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천국의 이상. (주의 : 기독교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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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묵상하다가
먼 훗날 내 글을 읽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쓴 글인데
안그래도 글이 잘 안올라오는 게시판 활성화(?) 를 위해 이렇게
이곳에도 게시해봅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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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이상.
예수께서 오른쪽 강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나와 함께 '파라다이스' 에 있으리라.
이 글을 후에 읽게 될 우리 아이들을 위해
설명을 덧 입힙니다.
이 내용의 전반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적에
두 강도도 예수님과 함께 매달렸습니다.
두 강도는 처음엔 둘 다 똑같이 예수님께 욕했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였더라”(마 27:44)
이들의 비난에 앞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고
모욕하였고, 뒤이어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조롱과 비난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예수님은 욕과 비아냥들도 다 받으셨습니다.
이들의 비아냥거림도
예수님의 성업을 다 이루기 위한 (요 19:30)
과정이었습니다.
자, 다시 맨 위 '파라다이스'
한국어 성경에서는 '낙원' 이라고 표현했고
그 낙원은 우리는 보통 '천국'을 떠올립니다.
이를 묘사한 부분이 나옵니다.
계 22장 1절~2절.
1.그 후 천사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2.강물은 도성의 길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고
강 양쪽에 있는 생명나무는 매달 열매를 맺어
열두 열매를 맺고
나뭇잎들은 나라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천국의 모습에서 2절에 보면
나라들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합니다.
이미 천국에 들어갔는데
병든 나라들 즉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들을 위해
근심하고 또 치료까지 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내가 죄로 인하여 값을 치룰것들을
모든 경계적인 부채까지 다 치루셨다. (buy, 샀다)
비천한 나의 삶이
이제는 나의 모든 삶이 예수 안에서
살만한 가치가 있게 되었다.
이것이 천국이다.
우리 어르신들이 믿는 이상적인 천국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것은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인생이
더 없이 가치있고
이 나라를 예수님이 가르치려 했던
그 나라로, 파라다이스를 만들어가는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어야 할 '천국' 입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여 주시고
오늘 요한계시록으로부터
'천국'을 꿈꾸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안에 내가 당신안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살아계시기에 내일을 꿈꿀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그 가치를 더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찬양 가사처럼
우리 아이들이 복음의 핵심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벗님님의 댓글
신실한 믿음이란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바람처럼,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경이로운 것입니다.
누군가는 믿음을 강철 같은 확신으로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을
고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연약한 꽃잎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
작지만 끝내 그 자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존재로 말입니다.
고난은 언제나 우리를 시험합니다.
빗발치는 비난과 조롱,
차가운 외면과 굴욕의 순간들 속에서,
저는 여러 번 마음 깊이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견딜 가치가 있는가?"
그러나 그 질문 뒤에 찾아오는 고요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믿음은 고난을 통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무엇이라는 것을.
어느 날, 한 사냥꾼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그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두려움에 무릎을 꿇었고,
균열이 퍼져나가는 얼음 위에서 그는 한동안 멈춰 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멀리 강 건너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생명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 여긴 그는
무릎으로 기어가고 손바닥으로 길을 더듬으며 끝내 강을 건넜습니다.
뒤돌아본 순간,
햇빛 아래에서 강은 환히 빛나고 있었고,
그의 발길 아래의 얼음은 두껍고도 단단해 보였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그 순간, 그를 강을 넘어설 수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회유와 유혹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이 길을 포기하라. 더 쉬운 길이 있다."
세상은 늘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지만 그 속삭임을 뿌리치고 이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세상의 논리를 넘어선 빛나는 신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눈부신 아침 햇살처럼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단 한 순간이라도 "이것이 옳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아직 믿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신 분들께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믿음은 완벽한 강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완전함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입니다.
그리고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갈 때,
어느 순간 당신도 모르게 빛나는 신성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그 신성은 결코
당신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당신과 함께했던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결코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