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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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112.♡.121.35
작성일 2024.11.27 17:20
분류 한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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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지만,

높으신 양반들이 모두 오시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볍게 눈인사라도 해서 참석했다고 도장은 받아놔야지.


대여섯 정도 모이는 작은 규모의 회식이라면 좋겠지만,

회의장 만큼 넓은 룸에는 벌써 스물도 넘는 분들이 앉아계셨다.

얼큰하게 취해서 목소리가 귀청을 울리는 분,

네네를 연신하며 흥을 맞춰주고 계신 분,

적당히 눈치를 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시간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눈치게임이 시작됐고, 하나 둘 시간을 들여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 때 일어났어야 했다.

적당한 타이밍이 있었는데, 옆 자리에서 놓아주질 않았다.


꽤나 높은 위치에 있던 분,

술만 마시면 멍멍이가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

함께 자리를 해보지 않아서 몰랐었는데, 그 말이 딱이었다.

전화를 해서 어린 여직원들을 불러오라나.

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 추태를 부리고도 멀쩡하려나.


더 이상 이 자리 앉아 있다가는 어떤 험한 꼴을 볼까 싶어서

정신을 차리고 내 겉옷을 찾으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 욕설이었나?


등이 따갑다.

아.. 통증.

뭔가를 집어던진건가?

손을 돌려 만져보니 진한.. 아, 등에서 피가 났다.

도대체 뭘 집어던진거야?


안된다. 얼른 자리를 피해야겠다.

이런 자리,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다.


고성이 들린다.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리라.

내가 누군지 기억이나 할까?

술김에 내게 뭘 집어던졌다는 사실이나 기억할까?


얼른 입구를 빠져나가는데 등 뒤에서 성큼 성큼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 위험하다.


출입구 밖으로 나와 왼편에 놓은 커다란 박스가 있어서 우선 거기로 숨었다.

도대체 얼마나 술을 마셨기에 저렇게 되었을까.

고개를 살짝 들었는데,

그의 손에 전기톱이 들려 있었다.

귀를 찢는 톱날이 돌아가는 소리, 충혈된 눈으로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는 그 눈.

아.. 이게 무슨..



그렇게 잠이 깨었다.

아.. 꿈이어서 다행이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렇게 술이 무섭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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