 눈앞에 거대한 돌 더미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돌을 어떻게 움직이냐고 질문을 하고 또 죽도록 맞았다.
눈앞에 돌무더기는 골렘이고 나는 저 골렘과 정신적인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돌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말이 안 됐다.
절 밖을 보면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문밖은 SF인데 문 안에는 판타지다.
아니, 저 자칭 스승을 보면 무협도 섞인 것 같다.
도망가려고 하면 스승이 귀신같이 나타나서 몽둥이로 기절할 때까지 때렸다.
죽을 것 같은 데 일어나 보면 멍 하나 남지 않았다.
스승이라는 자는 멀쩡해진 나를 또 때렸다.
더 돌무더기를 움직이게 하는 게 내 살길이다.
맞기 싫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잡생각들을 하나씩 덜어냈다.
어느 순간.
돌무더기에 있는 돌에 누가 글씨를 새겨 놓은 것처럼 글씨가 떠오르며 빛이 났다.
그러다가.
구그그긍!
엄청난 소리를 내며 돌끼리 무치고 쌓이면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어릴 적 본 태권도하는 로봇 같은 모습이다.
대신 머리만 없다.
머리 부분이 비었고 그 안에 내가 올라가서 섰다.
골렘의 머리가 되어 생각만으로 골렘의 신체를 움직였다.
쿵쿵쿵쿵!
걷고 주먹을 휘두르는 게 가능해졌다.
이제 나가면 된다.
출입구로 향하는데 골렘의 발 앞에서 민머리의 스승이 길을 막았다.
“마지막 시험이다!”
무슨 시험? 하고 생각하는데 대머리 스승의 몸이 커지면서 변했다.
“크워어어어!”
대머리 드래곤이 눈앞에 나타났다.
장르가 판타지로 확정되는 순간이다.
드래곤으로 변한 스승은 입을 크게 벌리고 커다란 불줄기를 쏘아냈다.
콰콰콰콰콰!
쏘아내는 불줄기를 골렘을 타고 피하는 데 불줄기는 절을 태우고 절 밖의 산에도 불을 붙였다.
사방이 불이었다.
따악!
머리에 죽비가 내려쳐졌다.
“잡생각이 너무 많아.”
스승님께서 차가운 눈으로 한번 슥 보고 지나가셨다.
방금 이상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다.
벗님님의 댓글
눈을 감았다.
아찔하게 내려치는 죽비 소리가, 타격이 남긴 잔향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잔향이 내 뇌를 깊게 파고들며 무언가를 깨우는 듯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들이 나를 괴롭혔다.
"잡생각이 너무 많다."
스승의 차가운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그 말이 아무리 귀찮고 고통스러워도
내 몸 안에서 그것은 하나의 명령처럼 자리 잡고 있다.
자꾸만 떠도는 생각들을 잡아야 했다.
어느 순간 그게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그 찰나,
한 순간의 떨림이 온몸을 감쌌다.
바닥이 무너지며 나는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준비했다.
하지만… 내 몸은 떨어지지 않았다.
내 발은 공중에 떠 있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나는 그저 떠 있었다.
눈을 뜨자,
내가 있던 공간은 사라져버렸다.
바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벽은 더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천장은 그 누구도 닿을 수 없을 만큼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텅 빈 공간.
나만 홀로 남겨졌다.
모든 사물은 저 멀리 흩어져 있었다.
난 이 공간 속에 고립된 채로,
그 모든 부유하는 공기의 떨림 속에 잠시 갇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나 혼자만이 살아있었다.
그때,
다시 그 음성이 들려왔다.
스승이 내게 다가왔다.
"잡생각이 너무 많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얼음처럼 내 몸을 휘감았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감각 속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말이 내 안에 가득 차면서,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두둥실 떠 있는 나의 몸,
공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나는 모든 것을 던졌다.
생각의 속도를 끌어내고, 그 모든 생각들을 비워냈다.
나는 다시 내 머릿속을 비워낸다.
공간을 없애고,
내 존재마저 없애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혼란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눈앞에서 돌무더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 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가만히 있었지만,
내 집중력이 깊어질수록 그것들은 내 안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돌을 없애려 했다.
내 생각,
내 존재,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들이 내 몸 속에서 정리되어가며…
내 눈앞에서 사라졌던 천장과 벽, 바닥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흔적이 내 눈앞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라진 공간들이 다시 차지한 그 자리에,
나는 서 있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가부좌를 풀고,
내 몸이 느껴지는 그 자리로 일어섰다.
나는 그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시험에 통과했나요?"
내가 말한 그 말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도 확신에 찼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그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이 모든 일들이 시험이었다면,
나는 그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시험의 결과가 무엇이든,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명확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잡생각들이 사라지고,
나는 그 깊은 집중의 가운데,
온전히 존재하게 되었다.
그 순간,
공간은 다시 변화하지 않았다.
그대로 내게 닿은 그 모든 감각들이
지금 내가 겪은 일이 현실임을 증명해주었다.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스스로 내린 길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몸 속에 흐르는 그 고요함과 온기를 느끼며,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잘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